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참, 그 생각만 하면 짜증나 죽겠어요.”
여자가 투덜거렸다.
“안그래요, 오빠? 난 아직 이십대 초반이잖아요. 솔직히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면서 실컷 놀아도 되는 나이 아니에요?”
정말로 따분하다는 듯 여자는 연신 입술을 삐죽거렸다. 오광태는 차가운 냉소를 지으며 대꾸하지 않았다. 노예로서의 봉사를 다한 함연주는 그가 내린 하찮은 보상에도 충분히 만족한 채 사라졌다. 지금 오광태 앞에는 그녀의 친구이자 오늘의 진짜 먹이감인 양경미만이 남아 있었다.
“근데 웬 결혼? 게다가 손주부터 보라구? 흥, 내가 뭐 애 낳으려고 시집가는 줄 아나? 하여간 웃기는 늙은이들이야!”
양경미는 치마폭에 담긴 탄탄한 몸매를 신경질적으로 이리저리 꼬아댔다. 자리를 옮긴 두 사람은 어두침침한 바(bar) 안에 앉아 있었다. 언젠가 오광태가 함연주를 만났던 곳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한 잔에도 몇 만원이 넘는다는 XO급 코냑이 병째 놓여 있었다. 그 값비싼 술은 벌써 절반가량 비워지고 있었다. 양경미는 제대로 된 브랜디잔은커녕 싸구려 양주처럼 스트레이트잔을 홀짝홀짝 들이켰다. 오광태는 그런 그녀를 전혀 말리지 않았다.
▲ 그림 최경태 | ||
미니스커트 속에서 뻗어나온 양경미의 늘씬한 허벅지들이 슬슬 몸이 다는 양 비비적거렸다. 그녀의 발가락 끝에 걸린 구두가 위태롭게 달랑였다. 욕구불만이 잔뜩 쌓인 여자들의 전형적인 자세였다.
“나도 우리 엄마 아빠만 아니면 이러지 않았을 거예요. 오빠는 나랑 결혼할 남자가 어떤지 모르죠? 글쎄 선보고 나서 두 달 동안은 손도 안잡아 주더라구요. 첫키스도 약혼식 전날에야 했어요. 등신! 내가 무슨 숫처녀인 줄 아나 봐.”
심지어 양경미는 스스로 자신이 비(非)처녀라는 사실까지 밝히고 있었다. 턱을 괸 그녀가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오광태를 쳐다보았다.
“아…, 어차피 마지막인데 오늘은 그동안 못했던 거 마음대로 하고 싶어요. 요즘 정말 답답했거든요. 아직 결혼식도 안올렸는데 독수공방부터 했다니까요.”
그동안 못했던 짓거리들, 다른 말로 질퍽한 섹스. 양경미의 둔부가 의자 위에서 야릇하게 들썩였다. 그렇게 해 주지. 평생 잊지 못할 마지막으로-오광태가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 실컷 하고 싶어?”
양경미가 흐릿해진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찰라 오광태의 흰자위에 희번덕이는 광채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그녀의 눈동자는 서서히 색깔을 잃더니 순식간에 아무 빛도 반사하지 못하는 시커먼 구멍처럼 변해 갔다.
양경미의 축축히 벌어진 입술 사이로 멍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네… 네, 오빠.”
“몇 번이나 원하지?”
“많이요. 아주 많이요, 오빠.”
양경미는 홀린 듯한 표정으로 오광태의 사타구니를 흘끔거렸다. 그녀는 자신의 시선이 왜 그곳에 이끌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욕구와 기대감만이 밀려들고 있었다.
<#61>
“저희 남편은…, 기자예요.”
“꽤 바쁜 직업이시군요.”
“네, 아무래도….”
박미영은 망설이며 말꼬리를 사렸다. 처음 만난 사내 앞에서 남편 이야기를 꺼내다니-입술이 깨물렸지만 상대방은 도리어 씨익 웃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저도 한때는 와이프가 있었는데요 뭐.”
남자가 잔을 채워 주었다. 용기를 내려는 양 미영은 그 소주잔을 한꺼번에 절반 넘게 들이켰다. 독한 술맛에 얼굴이 찡그려졌다.
