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르륵, 마지막 숨넘어가는 듯한 소리가 목구멍에서 울렸다. 그는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죽어서 벌써 귀신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바닥에 뒹군 그의 시야에는 흐릿한 모습들만이 기이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맨 먼저 보인 것은 한 자루의 칼이었다. 검붉은 핏자국이 말라붙은 은빛 칼날 너머로는 텅 빈 벽이 있었다. 그 벽 한복판에는 바가지로 가득 퍼담아 뿌린 듯 시뻘건 핏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허억-마치 지금껏 호흡하는 걸 잊고 있었다는 양 그는 헐떡였다.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끔찍한 장면이었다. 그의 몸은 피 웅덩이 속에 누워 있었다. 하나씩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허공에서 비웃어대던 목소리, 지치도록 반복했던 자위행위, 그리고 칼. 꿈이 아니었다. 그러나 꿈이 아님을 깨달음과 동시에 그는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알아차렸다.
묵직한 살덩이를 내려찍던 찰라에 손 끝으로 전해지던 미묘한 촉감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는 허겁지겁 아랫도리를 움켜쥐었다.
“흐흐…, 흐흐흐.”
그의 입술에서 미친 사람 같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벌거벗은 자신의 하초(下焦)를 경이로운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대로였다. 분명 자기 손으로 잘라냈던 기둥이 사타구니 사이에 그대로, 오히려 전보다도 훨씬 더 커다랗고 거대하게 솟아 있었다. 아주 잠깐 의심이 들었다. 이게 내 물건이 맞는 것일까. 그렇다면 저 핏자국들은 대체 무엇일까. 어쨌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에게는 ‘그것’이 남아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귀신이 말한 것처럼 더 이상 고통은 없었다. 아니 어느새 그 목소리조차 사라진 채 들려 오지 않고 있었다. 그는 방바닥에 주저앉아 키들거렸다. 주체하기 힘든 웃음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목소리가 맞았다. 그가 틀렸던 것이다. 흉측한 물건을 자랑스레 매만지던 그의 눈동자가 마침내 한 줄기 섬광을 희번덕댔다. 이제는 수음 따위로 만족할 게 아니었다. 몸을 일으킨 그는 주변에 널린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업이 끝나자 옷을 입고 방을 빠져나왔다. 벌레들이 세상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 그림 최경태 | ||
또 하나의 주전자가 비워지고 있었다. 색기가 잔뜩 묻어나오는 얼굴의 작부가 사라지자 요의(尿意)를 느낀 김형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실례지만 화장실이…?”
“화장실요? 저쪽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닥터 최가 선술집의 뒤쪽으로 통하는 조그만 쪽문을 가리켰다. 형진은 별 생각없이 바깥으로 나섰다.
하지만 직후 그는 그 자리에서 멋쩍게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촌구석이 대부분 그렇듯 그곳 역시 처마 아래에 시멘트 담으로 대충 둘러진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한데 그 안에는 이미 손님이 들어가 있었다.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스레 들려 오고 있었다. 더욱 난처하게도 그 뒷간에는 아예 문짝조차 달려 있지 않았다.
큼직하게 갈라진 엉덩이가 어둠 속에서 허옇게 들여다보였다. 강 마담이었다. 당황한 형진이 재빨리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먼저 인기척을 느낀 것은 그녀였다. 그녀는 쪼그려 앉은 자세 그대로 물끄러미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미, 미안합니다.”
형진은 사과를 건넸다. 강 마담은 몸을 가릴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민망한 모습을 내보이고도 전혀 창피해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술집 안으로 돌아왔을 때 닥터 최는 이미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슬슬 자리를 끝낼 시간인 듯했다. 치마춤을 추스르며 뒤따라온 강 마담이 자리에 앉아 물었다.
“그런데 기자님은 오늘 어디서 묵으세요?”
