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숙 전 총리, 정몽준 대표, 박세일 전 의원 | ||
‘쉽게’ 예선을 통과한 ‘밋밋한’ 후보 오 시장이 과연 본선에서 예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 선거에 관한 한 동물적인 감각을 가진 한나라당 ‘고수’들의 시각은 부정적이다. 선거기획팀 일각에서는 오는 4월 9일 한명숙 전 총리의 재판 결과가 무죄로 발표되고 그때의 여야 후보 여론조사 지지율 차이가 10%포인트 이내일 경우 ‘무조건’ 현 후보 4인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뻔히’ 지는 게임을 앉아서 당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에서는 선거 막판 제3의 후보를 전격 등장시켜 한명숙 전 총리의 공세를 막아낼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제3의 후보 찾기 내막을 따라가 봤다.
한나라당의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실무팀이나 의원들은 선거 준비상황을 묻는 질문에 한숨부터 내쉰다. 당 안팎 어디를 둘러봐도 여당에 도움이 될 만한 상황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선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친이 세력이 분열되면서 전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수도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재오계는 ‘개점휴업’ 상태다.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은 ‘장외’에 있어 직접적인 영향력 행사가 여의치 않다. 그를 찾는 후보들은 많지만 지난 18대 총선에서처럼 막강한 공천 영향력을 발휘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여기에 전임 서울시당위원장으로서 수도권에 일정한 영향력이 있었던 공성진 의원도 5월까지 재판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선거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이재오-이방호’로 이어졌던 막강 공천 라인이 이번에는 힘을 쓰지 못하면서 수도권의 친이세력 구심점 역할에도 구멍이 난 상황이다. 여기에 친이 소장파들도 ‘따로국밥’이다. 원희룡 지지파와 나경원 지지파, 그리고 반 오세훈파 등으로 ‘갈갈이’ 찢어져 이번 선거에서 소장파의 단일대오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당이 이렇게 무력하게 되면서 그렇지 않아도 ‘무색무취한’ 정병국 사무총장은 더욱 청와대의 눈치만 보게 되고, 당내 조직이 미약한 정몽준 대표는 공식 일정만 소화하는 얼굴마담 역할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선거기획위원장을 맡은 정두언 의원 정도가 청와대와 핫라인을 구축하며 전략 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힘이 부치고 있다는 후문이다.
여권은 선거의 정무적 사안에 대한 컨트롤 타워 부재도 노정하고 있다. 최근 불거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발언 보도 파문, 천주교 등 개혁세력의 4대강 본격 비판, 사법개혁 강행 파문, 김연아 회피 동영상에 대한 유인촌 문화부 장관의 명예훼손 소송 사건,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의 극언 등 다연발성 악재가 터졌음에도 이를 정무적으로 해결하고 대응할 지도부의 노력이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당의 한 선거 실무자는 이에 대해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여권 인사들이 전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 같다.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 한다. 통제가 안 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정치권의 한 컨설턴트는 이에 대해 “한나라당이 아직 집권 여당의 능력과 책임의식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선거가 다가왔지만 위기의식은 전혀 없고, 무분별한 실언 등이 계속 터져 나오고 있다. 이는 집권 주도세력인 친이세력이 분열되면서 정치 사안에 대한 책임의식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에서 기인한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당 지도부는 아마 역대 최약체로 불릴 만큼 손발이 따로 노는 것 같다는 말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이런 여권의 다연발성 악재는 오는 4월 9일 한명숙 전 총리의 재판 결과 발표 시점에서 극에 이를 전망이다. 만약 한 전 총리의 머리 위에 무죄라는 월계관이 얹어진다면 서울시장 선거 판도는 급격하게 민주당 페이스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지금까지의 정치권 진단이다. 한 전 총리의 뇌물수수 사건을 심리 중인 재판부가 검찰에 공소사실을 보다 명확하게 변경할 것을 권고할 정도로 이번 사건은 여당에 불리한 쪽으로 흐르고 있다. 만약 한 전 총리가 무죄로 1차 판결이 날 경우 선거 정국이 검찰의 무리한 수사 논란과 그에 따른 책임 시비로 흐르면서 현 정권에 대한 질책성 투표가 쏟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당이 안고 있는 대외적 여건도 당 분열 못지않다. 먼저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 결정에도 강남 부동산의 정체 내지는 하락 추세가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여주고 있다. 주가도 고점을 찍었다는 일부의 평가도 있다. 무엇보다 취업난이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도 여당으로선 큰 악재다. 통계상 실업률은 4% 후반대지만 실제 실업률은 18%에 달한다고 한다. 청년 실업은 더 심각하다. 공식통계로 평균 실업률의 두 배가 넘는 10%였다. 실제 실업률은 30~40%에 달할 거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 모든 문제가 이명박 정권 탄생의 산파였다는 점에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심이 그 책임을 묻게 된다면 여당으로선 할 말이 없다.
한나라당이 안고 있는 이러한 당 안팎의 악재들은 한명숙 전 총리의 공판 결과 예상과 맞물리면서 현재의 4인 후보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여당의 선거 전략기획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 보수언론 등의 원희룡 나경원 의원 띄우기는 그들 자체의 경쟁력 부각이라기보다 ‘오세훈으로는 안 되니까 발상의 전환을 하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지금으로선 오 시장이 여론조사에서 가장 앞서고 있지만 4월 중순경에 가서 한 전 총리와의 지지율 격차가 10%포인트 이내로 줄어들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후보 교체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동안 한나라당이 다양한 선거를 거치면서 쌓은 노하우를 생각할 때 뻔히 지는 게임을 그대로 가져가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히 제3의 후보를 영입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게 될 것이다. 한나라당이 집권 여당으로서의 능력이 있다면 빠른 시일 내에 그 대안 후보를 찾을 것이다. 현재로선 박세일 전 의원 정도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정몽준 대표의 ‘징발’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친이계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 전 총리가 무죄 판결을 받아 야권 단일 후보로 나설 경우 현재의 오세훈 후보 등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당연히 대선 주자급 인물들을 움직여 수도권 광역단체장 선거구도를 다시 짤 수밖에 없다. 그 가능성 가운데 하나가 정몽준 대표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대표 측은 “한마디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얘기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방안이다. 아이들 장난 같은 말이 계속 나올 경우 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라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의 전략을 총괄하고 있는 정두언 의원은 “상황을 봐서 오세훈 시장이 뻔히 지게 생겼으면 정몽준 대표라도 데려와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정 대표의 제3후보 차출에 대해 계속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그런데 제3후보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상존한다. 일단 여권의 인재풀 가운데 대선 주자급에 해당하는 ‘딱 맞는’ 후보가 별로 없다. 그리고 급하게 데려온 후보의 경우 조직과 정책의 미비로 경선 관문을 넘기가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외부 영입에 대한 기존 후보들의 반발을 어떻게 잠재울지도 관건이다.
지방선거를 앞둔 한나라당은 당 안팎의 악재에다 ‘모범생’ 후보들의 ‘도토리 키 재기’식 경쟁으로 경선 흥미를 반감시키고 있다. 전여옥 전략기획위원장이 ‘권역별 경선’으로 시청률 끌어올리기에 나서고 있지만 대증요법에 그칠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한명숙 전 총리의 무서운 추격을 벗어나기 위해 위기상황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그에 따른 발상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제3후보론은 그 문제의식의 중심에 서 있는, 지방선거 필승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