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특히 박 전 대표는 자신의 장외 지지정당인 미래희망연대(희망연대)가 한나라당과의 무조건적인 합당을 선언했지만 이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다. 일각에서는 ‘박심’이 개입된 희망연대의 소멸이 박 전 대표에게 지방선거 비협조에 대한 책임론 부상을 차단하는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세종시 정국에서 야당보다 더 독한 야당으로 낙인찍힌 박 전 대표의 ‘외고집’ 이미지 대신 책임 있게 협조하는 여권 2인자의 위상을 보여줬다는 긍정론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여당 일각에서는 “희망연대의 여당 복귀가 박 전 대표의 향후 대권 행보에 오히려 ‘독’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상존한다. 희망연대 합당에도 계속 무언의 정치로 일관하는 박근혜 전 대표 행보의 빛과 그림자를 조명해봤다.
“도대체 ‘박심’은 무엇인가.”
요즘 여의도는 한 달여 넘게 일체의 정치적 수사를 던지지 않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의 ‘마음읽기’에 바쁘다. 미래희망연대가 한나라당과 합당한 것을 두고 ‘박심’이 개입했는지의 여부를 두고도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현재로서는 박 전 대표가 일체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고, 그의 측근들도 “희망연대는 당의 문제이기 때문에 당이 판단할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이래라 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다”(유정복 의원)라며 철저하게 발을 빼고 있기 때문에 ‘박심’의 실체에 대해선 알 수가 없다. ‘박심’이 난무하고 있지만 그 어디에도 ‘박심’의 실체는 발견되지 않는 셈이다.
그렇다고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최대 지지조직인 희망연대가 ‘정적’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을 아무런 생각 없이 바라볼 리가 있겠는가. 세종시 수정안과 같은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직설적인 표현으로 날카로운 발톱을 보였던 그가, 희망연대의 합당 문제라고 해서 달리 대응할 필요가 있었을까. 정치적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고 판단했다면 그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희망연대’ 진로에 대한 교통정리에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바로 여기에, 박 전 대표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친박 세력의 한 핵심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가 희망연대의 여당 귀환에 일체의 무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에 이미 ‘박심’이 녹아 있다”고 주장한다. “희망연대의 ‘정치적 유통기한’이 만료됐기 때문에 자연사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무 대응으로 나타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희망연대는 지난 2008년 총선에서 ‘친박 인사들의 생환 보트’로 급조된, 태생이 왜곡된 정치결사체다. 그리고 지난 2월 희망연대가 친박연대에서 개명을 했던 것은 ‘박근혜’라는 브랜드를 버리고 소멸됐음을 선언하는 셈이었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자의든 타의든 희망연대를 자신의 장외 지지조직으로 활용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도 그는 누구보다 한나라당에 애착이 강하고 변칙보다 원칙을 중시했기 때문에, 당밖에 자신을 지지하는 정당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느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그렇다고 정치 현실상 정당의 해체를 지시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동안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최근 “희망연대는 한나라당의 잘못된 공천 때문에 생긴 당인 만큼 뿌리가 같은 정당이 다시 합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런 점에서 희망연대의 소멸은 지난 총선 이후 이어져 온 ‘박근혜 정치 1기’의 종식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친박계의 한 초선의원은 이에 대해 “박 전 대표의 ‘침묵’을 두고 희망연대의 합당을 ‘용인’했다, 아니다 말들이 많은데, 지난 총선 공천과정에서 불거진 계파갈등을 봉합하는 결자해지의 의지를 보인,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에 굳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아도 됐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맞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 서청원 미래희망연대 대표. | ||
