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지 않아?”
박종태가 슬그머니 물가 건너편을 곁눈질하며 오수연에게 속삭였다. 멍하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오수연은 남편이 옆구리를 찔러대고 나서야 화들짝 고개를 돌렸다.
“응? 뭐, 뭐가?”
“왜 그렇게 놀라? 내 얘기 안 듣고 있었어?”
“미, 미안해. 종수씨. 잠깐 딴 생각을 하느라고….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박종태의 턱이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있는 최진구와 장은숙을 가리켰다.
“저 사람들 말이야. 이런 곳에 놀러 왔으면서 남자는 정장에, 여자는 미니스커트까지 입고 있다는 게 아무래도 수상하잖아. 게다가 나이 차이도 꽤 많이 나 보이구. 혹시 불륜 커플이 아닐까?”
“불륜?”
불륜이라는 단어에 오수연의 눈동자가 무심코 흠칫거렸다. 박종태는 아내의 표정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골똘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어디서 한 번쯤 봤던 얼굴인데…. 어디였지?”
어색하게 정색을 해댄 오수연이 말을 받았다.
“관둬. 자기는 예쁜 여자만 보면 꼭 그러더라. 술집에서 봤겠지 뭐. 술집 마담이나 하면 딱 어울릴 옷차림이니까.”
“마담? 에이, 아냐. 오해하지 마.”
박종태가 뜨끔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여자 쪽 말고 저 중년 아저씨 얘기하는 거야. 잘 봐, 어쩐지 아는 사람 같지 않아?”
“난 모르겠어. 관심도 없구.”
오수연은 애써 시큰둥히 대꾸했다. 박종태는 머쓱히 눈을 껌뻑이면서도 여전히 미심쩍다는 양 최진구를 흘끔거렸다. 순간 두 사람의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 왔다.
“많이 잡힙니까?”
헐렁한 옷차림의 남자가 쾌활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강영국이었다.
“특실에 계신 분들이죠? 강영국이라고 합니다. 저도 오늘 여기서 묵는 사람입니다.”
그가 시키지도 않은 자기 소개를 늘어놓았다. 뜬금없는 그의 출현에 맞은편의 최진구와 장은숙도 물끄러미 그들 쪽을 돌아보고 있었다.
“보시는 것처럼 별롭니다. 누가 이곳이 낚시터라고 했는지 원.”
박종태가 툴툴거리며 낚싯줄을 흔들어댔다. 오수연은 그런 남편을 쳐다보며 조용히 눈썹을 찌푸렸다.
“그래요? 심심하기에 저도 낚시나 할까 했는데 포기해야겠군요.”
강영국은 짐짓 목청을 높이며 눈치채지 못하게 최진구를 응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최진구도 그를 향해 유심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칠 무렵 갑자기 호들갑스런 외침이 터져나왔다.
“어? 물었다, 물었어!”
벌떡 일어선 박종태가 낚싯대를 잡아챘다.
“야아! 이거 월척인데.”
두어 뼘만한 커다란 물고기가 펄떡이며 끌려나오고 있었다. 또 다른 여자의 음성이 맞장구를 쳐댔다.
“어머, 정말이네? 우리는 아까부터 와 있었지만 피라미 하나 없던데.”
어느새 최진구마저 남겨 둔 채 쪼르르 달려온 장은숙이 부럽다는 투로 그들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박종태가 의기양양하게 키들거렸다.
“근데 무슨 물고기지? 회를 쳐서 먹을 수 있는 걸까?”
“회?”
오수연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여기에 소주 한 잔이면 끝내 줄 거라구. 안 먹고 싶어?”
“지금 말이야? 나는 왠지….”
“뭐 어때, 생선회 못 먹는 것도 아니면서. 하여간 이게 뭐지? 뭔지 알아야 먹을 거 아냐?”
네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어디선가 나지막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건 향어요.”
처음 듣는 그 음성에 그들은 동시에 몸을 돌렸다. 그제껏 묵묵히 앉아 있던 최진구가 혼잣말처럼 뇌까리고 있었다.
“향어라고요? 그럼 먹을 수 있는 겁니까?”
“그렇소. 회로도 먹고, 매운탕을 끓여도 되지.”
최진구는 짤막히 설명한 뒤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박종태가 손뼉을 치며 제안했다.
“좋았어. 그럼 여기서 당장 회를 쳐 버리는 게 어때요? 술도 가져 와서 함께들 드시죠?”
“호호, 저희야 좋죠.”
마치 모두의 의사를 대변하듯 장은숙이 반색을 해댔다. 강영국조차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오직 오수연만은 별반 내키지 않아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이 몸을 일으키자마자 재빨리 따라 나서고 있었다.
“어디 가는 거야, 종수씨?”
“관리실에 다녀올게. 도마랑 술이랑 필요하잖아.”
“그, 그거 내가 가져 오면 안 될까?”
“됐어. 자기는 그냥 여기 있어.”
무심히 대꾸한 박종태가 펜션으로 달려갔다. 그는 오수연의 입술이 안타깝게 깨물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토요일 오후 3시 정각>
“하아아….”
윤지선은 혓바닥 속 깊숙이 손가락을 밀어넣은 채 가쁜 숨을 헐떡였다. 우욱, 욕이 치밀어 오르자 그녀는 재빨리 좌변기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술기운 때문이 아닌 스스로의 억지 구토였다. 진땀을 흘리며 양치질을 마친 윤지선은 화장실을 빠져나와 창가로 다가갔다. 앞뜰의 강변이 내려다보이고 있었다.