“저희는 선을 보고 몇 달 안돼 금방 식을 올렸어요. 사실 저는 집안도 넉넉한 편이 아니었고, 어릴 적부터 아버지도 안계셨거든요. 그래서 빨리 안정을 찾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하지만….”
미영은 그 대목에서 한 번 더 말을 멈췄다. 과연 이렇게 쉽게 다른 남자에게 남편의 흉을 털어놓아도 되는 것일까? 그러나 한 잔 두 잔 더해진 술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횟집 안에는 젊은 사람도 앉아 있었고 늙은 사람도 앉아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이는 조금…. 조금 고리타분해요. 나이 차이가 많아선지 여자가 원하는 걸 잘 몰라요. 저를 그냥 요조숙녀처럼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요? 혹시 두 분의 잠자리 말씀이신가요?”
순간 헬스클럽 사장이라는 이혼남이 불쑥 그런 질문을 던졌다. 미영은 당황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남자는 멋쩍게 어깨를 으쓱였다.
“죄송합니다. 제 표현이 무례했습니까?”
“아, 아니에요. 그런 건.”
“그럼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미영씨. 어차피 저나 미영씨나 서로 알 만한 건 아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만난 것도 속 시원히 사는 얘기나 나누자는 뜻이니까요.”
그는 여전히 예의바르면서도 호기로웠다. 미영의 뺨이 슬그머니 홍조를 띠었다. 이 사내는 남편과 달랐다. 말뿐이기는 했어도 그녀의 이야기에 퍽 자상하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김형진의 아내 박미영은 고개를 숙인 채 머뭇거리며 속삭였다.
“감사해요,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아닙니다. 천만에요.”
이혼남이 거푸 술을 따랐다. 그녀는 순순히 그 잔마저 홀짝였다.
“모르겠어요. 남편하고 저는 그런 면에서는 안맞는 것 같아요. 솔직히 제가 아직일 때에도…. 자기가 끝나면 돌아누워서 쳐다보지도 않아요.”
급기야 미영은 사실대로 시인하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의 입에서 그런 표현까지 나왔다는 데에 묘한 짜릿함과 민망함을 동시에 느꼈다. 남자가 놓치지 않고 되받았다.
“미영씨 같은 분이 그렇다니 참 안타깝군요. 실은 저도 비슷한 경우였습니다. 제 전처는….”
그가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남녀가 뒤바뀌기는 했지만 미영과 놀랍도록 흡사한 줄거리였다. 그리고 그런 동질감은 언제나 여자의 심리를 허물어뜨리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사내에게는 그녀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말하는 재주가 있었다. 침울했던 미영의 기분은 대화가 오가는 동안, 또 술잔이 오가는 동안 점점 풀어져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무심코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수줍게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물론 그사이 자신이 몇 잔의 술을 마셨는지조차 깨닫지 못했다.
얼굴이 붉어진 그녀가 요의를 느낀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다. 잠깐 실례할게요, 양해를 구한 미영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때였다.
“어머…!”
그녀가 작은 비명을 질렀다. 걸음이 비틀거리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미영씨?”
남자가 벌떡 일어서더니 그녀의 어깨를 부축하는 듯했다. 미영은 그를 쳐다보고 뭐라 말하기 위해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머릿속만 빙빙 돌며 목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사방이 천천히 어두워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환했던 조명이 하나씩 꺼지듯이.
<#62>
“얼른요 오빠, 얼른 나 좀 어떻게 해줘요!”
여자가 남자의 목에 매달려 애원하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헐떡이는 표정을 십분 즐기며 히죽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가로등조차 없는 변두리의 한적한 길가에는 아무도 그들을 보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여자는 그런 음침한 풍경에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반면 남자의 검은 뒷모습은 마치 거리를 가득 채운 어둠 속의 일부분 같았다.
“아무 데나 좋아요. 빨리 어디로든 가요, 네?”
어서 빨리 아무 데나, 거듭되는 재촉에도 불구하고 오광태는 서두르지 않았다. 아니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그들 곁에는 방금 시동을 끈 은색 스포츠카가 세워져 있었다. 양경미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기실 그 장소는 그가 오늘의 향연을 위해 특별히 골라 둔 곳이었다.
