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훈 시장 | ||
민주당이 이 전 감사관을 삼고초려 끝에 영입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정치권에선 이 전 감사관이 서울시 핵심 요직을 거치며 오 시장 측근으로 일해 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내용이 공개될 경우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여권 핵심부는 사실 확인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일부 소장파가 주장했다가 용도 폐기된 ‘서울시장 제3후보론’을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6·2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를 서울시장 선거전에서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는 이 전 감사관의 ‘오세훈 파일’, 그 실체를 추적했다.
1980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사무관으로 출발한 이성 전 감사관은 청와대 행정관(1994년 3월~1995년 5월)과 구로구청 부구청장(2002~2007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서울시에 몸담아왔다. 일반인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공직사회에서는 ‘스타급’ 공무원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이성 전 감사관과 20년 이상 알고 지낸 한 고위 공무원은 “일처리가 꼼꼼하고 기획력이 좋아 상사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역대 서울시장들이 모두 이 전 감사관을 중용했다”면서도 “튀는 구석이 있어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곤 했는데 이 때문에 주위의 호불호가 갈렸다”고 귀띔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이 전 감사관 지인들 역시 이러한 평가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전 감사관에게는 유명한 일화가 따라다닌다. 지난 2000년 7월 전세계약금을 뺀 돈으로 가족들과 함께 1년 동안 세계일주에 나섰던 것. 고시 출신의 ‘잘나가던’ 공무원의 이러한 ‘결단’은 언론에도 보도되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에 대해 당시 이 전 감사관과 서울시 시정개혁단에서 함께 근무했던 한 공무원은 “사실 공직사회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일 아니냐. 모두들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주위 동료들 사이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전 감사관은 세계일주를 다녀와 서울시가 아닌 구로구청 부구청장으로 복귀했는데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맞붙을 양대웅 현 구로구청장과 당시 한솥밥을 먹었다. 이 때문에 구로구청을 비롯한 공직사회 일각에서는 이 전 감사관을 향한 비난이 거센 상태라고 한다. 구로구청의 한 관계자는 “본인 의사니 뭐라 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한때 자기가 모셨던 상관을 상대로 출마한 것을 두고 ‘배신자’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 전 감사관은 현 정권 들어 더욱 주목을 받았다. 이른바 ‘고소영’ 인맥으로 분류됐던 것. 이 전 감사관은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행정학)를 졸업했다. 오세훈 시장의 대학선배이기도 한 이 전 감사관은 정권 초이던 지난 2008년 2월 서울시 경쟁력강화본부장으로 임명되며 ‘친정’에 화려하게 컴백했다. 이 전 감사관은 오 시장 역점 사업인 광화문 거리사업·가락동 농수산물시장 현대화 사업 등을 주도하며 실세로 떠올랐고, 지난해 1월엔 서울시 내부를 감찰하는 감사관을 맡았다. 서울시청의 한 관계자는 “오 시장은 그 누구보다 이 전 감사관을 신뢰했다. 이 전 감사관이 사표를 쓰려고 했을 때도 수리하지 않고 여러 차례 반려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지방선거에서도 큰 역할을 맡기려고 했는데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다.
공직사회에서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이 전 감사관이 지방선거에 나가려고 곧 그만둘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이 전 감사관을 데려오기 위해 정치인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말도 파다했다. 이 전 감사관 역시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도 그랬고 정치권 쪽에서도 제의가 있었고, 진작부터 사의 뜻을 밝혔는데 오 시장이 만류해 늦어졌다”고 말했다. 애초 정가에서는 오 시장과 가까울 뿐 아니라 TK 출신인 이 전 감사관이 한나라당에 입당할 것으로 점쳤었다. 그러나 2월 초 이 전 감사관은 민주당사에 모습을 드러냈고 결국 구로구청장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이 전 감사관이 아까운 인재인 건 분명하지만 (당시엔) 누가 나오더라도 양대웅 현 청장이 무난하게 승리할 것으로 봤다. 이 전 감사관이 다른 지역을 원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 오세훈 시장의 측근이자 대학교 선배로 알려진 이성 전 감사관이 민주당에 입당했다. | ||
민주당이 이 전 감사관을 ‘구청장 후보 그 이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정치권에서는 서울시장 선거와 연관 지어 바라보고 있다. 이 전 감사관이 오 시장을 보좌하며 주요 사업에 깊숙이 관여했고 서울시 내부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감사관을 역임했기 때문. 즉 민주당이 한나라당 후보로 나올 것이 유력시되고 있는 오 시장의 문제점이 파악된 자료들을 이 전 감사관을 통해 확보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그 실체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 없고, 이 전 감사관이 직접 “공직을 그만두면서 (오 시장과 관련된) 단 한 개의 자료들도 가지고 나온 것이 없다”며 부인하고 있지만 정치권과 사정기관에서는 이른바 ‘오세훈 파일’이 존재할 가능성을 어느 정도 높게 판단하고 있다.
이 전 감사관의 입당에 대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던 청와대와 한나라당 역시 ‘비상’이 걸렸다. 청와대 정무라인의 한 인사는 “여론조사 결과 큰 변수가 없는 한 오 시장 재선이 유력하다는 게 지금까지의 결론이었다. 특별한 대안이 없지 않느냐. 그런데 만약 이 전 감사관 파일이 존재한다면 전략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소장파들이 주장했던 ‘제3후보론 카드’도 다시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한 친이계 의원 역시 “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인 한명숙 전 총리를 그렇게 몰아붙였는데 만에 하나 시정 관련 비리가 드러나면 뭐라고 변명할 것이냐.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민주당 역시 선거를 폭로전으로 치르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시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뽑는 자리다. 폭로가 아니라 검증”이라고 맞받았다.
일단 여권은 ‘오 시장 지키기’에 총력을 기울이면서도 한편에서는 사정기관을 총동원해 이 전 감사관이 지니고 있다는 ‘오세훈 파일’의 진위 확인에 분주한 모습이다. 기자가 여러 사정기관 실무진들과 민주당, 이 전 감사관 지인들을 다각도로 접촉해본 결과 이들이 파악한 오세훈 파일은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몇몇 공통적인 내용들도 있었다. 서울시 스크린골프장 인·허가 문제, 특정 기업과의 밀착설,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이 바로 그것. 현재 사정기관들은 이 세 가지 의혹의 진위 여부를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뿐 아니라 검찰 국세청 국가정보원 등이 나섰다. (이 전 감사관) 본인이 입을 열기 전까진 확인에 시간이 걸릴 것 같지만 (민주당이 파일을) 어떤 식으로든 쥐고 있을 가능성은 높은 것 같다”라고 밝혔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 역시 “이 전 감사관이 서울시 재직 때 어떤 내용들을 감사했는지를 확인해본 결과 스크린골프장 인·허가 문제 등이 포함됐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물론 오 시장 주변에서는 정가나 사정기관에서 거론되는 ‘오세훈 파일’에 대해 고개를 내젓고 있다. 그간 오 시장이 깨끗한 시정으로 비리 소지를 없애 왔는데 무슨 파일이 존재하느냐는 반문이다. 한 여권 인사는 “민주당이 이 전 감사관의 이름을 이용해 벌써부터 근거 없는 음해공세를 펴고 있다”면서 “(현재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조만간 흑백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정가에서 흘러나오는 오세훈 파일의 실체는 무엇일까. 향후 이 전 감사관의 행보가 주목된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