그녀는 뭔가 아쉽다는 눈치로 한쪽 무릎을 의자 위에 올리고 있었다. 치맛자락 속에서 언뜻 뽀얀 허벅지가 드러났다. 형진은 머쓱히 고개를 돌렸다. 노처녀 작부의 가랑이 사이에서 드러난 깊숙한 살 그림자는 은근히 그를 향해 돌려져 있었다.
“뭐 마땅한 곳이 없으시면 마침 저희 뒷방이 비었는데….”
야릇한 콧소리에 닥터 최가 대신 손을 내저었다.
“아서요, 방은 무슨…. 딴 목적이 있는 거겠지.”
“딴 목적이라뇨? 왜요? 방도 비었겠다, 나야 손님 받아서 방값이나 벌면 좋으니까 그러죠.”
“정말로요? 혹시 간만에 남자랑 누워 보시려는 게 아니구?”
“어머머, 정말…!”
젊은 의사가 능청맞게 키들거렸다. 강 마담이 새침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그들이 바깥으로 나왔을 무렵에는 빗방울이 후두둑거리고 있었다.
<#16>
“괜찮겠습니까?”
“하하, 괜찮습니다. 설마 이 좁은 섬 안에서 음주운전으로 걸리겠어요?”
자동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형진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선술집 문가에 강 마담이 서 있었다. 그녀는 멀어져 가는 차 뒤꽁무니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잠자코 쓴 웃음을 지었다. 자신으로서는 아무래도 좋았지만 어차피 내일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밤 안으로 기사를 정리해 두어야만 했다.
섬 안은 변변한 가로등 하나조차 없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달리는 헤드라이트 불빛 속으로 빗줄기가 점점 굵게 쏟아졌다. 얼추 병원까지 절반쯤 왔을까, 그때였다.
“어? 누구지?”
닥터 최가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으며 말했다. 형진은 그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다. 누군가가 길을 따라 마을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운동복 차림의 젊은 남자였다.
“어이, 광태 씨…!”
차창을 내린 의사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낮에 만났던 오광태라는 사내였다. 의아한 모습이었다. 그는 줄기차게 퍼붓는 비 속에서도 우의나 우산 따위를 전혀 걸치고 있지 않았다.
“어디 가는 길이야? 마을에 나가나?”
차를 멈춰도 상대방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있었다. 형진은 순간 적잖이 괴이한 기분을 느꼈다. 바깥에 선 그 젊은 사내의 눈동자는 마치 검게 뚫린 구멍처럼 초점이 없었다.
그는 닥터 최의 질문에도 전혀 대꾸가 없었다.
“비가 심한데 태워 줄까?”
거듭 물어도 오광태는 묵묵부답었다. 섬뜩할 만큼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그 얼굴은 마치 그들이 아는 척하는 게 귀찮다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지, 닥터 최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시 기어를 넣었다. 백미러 너머로 오광태의 뒷모습이 금세 사라져 갔다. 형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 시간에 어딜 가는 걸까요?”
“글쎄요. 좀처럼 밖에 나오는 일이 드문 친구인데, 우리처럼 술 마시러 가는지도 모르죠.”
“한데 왠지 표정이 심상치 않던데….”
“신경쓰지 마세요. 고시생들이 다들 그렇지 않습니까? 원래 반쯤은 미쳤다고 하는 친구들이니까요.” 젊은 의사가 빈정거렸다. 고개를 넘자 병원 불빛이 나타나고 있었다.
<#17>
쳇, 간만에 재미있는 일이 있을까 했는데. 강 마담은 창문에 기대어 선 채 그렇게 투덜거렸다. 아쉬웠다. 밉살스런 의사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그녀는 뒷방 이불 속에서 기자라던 젊은 사내와 한바탕 뒹굴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상상을 하니 오랫동안 남자 구경을 못해 본 엉덩이가 괜시리 들썩이고 있었다. 야속한 빗방울만이 창틀을 적셔 왔다. 그녀는 슬슬 장사를 마치기 위해 시계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곧이어 기겁을 해댔다.
