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서울 KT 광화문지사 앞에서 참여연대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KT아현지사 화재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와 시민들이 통신공공성 확대 및 추가피해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KT아현국사에서 발생한 화재가 처음 보고된 것은 오전 11시 11분이다. 18분부터 소방당국은 인력 208명, 장비 60대를 동원했고 화재 진압에 나섰다. 하지만 완전히 불길을 잡는 데 10시간 이상이 걸렸다. KT와 소방당국이 화재를 인지하기 전 충정로와 마포 일대 KT 이용자들은 이미 통신 이상을 체감했다. 10시 40분 이후부터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고 휴대전화 먹통현상이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아현빌딩 통신구와 첫 번째 맨홀 사이 구간에서 발화를 추정했다. 오성목 네트워크부문장은 현장 복구 지휘 및 비상출동을 지시하고, 1100여 명의 직원들이 긴급 작업에 투입됐다.
문제는 긴급하게 복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팀장들을 중심으로 현장 직원들 가운데 흡연자를 추려 당일 동선과 알리바이 등을 파악한 데 있다. KT 내부에서는 전혀 힘이 없는 일선 직원들을 방화자로 몰아 꼬리 자르려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 나왔다. 아현지국 외 인근 지역 KT지사에서도 직원들의 전날과 당일 동선을 파악하는 등 혹시 모를 방화범(?) 찾기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들은 방화나 담배꽁초 등에 의한 실화 가능성이 작다는 감식결과가 나온 뒤에야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있어 안심했다고 전해진다.
박철우 KT 동지회 의장은 “아현지국의 경우 불이 자연적으로 났을 요소가 거의 없다보니 방화에 대해 고려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일개 직원을 대상으로 범인 찾기에 나섰다면 이는 조직의 문제”라며 “이런데도 KT는 내부를 통제하며 언론이나 외부로 정보가 새나갈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화재는 여러 요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발생 이후 대응에 대해 고민하고 대응력을 키워나가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KT는 말단 직원을 추려 방화자 찾기에 나서고, 그간 재난에 무방비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현재 통신설비의 안전과 시설관리는 외주업체가 도맡고 있다. 애초에 전주와 맨홀에 관련된 케이블을 관리하는 유지보수업무는 KT의 CS부문이 맡던 업무였다. 이 업무를 CS부문에서 네크워크부문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아현지국 사태가 발생했다고 해도 무방하다는 것이 KT 안팎의 목소리다. 유지보수업무의 조직개편은 단순히 부서를 뗐다 붙이는 조직개편이 아니라 인력을 외주화하는 수순이다. 이 일을 담당한 것으로 구현모 KT 사장이 지목됐다.
전주를 관리하던 직원은 CS, 맨홀 관련 통신선을 관리하는 직원은 CM이다. 각 1명씩 2인이 1개 지사에 포함되어야 하는 최소 인원이다. KT는 지속적으로 인력감축을 해왔다. 최근에는 CS 직원을 대폭 줄이고 일부 남은 CS 직원은 CM 팀으로 보낸 뒤 이들을 네트워크부문으로 떼어 붙이는 개편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아현지국 사태도 오성목 네트워크부문장이 현장을 총괄해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KT 내부에서는 오 부문장이 운이 나빴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작 인력 외주화와 조직개편은 구현모 사장이 추진했기 때문이라는 것.
고위 임원진이 실적을 위해 감행한 조직개편은 대형 참사로 돌아왔다. 많은 통신사 지사가 통폐합됐고, 통신 공공성을 위한 최소한의 인력조차 외부에 기대야 한다. KT 동지회에 따르면 현재도 8개 외주업체가 아현지국 유지보수에 투입돼 복구 작업을 전담하고 있다.
앞의 박철우 의장은 “한 업체당 10여 명씩 8개 업체가 화재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비용절감이 부른 참사 수습을 다시 외주화에 의존하는 것이 KT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KT 직원들의 익명 커뮤니티(블라인드)에서는 “국사를 최적화한다며 멀쩡한 건물을 다 팔고 한 곳에다 장비를 몰아넣은 결과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 “통신회사가 본분을 잊고 멀쩡한 장비를 끄고 폐국·통합하며 엉뚱한 미래사업에 치중한 결과다” 등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KT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우선 복구에만 매진하고 있다. 복구가 완벽히 끝나면 다른 상황에 대해 살펴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평안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