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박미영은 교무실 문을 밀고 들어서며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찌푸렸다. 중학교, 그것도 남자 중학교의 교무실이란 이따금 시장바닥만큼이나 어수선하기 마련이었다. 남자 선생에게 끌려 온 학생들 두엇이 구석에서 벌을 받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동료 교사들은 주위에 둘러선 채 그들에게 호통을 치거나 아니면 점심으로 뭘 먹을까 하는 따위로 잡담을 지껄이고 있었다.
“박 선생님, 전화 받으세요.”
미영이 자기 책상에 앉았을 때 건너편 여교사가 말했다. 교과서를 내려놓은 그녀는 목덜미에 수화기를 끼웠다.
“나야, 여보.”
다소 감이 먼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남편이었다. 그녀의 남편, 김형진.
“전화 못해서 미안해. 어젯밤까지 이곳 섬에 태풍이 불었어. 전화도 불통인 데다가 휴대폰도 배터리가 떨어졌더라구.”
남편은 변명부터 꺼내고 있었다. 미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야 항구에 나왔어. 그동안 배가 뜨지 못했거든. 이해해 줘. 이따 밤에는 서울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알았어요.” 그녀는 짤막하게 대꾸했다.
“정말 미안해. 별 일은 없지?”
“없어요.” 미영이 말한 것은 단 두 마디뿐이었다. 전화가 끊어졌다.
그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교사와 기자라는 직업 차이 때문이기도 했지만-서른다섯의 남편 김형진은 스물일곱의 그녀를 너무 무신경하게 대하고 있었다. 짜증이 밀려든 그녀는 이마를 짚은 채 멍하니 무릎께로 시선을 던졌다. 살색 스타킹에 감싸인 종아리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보기 좋은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문득 누군가가 허리를 굽혀 왔다.
“같이 식사 안하시겠습니까, 박 선생님?”
박미영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옆 반 담임을 맡고 있는 남자 선생이었다. 그녀는 유부남인 그 작자가 평소에 은근한 추파를 보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젓자 유부남은 아쉬운 양 입맛을 다시고 물러섰다.
“손거울? 똑바로 말해, 이 자식들아. 이걸로 여자 선생님들 치맛속 들여다보려고 그랬던 거 아니야?”
벌을 서고 있는 학생들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왔다. 그들 중 한 녀석과 눈길이 마주친 미영은 마치 자신의 치맛속을 훔쳐보인 것처럼 무심코 허벅지를 움찔거렸다.
▲ 그림 최경태 | ||
공중전화 박스에서 나온 김형진은 눈썹을 찡그리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다행스럽게 사흘째에는 비가 그쳤다. 거짓말처럼 개인 하늘에는 조각구름만이 높다랗게 걸려 있었다. 지난 밤에는 도(道) 경찰청에서 형사들이 경비정을 타고 궁도(宮島)에 도착했었다. 형진도 닥터 최와 함께 조사를 받았지만 병원 직원들이 알리바이를 증명해 준 덕에 형식적인 것에 그쳤다.
경찰들의 말로는 강 마담의 시신에서 남자의 정액이 검출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게 누구의 정액인지 판명되기까지는 적어도 수 주일 이상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형진이 보기에 촌구석 작부의 죽음 정도는 그들에게 그리 심각한 사건이 아닌 듯했다. 외딴 섬에 처박힌 노처녀가 외로움을 비관해 자살했다는 방향으로 결론이 날 터였고, 주변 정황도 얼마간은 그런 추론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아내에게 살인 사건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해 봤자 공연한 의심만 사게 될 때문이었다. 어쨌든 기자인 그로서도 더 이상 호기심은 없었다. 그보다 서울까지 돌아가려면 아직도 일곱 시간이나 걸린다는 사실이 더 걱정이었다. 집에는 사흘이 넘게 독수공방했을 아내 미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형진은 차를 타기도 전에 피곤함으로 뒷목이 뻣뻣해졌다.
<#25>
후욱, 버스를 내리자마자 그는 심호흡을 했다. 매연에 찌든 공기가 코 속으로 밀려 왔지만 그 탁한 도시의 냄새에 그의 몸은 고향에 온 것처럼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마침내 세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벌레들의 세상으로. 그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거리에는 수많은 여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른 여자, 뚱뚱한 여자, 못생긴 여자, 섹시한 여자-그들은 모두 벌레들이었다. 그를 위해 몸을 바치게 될 벌레들이었다.
터미널을 빠져나온 그는 걷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버스를 타기는 했어도 수중에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다. 게다가 아직도 걸치고 있는 남루한 운동복은 노숙자쯤으로 보이기에 딱 좋았다. 돈이 필요했다. 어차피 그의 신분에 적잖은 돈을 구하는 따위야 어렵지 않았지만, 그렇게 손을 벌리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준비는 갖춰야 했다. 그는 어떻게 돈을 구할지 알고 있었다.
길을 걸으며 그의 눈은 천천히 먹이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기왕이면 좀 더 먹음직스런 벌레를 구하고 싶었다. 늙은 술집 작부는 그저 급한 대로 써먹었을 뿐이었다. 어디선가 요란한 음악소리가 들려 왔다. 근처에 있는 나지막한 빌딩 앞이었다. 그쪽으로 다가간 그는 무슨 카드회사의 모집광고 아래에 두어 명의 여자가 반짝이는 유니폼을 입고 서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소위 도우미들이었다.