현재 박사모를 중심으로 한 친박세력의 일부 강경파들은 이번 희망연대의 합당을 ‘서청원 대표의 배신극’으로 규정하고 있다. 친박 소장파들이 희망연대의 합당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노철래 의원을 비롯한 8인의 비례대표 의원을 과연 ‘친박’으로 규정할 수 있느냐의 문제와 직결된다. 사실 서 대표는 한나라당 협상팀이 자신의 사면에 대해 미적거리자 나중에는 일체의 공천을 요구하지도 않는 등 사실상 백기투항을 했다. 이 과정에서 서 대표는 이미 ‘박근혜 사람’이 아니라 ‘이명박계’로 변신했다는 것이 친박 세력 강경파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노철래 의원을 비롯한 8인의 비례대표 의원들도 한나라당에 입당하더라도 ‘배신자’ 서 대표와 주파수를 맞춰 세종시 정국에서 친박 세력의 입지를 약하게 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대표에게 희망연대의 ‘합류’가 꼭 호재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친박 세력에서는 희망연대의 합당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고 있다. 친박계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친박연대의 탄생은 공천학살이 빚어낸 자구책이었다. 어떻게 보면 한시적 정당의 한계를 떠안고 출발했던 것이다. 이번 희망연대와 한나라당의 합당은 친박 무소속의 한나라당 합류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친박 세력에 상존하는, 희망연대 합당에 대한 양분된 시각은 대권가도에 놓인 박 전 대표의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친박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번 희망연대 사건으로 친박 세력의 열혈 지지층들도 혼란스러워한다. 앞으로 보다 선명한 노선의 제2 친박연대를 창당해야 한다는 견해와 계파갈등이 박 전 대표의 대권가도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의 장외 정당은 필요 없다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이는 박 전 대표에게도 똑같은 고민으로 다가온다. 박 전 대표는 ‘희망연대 합당 용인’이라는 타협적 전략을 이번에 보였는데 여전히 친박의 탈레반들은 이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박 전 대표가 세종시 정국에서 보여준 비타협적인 강경노선을 앞으로도 계속 걸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런 갈등이 깊어질 경우 박 전 대표는 열혈 지지층의 이탈 내지는 분열이라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의 희망연대 합당 용인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원칙이 훼손되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서 대표의 여당 복귀 협상 과정은 일부에서 밀실야합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논란이 많았다. 서 대표가 장기간의 교도소 복역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어려움을 느끼자 당을 내팽개치고 자신의 안위만 챙겼다는 것이다(박사모 일부의 주장).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한나라당이 서 대표의 아킬레스건을 잡고 인질정치를 했다”고까지 주장한다. 이런 야합정치를 박 전 대표가 받아들인 것은 그 자체로 그의 원칙정치를 부정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박 전 대표로서는 서 대표에 대한 ‘신의’를 지키기 위해 그런 비판쯤을 감수할 수 있지만, 그동안 희망연대가 내보였던 ‘박근혜 정신’을 돌이켜보면 야합 논란이 있는 이번 합당을 박 전 대표가 거부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희망연대 합당은 박 전 대표의 정치 노선에 혼란을 느낀 열혈 지지층의 이탈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희망연대 같은 장외 지지조직이 사라지면서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운신 폭도 줄어들 여지가 있다. 지금까지는 한나라당 내의 친박그룹이 박 전 대표의 철학을 이끌어가는 본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냈고, 장외조직 희망연대는 그것이 여론 깊숙이 흘러들어가도록 하는 일종의 핏줄 역할을 했다. 하지만 희망연대가 사라지면서 전국으로 박 전 대표의 피를 공급하는 핏줄을 끊어버린 셈이 됐다는 점에서 손실이 크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내 본진이 제기할 수 없는 껄끄러운 문제를 장외조직이 소화해내는 기능도 사라졌다는 점에서 ‘대이명박 투쟁력’이 약화되는 동시에 다원적인 전술 운용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박 전 대표는 희망연대 합당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는 그 자체로 정치적 메시지가 되고 있다. ‘흘러가는 대로 두겠다’는 것이 박 전 대표의 전략이다. 그는 이미 친이로 넘어간 서청원 대표의 ‘용도폐기’를 기정사실화하고, 박사모 등을 중심으로 하는 제2의 친박연대 태동을 또 다른 ‘무언의 정치’로 유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희망연대의 합당 용인 과정에서 보여준 ‘박근혜이즘’의 훼손은 열혈 지지층의 신뢰 상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