바른미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가 지방선거 투표일인 6월 13일 여의도 당사에서 입장을 발표한 뒤 손학규 상임선대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 박은숙 기자
“그때 연대를 했다면, 정치판이 달라졌을 텐데….” 야권 한 관계자는 안철수·손학규 전 의원의 최근 행보를 보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당시 연대론에 불을 지핀 것은 손 전 의원이었다. 민주통합당 경선을 앞두고 고 김근태 전 의원의 계보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의 지지를 끌어냈던 손 전 의원은 “정권교체는 이 손(자신의 손) 안에 있기도 하고, 손(손학규)·안(안철수)에 있기도 하다”고 안 전 의원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당시 안철수·손학규 연대는 ‘문재인 대세론’을 꺾을 필승카드로 꼽혔다. 민평련이 한때 중간 고리 역할에 나서는 정황도 포착됐다.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시너지효과보다 크다는 이유에서다. 문재인 대통령과 안 전 의원은 지역적으로 ‘영남’(부산)이라는 교집합을 형성했지만, 이념적으로는 결을 달리했다. 지지층이 결집하는 데 한계가 적지 않았다. 안철수·손학규 연대는 ‘중도’라는 교집합 속에서 수도권과 영남을 묶는 최적의 카드로 거론됐다. 이른바 ‘중도층 포섭’ 극대화 전략이다. 야당 한 의원은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거론하며 “안철수·손학규 연대론은 지난 1997년 정권교체 슬로건이었던 ‘뉴 DJ플랜’의 2012년 판”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안 전 의원은 독자노선을 고수했다. 무소속으로 본선 링에 잠시 오른 그는 문 대통령과 야권단일화 협상에 나섰다.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절대적으로 세가 부족했던 안 전 의원은 막판 지지율이 정체되자, 돌연 불명예 퇴진을 택했다. 손 전 의원은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에서 24.06%에 그치면서 문 대통령(49.10%)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후 안 전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과 국민의당, 바른미래당 창당에 각각 나섰지만, 대선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연거푸 패했다. 정계은퇴 약속을 깨고 여의도 정치판으로 돌아온 손 전 의원의 영향력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패장 안 전 의원이 택한 것은 DJ 모델이다. 1992년 대선에서 패한 DJ는 정계은퇴 선언 후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당 내부에서조차 ‘정치은퇴’ 압박을 받았던 안 전 의원은 7월 12일 서울 여의도 한 커피숍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성찰과 채움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며 5년 9개월간의 정치활동에 쉼표를 찍었다. DJ가 택한 정계은퇴까지는 아니지만, 당분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는 2선 후퇴론을 택한 것이다. 첫 행선지로 다당제 본류인 독일을 택했다. 정치 재기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우회적으로 피력한 셈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도 “독일을 택한 거로 봐서는 대선은 포기 안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안 전 의원의 종착지는 둘 중 하나다. ‘DJ의 길이냐, 이회창의 길이냐’로 좁혀진다.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DJ는 1995년 민선으로 처음 치러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직전 전격 귀국했다. 당시 서울시장에 나섰던 조순 민주당 후보를 지원했다. DJ의 선거지원은 박찬종 무소속 후보의 대세론을 단숨에 넘었다. DJ는 지방선거가 끝난 지 한 달 만인 1995년 7월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당시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95명 중 65명이 탈당해 DJ 품으로 돌아갔다. 이듬해 치러진 15대 총선에서 79석으로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이는 독이 아닌 약으로 작용했다. 1997년 대선 때 DJP 연합(김대중·김종필)에 사활을 걸었다. 결국 대권을 거머쥐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오는 2020년 21대 총선 전 정계개편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안 전 의원도 그 시점에 야권발 정계개편을 통해 역할을 찾을 것”이라고 전했다.
안 전 의원의 복귀 시나리오도 DJ 모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야권발 정계개편은 차기 총선의 상수다. 야권의 구심점 부재 등이 지속된다면, 판을 흔들 수 있는 카드는 헤쳐모여 식 이합집산밖에 없다. 보수대연합이든, 중도대연합이든 정계개편을 통해 민주당과 1 대 1 구도를 만들고 안 전 의원의 진두지휘 아래 ‘총선 승리→대선 출마’ 수순을 밟는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하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한 관계자는 “안 전 의원의 가장 화려한 부활은 서울 종로에서 당선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종로는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역구다. 다만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지낸 정 의원이 재출마할지는 미지수다. ‘정세균 vs 안철수’, ‘민주당 새 인물 vs 안철수’ 등의 다양한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바른미래당 한 의원도 “안철수 역할론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1∼2년 후 다시 정치판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안 전 의원 측 관계자는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DJ 모델의 반대는 ‘이회창(전 자유선진당 총재) 모델’이다. 이 전 총재는 1997년과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나섰다. 하지만 DJ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외환위기 속에 치러진 1997년 대선 당시 조순 민주당 후보와 손을 잡기도 했으나, DJP연합의 파괴력을 넘지 못했다. 2002년 대선 땐 ‘대세론’에 취하면서 정계개편 모색에 실패했다.