그녀들은 왕왕거리는 스피커에 맞춰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그 중 한 아가씨는 마이크를 쥐고 뭐라 열심히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는 그 여자를 보자 걸음을 멈췄다. 제법 반반한 얼굴의 그녀는 왠지 자신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시큰둥한 억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순간 그는 본능적으로 먹이를 결정했다. 그 아가씨는 확실히 다른 도우미들보다 색기가 묻어났다. 미니스커트 아래로 뻗은 허벅지도 꽤 탄탄했고 꽉 끼는 유니폼 안에 담긴 엉덩이는 풍만한 윤곽을 역력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뚫어져라 그녀를 응시했다.
몇몇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흘끗거렸지만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언뜻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으나 부랑자 따위로 여겼는지 처음에는 그녀도 무시하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그는 잠자코 운동복의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이윽고 여자와 두 번째로 눈이 마주쳤다. 그가 슬그머니 바지 속으로 물건을 쥐자 그녀의 눈동자가 금세 동그레지고 있었다. 세 번째 시선이 마주쳤을 때 여자는 더 이상 그의 바지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이크를 쥔 것도 잊은 채 바라보던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무엇에 홀린 듯 자꾸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급기야 목구멍으로 마른 침을 삼킨 그녀가 동료 도우미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어디 가, 언니?”
“나…, 자, 잠깐 화장실에 다녀올게.” 어설픈 핑계를 댄 그녀는 몸을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눈치채이지 않게 뒤를 살폈다. 운동복을 입은 남자가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그녀를 따라오고 있었다.
<#26>
“아아, 제발…, 제발요!”
여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재촉해댔다. 남자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코 앞에 펼쳐지는 장면을 내려다보았다. 도우미 아가씨의 유니폼 스커트는 어느새 허리 위로 잔뜩 추켜올려져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의 치맛속에서 스스로 팬티스타킹과 팬티를 한꺼번에 끌어내리고 있었다. 여자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건물 안의 비상구 계단이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지만 언제든 누군가와 맞딱뜨릴 만한 장소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그런 수치심 따위는 아예 안중에 없었다. 어떻게든 저 운동복 차림의 사내를 받아들이고픈 파렴치한 욕구만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벗는 것도 귀찮다는 양 그녀는 무릎까지만 속옷을 내린 채 허겁지겁 계단에 손을 짚고 엎드렸다.
그녀가 애원하는 표정으로 돌아보고 나서야 사내는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허리춤이 끌어내려졌다. 찰라 그녀의 입은 탄성으로 멍하니 벌어져 갔다. 단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뒤로 내민 엉덩이 사이에 파르르 경련이 이는 중이었다.
“부탁이에요. 빨리….” 가려진 것 하나없이 허공에 드러난 그 한 쌍의 반구를 남자가 두 손으로 갈라쥐었다. 짐작한 대로 여자의 엉덩이는 커다랐다.
전희(前戱)는 필요치 않았다. 그녀의 둔부와 그의 하복부가 이내 철썩철썩 맞부딪치기 시작했다. 아, 아, 아-점점 높아지는 도우미 아가씨의 교성이 비상구 안에 울려퍼졌다. 사내는 손을 뻗어 그녀의 입을 막았다. 여자는 최대한 허리를 숙이고 선 채 자신의 다리 사이에서 남자가 움직이는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27>
“여기 있어요. 죄송해요, 이게 전부예요.”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다행히 그들을 목격한 사람은 없었다. 계단에 주저앉은 도우미 아가씨는 아직 자신의 벗겨진 속옷을 추스를 생각조차 않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벌어진 상황만 아니었다면 그더러 강도라고 할 성싶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서슴없이 자신의 신용카드까지 내밀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이미 탁한 빛으로 흐려져 있었다.
“더 필요한 거 없으세요?”
씨익 입꼬리를 말아올린 그는 고개를 저었다. 고작 몇만원이 전부였으나 충분한 금액이었다. 용건을 마친 그가 돌아서려 하자 여자는 허둥지둥 핸드백을 뒤지며 뭔가를 내밀었다.
“저…, 저기요. 저는 인수라고 해요. 한인수예요.”
그는 그것을 들여다보고는 피식 코웃음을 쳤다. 그녀가 건넨 것은 휘갈겨 쓴 메모지였다. 메모지에는 한인수라는 이름 아래에 전화번호 따위가 적혀져 있었다.
“저랑 만나 주시면 안돼요? 저 누구한테 이러는 것 정말 처음이에요. 오빠.”
글쎄다. 그가 정말 오빠로 불려야 할 나이인지조차 확실치 않았지만 여자는 숫제 애걸조였다. 역시 벌레들은 하찮았다.
“부탁드릴게요. 오빠랑 사귀고 싶어요. 딱 한 번만이라도 연락해 주세요, 네?”
안타깝게 미소를 짓는 얼굴이었으나 그것은 색정에 목말라하는 표정에 불과했다. 계단 아래에서 인기척이 들린 것은 그때였다. 누군가가 호들갑스런 걸음으로 비상구를 올라오고 있었다.
“인수 언니! 언니 여기 있어?” 여자를 찾으러 온 동료 도우미였다.
인수라는 아가씨가 화들짝 경악을 해댔지만 그는 일부러 몸을 숨기지 않았다. 직후 당혹스런 모습의 세 사람이 마주쳤다.
“어, 언니…?”
두 번째 나타난 아가씨는 눈만 휘둥그레진 채 그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똑같은 유니폼을 입은 두 여자 가운데 한쪽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만큼 옷매무새가 흐트러져 있었다. 그녀의 종아리에는 미처 끌어올리지도 못한 스타킹과 팬티가 그대로 걸쳐져 있었다. 그는 그녀들을 내버려두고 유유히 건물을 빠져나왔다. 물론 여자의 메모지는 제일 먼저 보인 휴지통 속으로 던져졌다. 드디어 벌레들과의 향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