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랄, 다른 건 몰라도 이놈을 정리하는 것은 아깝네.’
이상희는 남자의 등을 껴안고 머리를 잔뜩 뒤로 젖혔다. 허리가 활처럼 휘어지면서 입에서 단내가 훅 하고 뿜어졌다. 놈은 상희보다 다섯 살이나 연하다. 나이가 어린 탓에 힘이 넘친다. 이름도 귀엽지 않은가. 제리 로벨. <제리 맥과이어>의 톰 크루즈를 좋아하는 상희에게는 꼭 알맞은 이름이었다. 제리 로벨과 섹스를 할 때 상희는 마치 톰 크루즈와 섹스를 하는 것 같은 환상에 빠져 흥분했다. 기분이 좋다. 상희는 숨이 차오르면서 허리가 저절로 들어 올려졌다. 황홀한 쾌감이 전신을 누빌 때마다 둔부를 들썩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커튼이 내려진 리빙룸은 전체적으로 어두침침했다. 시간은 한밤중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뿜어지는 형광빛이 어둠을 끝없이 밀어내고 있었다. 브래지어까지 벗겨져 있는 그녀의 상체가 텔레비전 불빛에 하얗게 빛을 발했다.
“어서, 어서 … 제리….”
상희는 몸부림을 치듯이 절규했다. 사내의 입과 혀에 의해 그녀의 몸이 해면체처럼 흐느적거렸다. 몸뚱이가 불덩어리처럼 달아올랐다.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워싱턴 DC 공항으로 가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떠나면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가. 상희는 전에 없이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몸부림을 쳤다. 유령이라는 암호로 불리는 사내, 검은 사제복을 입고 목에 하얀 로만칼라를 단정하게 맨 사내가 그녀를 찾아와서 한국으로 귀국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상희는 그의 명령을 접수했다. 명령을 거부하면 허드슨강이나 포토맥강에서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될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다.
‘한국은 경제가 좋지 않은데 왜 귀국하라는 것일까?’
상희는 유령의 명령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질문을 한다고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과묵했고, 결코 질문에 대답하는 법이 없었다. 상희가 알고 있는 것은 그가 신비주의 비밀결사인 프리메이슨의 조직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프리메이슨이 워낙 비밀스러운 단체이기 때문에 누구도 깊숙이 알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상희도 프리메이슨이 세계 시민주의, 국제 엘리트들의 비밀클럽, 세계의 정치가들을 조종하는 절대 권력자들의 모인 단체라는 정도라고만 알고 있었다. 록펠러를 비롯한 세계적인 거부들과 워싱턴과 같은 미국의 대통령들, 모차르트와 같은 예술가, 노벨상을 받은 학자들이 프리메이슨 멤버라는 설도 유력하고 한국에도 이미 지부가 설치되어 있다는 말도 들려왔다. 어쨌거나 프리메이슨은 가공할 만한 단체고 유령은 그 조직의 하수인일 것이다.
유령은 명령을 전달하는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시간 상희는 그가 누구이든지 상관하지 않았다. 자신의 몸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제리 로벨, 영화배우처럼 아름다운 몸을 갖고 있고 포르노 배우처럼 거대한 물건을 갖고 있는 사내와 섹스를 즐기면 그뿐이었다. 3년 동안 동거를 했으나 이제는 헤어져야 한다.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상희가 떠난 뒤에 그가 어떻게 될지는 상희도 몰랐다.
“제리, 좋아 죽겠어!”
상희는 허리를 비틀며 몸부림을 쳤다. 이상하게 다른 날보다 빨리 흥분되었다. 미처 스커트를 벗을 여지가 없었다. 여자의 비밀스러운 곳을 덮고 있던 손바닥처럼 작은 팬티는 이미 그의 손에 의해 벗겨져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제리가 그녀의 내부로 진입해 들어왔다. 상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유령은 템플기사단에서 어떤 위치에 있을까?’