반면 당시 여권에선 ‘노·정(노무현·정몽준) 단일화’로 맞섰다. 노·정 단일화는 대선을 하루 남기고 깨졌지만, ‘이회창 대세론’을 뒤흔든 회심의 카드로 지금도 회자된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안 전 의원의 약점은 뚜렷한 약점이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정계개편 과정에서 등장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간 중도와 보수 사이를 오갔던 안 전 의원이 확실한 이념적 포지션을 정해야만, 정계개편의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쥘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민주당 중진 의원은 “안 전 의원과 당 생활도 같이했지만, 애매한 포지션으로는 정치 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힐난했다. DJ와 이회창 모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그간의 행보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손 전 의원도 마찬가지다. 그는 바른미래당에 ‘안철수 빈자리’가 생기자, 당권 도전 의지를 내비쳤다. 이른바 틈새 파고들기다. 손 전 의원은 7월 16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변화의 시대: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개편’ 토론회에 참석해 “제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한국 정치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고자 한다”며 부활을 신호탄을 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보수는 궤멸했다”, “중도는 아예 흔적도 없어졌다”, “(청와대) 비서진이 자료와 통계를 속여 대통령을 바보로 만들었다” 등의 날 선 비판을 가했다.
당 복수의 관계자들은 손 전 의원이 오는 9월 초로 예정된 바른미래당 당권 도전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분석했다. 앞서 그는 지방선거 때 당 선거대책위원장을 수락하면서 “지방선거 후 정계개편이 일어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치권 안팎에선 손 전 의원이 바른미래당 당권 도전 후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을 앞세워 정계개편을 단행할 것으로 본다. 손 전 의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7공화국을 통해 다당제 합의민주주의를 확립할 역사적 책임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손학규 역할론’이 순항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손 전 의원은 바른미래당 내 소수 중 소수파다. 그를 지지하는 현역 의원도 전무하다. 손학규계 다수는 지금도 민주당에 몸담고 있다. 전 평론가는 “존폐 위기에 처한 바른미래당이 그나마 중량감 있는 손 전 의원을 부르고 있지만, 친안철수계와 친유승민계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손학규 부활’의 변수는 손 전 의원이 아닌 당 양대 주주 손에 달렸다는 얘기다.
실제 손 전 의원은 직전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공천 갈등을 빚었던 양측 중재자로 나섰지만, 갈등 봉합은커녕 파국이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DJ 모델을 꿈꿨던 손 전 의원의 종착지도 결국 ‘이회창의 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때 연대론의 주인공이었던 이들은 차기 총·대선 과정에서 만날 수 있을까. 다당제 등에서 교집합을 형성하지만, 여전히 이념적 간극은 있다. 안 전 의원은 보수대연합에, 손 전 의원은 중도대연합에 가깝다. 지방선거 후 다른 길을 걸었던 이들이 차기 총·대선 과정에서도 엇갈린 행보를 걸을 수도 있다. 연대·연합도 독자노선도 가시밭길이다. 안철수·손학규 전 의원이 처한 현주소다.
윤지상 언론인
바른미래당 앞날 내부 온도차…“바닥 쳤다”vs“지하도 있다” “비상대책위원회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모르겠다.” 바른미래당 한 관계자는 구원투수로 나선 ‘김동철 비대위’에 대해 이같이 꼬집었다. 옛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인사들 간 갈등으로 혁신 체제도 갈등 봉합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더 큰 문제는 ‘근거 없는 바닥론’이라고 잘라 말했다. 바닥론이란 정당 지지율이 더 밑으로 하락할 수 없는 저점 상태로, 치고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얘기다. 국민의당 출신인 김관영 원내대표는 “우리는 더 내려갈 곳이 없다”고 밝혔다. 바른정당 출신인 하태경 의원도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 자유한국당 지지율을 넘고 야당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다”고 거들었다. 지난 2월 13일 출범한 바른미래당은 6·13 지방선거에서 광역 의원 1명과 기초 의원 19명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광역자체단체장 선거에선 당선권에 근접한 후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정당 득표율(광역의원 비례)은 7.62%로, 정의당(8.97%)보다도 낮았다. 창당 당시 표방한 전국정당화 깃발이 무색해질 정도다. 바른미래당의 실패는 그 이전부터 감지됐다. 당대당 통합 시너지는 없었다. 당 안팎에서 추정한 ‘지지율 20%’는 신기루였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이 통합 이후 처음 실시한 2월4주차 조사(2월20∼22일 조사, 23일 발표)를 보면, 바른미래당의 지지도는 8%에 불과했다. 지방선거 직전에는 5%까지 하락했다. 이는 통합 전 한국갤럽의 마지막 여론조사였던 2월1주차(1월30∼2월1일, 2일 발표) 조사 당시 양당의 지지도 합(국민의당 8%+국민의당 5%)을 밑도는 수치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다. 지난해 5·9 대선 때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후보로 나섰던 안철수 전 의원(21.4%)과 유승민 의원(6.8%)의 득표율 합은 28.2%였다. 당 한 의원은 “대선 이후 양당을 지지했던 지지층을 묶지 못한 건 큰 패착”이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6·13 지방선거에서 동작구청장에 출마했던 장진영 전 동작을 지역위원장은 “바닥 밑에는 지하가 있다”며 “바른미래당이 소멸의 길로 갈 가능성이 60% 이상이라고 본다”고 날을 세웠다. 다른 원외 인사도 “당이 해체 수순으로 가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힐난했다. 이성권 전 부산시당 위원장은 중진 의원의 총선 불출마를 주장했지만, 당내 호응은 없는 상태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