흘끔 주위를 살핀 그는 양경미를 건물 뒤편의 어두컴컴한 지하도 아래로 이끌었다. 양경미는 그러는 동안에도 자신의 허벅지 사이를 애타게 그의 허리춤에 문질러대고 있었다.
오광태는 지하도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를 거칠게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양경미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풀어헤쳐진 블라우스 안으로 그의 손길이 서슴없이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는 아무것도 가려지지 않은 커다란 젖가슴을 난폭하게 거머쥐며 뇌까렸다.
“후후후, 브래지어는 어디 있지?”
“몰라요. 나는 없는 게 더 좋아요!”
텅 빈 공간에 두 사람의 목소리가 기묘하게 울려퍼졌다. 한데 뒤엉킨 그들의 몸뚱아리를 비추는 것은 지하도 저편의 흐릿한 불빛뿐이었다. 그녀의 치맛자락이 단숨에 끌어올려졌다.
“여기는 어때? 이 아래도 없나?”
“없어요! 거기도 안입었어요!”
실제로 양경미의 사타구니에는 얄팍한 헝겊조각 하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허벅지에 걸친 요란한 무늬의 스타킹만이 그녀가 스커트 속에 감추고 있던 전부였다. 양경미는 다급한 손길로 그의 바지지퍼를 더듬었다. 이윽고 그녀는 자신이 찾아낸 비경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를 거쳐 갔던 수십 명의 남자들 중에서도 이토록 만족스러운 물건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오광태가 기다렸다는 듯 양경미의 한쪽 무릎을 허리 위로 들어올렸다. 가파르게 치켜든 허벅지 아래로 희뿌연 둔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가 그 출렁이는 살결을 가득 움켜쥔 채 서서히 허리를 들이밀었다.
“아아, 그 남자는 필요없어! 제발 나랑 결혼해 줘요, 오빠!”
두 팔로 그의 어깨를 끌어안은 양경미가 교성을 질러댔다. 발 끝에 걸렸던 백만원짜리 구두가 어디론가 굴러떨어졌어도 그녀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오빠가 나하고 결혼만 해 주면 뭐든지 다 할게요! 나 그 남자랑 결혼 안해, 결혼 안할 거야!”
그 말은 진심이었다. 늘씬한 양경미의 몸매 덕에 그렇게 마주선 자세에서도 결합은 아주 수월했다.
아악-잠시 후 양경미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세차게 도리질을 쳐댔다. 극상의 절정에 도달했다는 그 신호와 함께 그녀의 몸 속으로 격렬한 기운이 퍼져 나갔다.
두 사람은 한동안 그렇게 멈춘 채 움직이지 않았다. 오광태의 몸이 천천히 떼어졌다. 부들부들 떨리고 있던 그녀의 다리가 다시 바닥에 내려졌다.
수백만원짜리 옷이 찢겨지다시피 구겨졌어도 양경미의 얼굴은 갓 채워진 욕정으로 인해 파렴치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오광태는 멈추지 않고 그녀의 몸을 돌려세웠다. 다음 순서를 알아차린 양경미는 아예 나머지 구두 한쪽마저 스스로 벗어던지며 재빨리 허리를 굽혔다. 그녀는 벽을 짚고 벌거벗은 엉덩이를 한껏 뒤로 내밀었다. 오광태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직도 더 원하지? 그렇지?”
“네, 더 많이! 더 많이요!”
고개를 돌린 양경미가 허겁지겁 대꾸했다. 그녀는 그 순간까지도 정녕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오광태는 어둠을 향해 나지막히 키들거렸다. 그랬다.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어둠 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탐욕스럽게 반짝이는 ‘그들’의 눈동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원없이 하게 될 거야. 낄낄낄….”
그녀의 치마를 잔뜩 걷어올린 오광태가 괴기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제야 양경미는 기이한 인기척을 느꼈다. 맙소사-화들짝 등 뒤를 돌아본 그녀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휘둥그레졌다.
희미한 불빛에 드러난 지하도의 구석에서 시커먼 그림자들이 하나둘씩 느릿느릿 기어나오고 있었다. 더러운 옷가지들을 아무렇게나 걸친 그들은 다름 아닌 노숙자와 부랑자들이었다. 그들의 손은 모두 주섬주섬 바지춤을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양경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그들이 다가오는 모습을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