“아유, 깜짝이야…!” 쾅쾅쾅, 누군가 거세게 유리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문을 열어 주자마자 한 남자가 쓰러질 듯 술집 안으로 들어섰다. 강 마담은 놀란 표정으로 사내를 쳐다보았다. 비 속을 그냥 걸어온 듯 사내의 운동복 전체에서 빗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누군지 알기는 아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남자가 이곳에 온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술 드려요?” 그가 자리에 앉자 그녀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술 주전자를 가져간 강 마담도 그의 탁자에 마주앉지 않았다. 여느때 같으면 꿩 대신 닭이라 여겼겠지만 허여멀건한 도시 샌님 따위는 애초에 그녀의 취향이 아니었다. 안주거리가 없음을 안 강 마담은 주방으로 향했다. 흘끗 보니 사내는 막걸리를 앞에 두고도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비도 오는데 대충 빈대떡이나 부쳐 볼까, 생각한 그녀는 김치나 한 접시 꺼내 올 요량으로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비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어딘선가 우르릉 천둥소리까지 울렸다.
“웬 일이람…. 살다 보니 국회의원 아들한테 술을 팔 때도 있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김칫독을 뒤적이던 그녀는 목덜미로 스며든 빗방울에 오싹하게 몸을 떨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허리를 일으켰다. 세상에-노처녀 작부가 그 자리에 딱 얼어붙은 것은 그 순간이었다. 몇 미터 앞에 시커먼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화장실 안이었다. 아까 허우대 멀쩡한 잡지사 기자와 맞딱뜨렸던 바로 그 문짝조차 없는 뒷간이었다. 어느새 술집 안의 사내가 그곳에 서 있었다. 하지만 강 마담이 놀란 진짜 이유는 그 사내를 마주친 때문이 아니었다. 어둠 속을 응시하던 그녀의 눈동자가 천천히 휘둥그레졌다. 그는 용변을 보고 있었다. 그것도 묘하게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선 채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번쩍, 번개가 스쳐갔다. 찰라 사방이 환해졌다. 그의 기괴한 모습이 똑똑히 드러나자 강 마담의 입술이 멍하니 벌어져 갔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 그녀는 그 물줄기가 쏟아져 나오는 부위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가 히죽이 웃고 있었다. 작부는 뭔가에 이끌린 듯 자신도 모르게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의 눈에는 오직 ‘그곳’만이 보이고 있었다. 동시에 목구멍 속으로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엄청난 갈증이 밀려오고 있었다. 물줄기가 그쳐졌다. 쏟아지는 빗줄기도 아랑곳 않은 채 화장실 안에 들어선 그녀는 허겁지겁 더러운 바닥 위에 무릎을 꿇었다.
<#18>
“아유, 여보! 여보…!”
여자의 새된 목소리가 없는 남편마저 찾아대며 거세게 헐떡였다. 노처녀는 는 자신이 누구와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도저히 믿지 못했다. 방안이었다. 서울에서 왔다는 기자를 끌어들이려고 했던 바로 그 뒷방이었다. 게다가 상대방은-국회의원의 아들이라는 귀하신 몸이었다. 샌님 같기만 하던 총각의 아랫도리에서는 그녀의 몸 속 전부를 휘저어놓는 듯한 힘이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이십 년 넘게 남자를 겪은 몸뚱아리였지만 지금은 그 모두가 한꺼번에 덤벼든다 해도 모자를 성싶었다.
“죽을 것 같아. 아아, 여보!”
사내를 부둥켜안은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사내의 새하얀 등줄기에 열 가닥의 긴 손톱자국이 그려지고 있었다. 급기야 강 마담은 몇 번째의 오르가슴인지조차 잊어 버렸다. 그저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사내의 허리가 계속 힘차게 부딪쳐 오고 있었고, 그럴수록 자신의 쾌감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대단했다. 그는 점점 더 빠르게 살 마주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숨소리 하나 가빠지지 않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