그곳에는 모두 네 사람이 모여 있었다. 잔디밭 끝에는 중년 사내가 혼자 쪼그리고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고, 강영국은 십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두 명의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방 안이 충분히 어두웠기에 그들은 창문 뒤에 서 있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윤지선은 이마를 찡그린 채 강영국이 건넨 명함을 꺼내 들었다. 그녀는 강영국의 멀쑥한 얼굴만큼이나 선명하게 P그룹의 로고가 찍혀 있는 그 종이쪽을 찬찬한 눈길로 살펴보았다. 그녀의 고개가 씁쓸히 가로저어졌다.
“아직은 안돼, 내가 왜 이곳까지 오게 됐는지 잊어 버리면….”
와작 소리를 내며 구겨진 명함이 쓰레기통 속으로 던져졌다.
<토요일 오후 3시10분>
“혼자 오셨다고요? 그럼 강영국씨는 아직 총각이신가 보죠?”
장은숙이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강영국에게 질문했다.
“네. 당연히 총각입니다. 와이프가 있으면 이런 곳에 혼자 왔겠습니까? 사정이 생겨서 하룻밤 신선놀음을 하는 중입니다.”
강영국은 씨익 웃어 보이며 오수연의 얼굴을 흘끔거렸다. 어느덧 그들끼리는 통성명까지 끝낸 뒤였다. 그러나 오수연은 별반 말도 없이 우울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뭐 저만 혼자 온 것도 아니던데요. 특실에도 여자 한 분이….”
강영국이 펜션 쪽을 가리키려는 순간 박종태가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술병을 든 그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준비됐습니다. 이리로 오세요.”
세 사람은 천천히 앞뜰 탁자로 걸음을 옮겼다. 관리인 김종수가 접시며 술병들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를 본 오수연이 슬그머니 움찔거렸지만, 김종수는 마치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전혀 눈길을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강영국이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남편께서는 평소에도 저렇게 조용한 성격이신가요?”
“아, 저이요? 그런 셈이죠.”
장은숙이 피식거리며 대꾸했다. 강변에 앉아 있는 최진구는 여전히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있었다.
“실례지만 성함이…?”
“후후, 이름 따위는 모르셔도 돼요. 신경쓰지 마세요. 보나마나 불러도 안 올 테니까.”
강영국은 지나가는 말이었다는 양 멋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때였다. 박종태가 김종수의 발치에 물고기를 던지며 말했다.
“회 좀 떠 봐요. 얼른 먹게.”
“네?”
김종수가 되물었다.
“빨랑 회나 뜨라구요. 아니면 손님인 내가 직접 떠요?”
“아, 아닙니다. 근데 칼을 안 가져 와서….”
“나 참, 횟감을 잡았다는데 칼도 없이 어쩌자는 거야?”
오수연의 눈동자가 동그레지기 시작했다. 박종태는 거의 반말조로 빈정거리고 있었다.
“그럼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도로 올라가서 가져 오겠습니다.”
“됐어요, 됐어. 그 사이에 물고기가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 여기 있으니까 이걸로 해 보쇼.”
이것, 박종태가 호주머니를 뒤적여 뭔가를 꺼냈다. 그가 그 물건을 펼쳐 김종수에게 내밀자 일순 서늘한 빛이 번뜩였다.
“자요. 이걸로 해 보라구.”
김종수의 이마에 굵은 주름이 그어졌다. 그것은 날카롭게 날이 선, 기다란 스위스 군용 나이프였다.
“뭐 해요? 이런 데 관리인을 해먹으려면 회 정도는 뜰 줄 알 것 아뇨?”
박종태가 마치 하인을 부리듯 재촉해댔다. 칼을 받아든 김종수의 손 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오수연을 쳐다보았다. 두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던 그녀의 낯빛이 새하얘졌다.
“그, 그만둬!”
비명이 터져나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오수연에게 몰렸다. 그녀가 부들부들 몸을 떨며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박종태가 어리둥절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회 안 먹을 거야?”
“시, 싫어. 너무…. 너무 잔인해.”
“싫다구? 하지만 먼저 낚시하러 나오자고 한 건 자기잖아?”
“아니야. 나는 그냥 방에 들어가 있을래.”
몸을 돌린 오수연이 도망치듯 펜션으로 향했다. 박종태는 어이없다는 양 눈을 껌뻑일 뿐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강영국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김종수의 손목을 붙잡았다.
“이리 주세요. 제가 하죠. 학교 다닐 때 일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어깨 너머로 배웠던 게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가 익숙한 솜씨로 물고기의 몸통을 가르기 시작했다.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그럴싸하게 토막난 살코기가 접시 위에 올려졌다. 장은숙이 박종태를 향해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와이프한테 가 보시지 않아도 되겠어요?”
“내버려 두세요. 비위가 약해서 저러는 거예요. 쳇, 이렇게 싱싱한 게 어째서 싫다는 건지.”
박종태는 별 것 아니라는 투로 소주를 들이켰다.
“종수씨, 종수씨도 같이 한잔 하시죠?”
회 썰기를 마친 강영국이 김종수에게 술잔을 권했다. 그가 칼을 다루는 모습을 내내 지켜보고 있던 김종수는 침착한 얼굴로 조용히 사양했다.
“아닙니다. 그보다…. 이따 5시에 이곳으로 모두 내려와 주십시오. 저녁식사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바비큐 파티인가 뭔가 그거 얘기로군. 딱 좋네요. 2차도 될 테니.”
횟감을 집어든 박종태가 히히덕거리며 거푸 소주잔을 채웠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