상희는 제리를 몸속에 받아들이면서도 유령의 정체를 생각해보았다. 유령은 다른 말로 템플기사단이라고도 불렀다. 템플기사단은 십자군 원정 때 이슬람교도로부터 성지 순례를 하는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8명의 프랑스 기사들이 1119년에 발족시킨 단체였다. 예루살렘의 왕 보두앵 2세가 왕실 궁전 옆에 기사들의 숙소를 마련했는데 그곳은 고대에 유대인들의 성전이 있던 지역이었다. 그 바람에 템플(성전) 기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템플기사단은 기사, 서전트(sergeant 부사관), 사제, 시종의 네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 중에 기사들은 붉은 십자가가 표시된 흰색 겉옷을 입었다. 프리메이슨과 템플기사단의 관계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프리메이슨이 템플기사단의 변형인지 템플기사단이 프리메이슨 산하에 있는 조직인지, 별도의 조직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프리메이슨 산하에 템플기사단과 유사하게 움직이는 조직이 있다는 사실이고 유령은 그 조직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어떤 비밀결사가 프리메이슨과 템플기사단의 이름을 사칭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프리메이슨에 비해 템플기사단은 비교적 정체가 잘 알려져 있었다. 템플기사단은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었다. 현재까지 템플교회가 존재하고 있고 그들의 본부가 있던 런던의 플리트 거리에는 여러 채의 빌딩들이 아직까지 템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템플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빌딩들은 현재 이너템플과 미들템플이라는 두 개의 변호사 협회가 소유하고 있었다. 템플기사단은 다빈치코드의 블랙마리아(검은 성모)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블랙마리아, 그녀가 유령들의 최고 우두머리다.’
상희는 블랙마리아를 생각하자 몸을 떨었다. 왜 하필이면 세계 금융시장을 농락하는 여자가 블랙마리아인가. 성모마리아를 받드는 영국 교회와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상희는 제리 로벨을 끌어안고도 생각이 많았다.
제리가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누운 것은 한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제리의 등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상희는 제리 옆에 누워서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유령을 생각했다. 유령이 왜 자신을 한국에 보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국에 전쟁이 일어나나?’
전 세계의 전쟁은 프리메이슨과 관련이 있었다. 프리메이슨은 필요에 따라 세계 여러나라에서 전쟁을 일으켰다. 2차대전이나 베트남전, 그리고 걸프전을 일으킨 것이 프리메이슨이라는 음모론이 파다했다.
‘유령이 속한 조직은 어떤 조직일까?’
상희는 유령이 프리메이슨에 소속되어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추측했다. 그들이 아니라면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 할 수 없다.
밖에는 빗발이 추적대고 있었다. 커튼을 살짝 젖히자 빗방울들이 희끗희끗 어둠을 헤집고 날아와 유리창을 두들겼다.
상희는 플라스틱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 담배연기가 빠지라고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쏴아아아. 빗발이 리빙룸으로 들이쳤다. 상희는 워싱턴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비장한 생각이 들었다. 유령은 항공권과 서울의 원룸 열쇠, 그리고 전 세계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신용카드 두 장을 전해주고 갔다. 계좌를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서울에서 최고급 상류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충분한 잔고가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계좌는 상희가 전혀 관여할 수 없다.
‘워싱턴도 이제는 안녕인가?’
상희는 노트북을 포맷하라는 유령의 지시가 떠올랐다. 그러나 컴퓨터 안에 있는 모든 파일을 없애버리는 것은 자신의 살점을 도려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상희는 노트북을 부팅시키고 한국의 카이스트에 다니다가 제적당한 해커와 접속했다.
“내 하드를 포맷해야 하는데 파일 좀 보관해 줘요.”
해커의 아이디는 한글로 ‘창’이었다.
“무슨 파일인가요?”
“학교에서 연구한 파일이에요. 메신저로 보낼 테니까 받아서 보관해 줘요.”
아이디명 창과는 발가벗고 캠팅을 했었다. 서로의 알몸을 보았기 때문에 마치 사랑을 나눈 것처럼 친밀감이 들었다.
“이걸 어떻게 공짜로 보관을 해요?”
“호호호. 내가 한국에 가요.”
“우와!”
아이디명 창이 환호성을 질렀다. 다음 말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 상희는 창의 메신저로 컴퓨터의 모든 파일을 전송하기 시작했다. 초고속 인터넷이라고 해도 파일을 모두 받는 것은 서너 시간이 걸릴 것이다.
상희는 알몸인 상태로 베란다로 나섰다. 빗발이 들이치고 있었으나 끈적거리는 6월이었고 섹스 뒤의 달아오른 몸뚱이를 식히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조지타운대학 경제연구소 연구원 기숙사에서는 저 멀리 신학대학원의 고색창연한 붉은 건물이 한눈에 바라보이고 정원에는 희고 붉은 장미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조지타운대학교 연구원 이상희 박사.
상희의 공식적인 신분이었다. 조지타운대학 대학원을 마치고 대학내의 슘페터 연구소에 재직하고 있었다. 나이는 서른한 살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무르익어 터질 듯이 농염했고 눈은 검고 서늘했다. 두 손으로 움켜쥐어야 딱 맞을 풍만한 유방과 잘록한 허리, 그리고 탄력 있는 둔부는 서양인 못지않게 균형이 잡혀 있었다.
“나는 이제 조국으로 돌아가는 거야!”
상희는 베란다에서 두 팔을 벌리고 섰다. 그녀의 눈부신 알몸으로 빗발이 사정없이 들이치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