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애란은 말끔하게 단장을 하고 있었다. 남색 계열의 항아리 스커트에 핑크톤의 화사한 블라우스, 그리고 역시 남색 계열의 재킷…. 무엇보다 봉긋한 입술에 붉은 루주가 자극적이었다.
“오래 기다렸지?”
설거지를 마친 주애란이 손을 씻고 크림을 바르고 핸드백을 어깨에 걸쳤다.
“괜찮아. 늦지 않았는데 뭐.”
조한우는 주애란과 나란히 아파트를 나와서 승용차에 올라탔다. 아파트단지도 학교로 가는 학생들과 출근하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조한우는 천천히 운전을 하여 아파트단지를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잘생겼단 말이야.”
주애란이 눈으로는 조한우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손으로는 조한우의 바지 앞을 더듬었다. 조한우는 조금만 자극을 받아도 아랫도리가 팽팽해지는 사내였다. 아내가 자극을 하자 금세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당근이지. 그런데 정숙한 여교수님 손이 무얼 하는 거야?”
“호호호. 운전이나 하세요. 이건 내 물건이니까.”
“교수님이 너무 하는 거 아니야? 이거 자극해 놓으면 하루종일 걸리적거려서 어떻게 일을 해?”
조한우는 낄낄대고 웃었다. 아내 주애란이 물건을 만져주는 것이 싫지 않았다. 조한우는 주위의 운전자들에게 신경을 쓰면서 운전을 했다.
“저게 대유그룹 거지?”
서울역 앞에 이르자 거대한 빌딩을 쳐다보면서 조한우가 주애란에게 물었다. 차가 신호에 걸려 있었다. 신호 한 번에 통과할 것 같지는 않았다.
“당연한 걸 왜 물어봐?”
“대유가 부도가 나면 저 건물은 어떻게 될까?”
“누군가 사는 사람이 있겠지. 당신하고 관련이 있어?”
“1년 안에 주식값과 집값이 폭락할 거야.”
“무슨 소리야? 전쟁이라도 일어나? 아니면 유류파동이 일어나는 거야?”
“아직은 모르겠어.”
조한우가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여보오. 사랑해.”
학교 정문 앞에 차를 세우자 주애란이 콧소리로 속삭이고 조한우의 볼에 살짝 키스를 했다. 조한우는 운전석에서 내려 주애란을 위해 문을 열어주었다. 등교를 하던 남녀학생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주애란은 한껏 기분좋은 표정으로 그를 향해 활짝 웃으면서 손을 들어 보이고 정문을 향해 또박또박 걸어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싱그럽고 팽팽한 아내의 뒷모습이었다. 조한우는 주애란이 학생들과 함께 대학교 정문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본 뒤에야 차로 돌아와 운전을 하여 출근했다.
“소장님, 이상희 박사님께서 오셨습니다.”
조한우가 출근해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비서실의 인터폰이 울렸다.
“들어오시라고 그래요.”
조한우는 긴장하며 안락의자에서 일어났다. 국내 굴지의 KG그룹 산하 KG경제연구소 소장 조한우 박사는 조지타운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있던 이상희 박사가 귀국하여 첫 출근을 하자 바짝 긴장했다. 이내 노크소리가 들린 뒤에 이상희가 들어왔다.
‘멋있는 여자로군. 연구만 하는 공부벌레인 줄 알았는데….’
문을 열고 들어온 이상희를 보자 조한우는 눈앞이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상희는 물방울무늬의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서늘한 눈매에 봉긋한 입술, 그리고 풍만한 가슴이 도발적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상희입니다.”
이상희가 희고 뽀얀 얼굴에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숙여보였다.
“환영합니다. 조한우입니다.”
‘이상희라…. 대체 어느 대학 출신이지?’
조한우는 이상희의 프로필을 조사해 보았다. 이상희의 프로필은 간략했다. 1962년 서울 출생, K대학 졸업, 조지타운대학 경제학과 졸업,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동대학교의 경제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가 전부였다. 논문도 몇 편 있었는데 ‘한국의 경제는 버블이다’ ‘한국경제의 과거와 미래’ 등이었다.
‘이제 서른 한 살이면 수재로군.’
조한우는 자신이 프리스턴대학에서 유학을 하던 시절을 잠깐 떠올렸다. 유학을 하면서 향수병에 걸리지 않고 학위를 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금융위기라…. 금융위기가 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조한우는 한국의 경제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몇 달 전부터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한국에 금융위기가 오면 집값이 폭락하고, 기업들이 연쇄부도를 일으키고, 거리에는 실업자들이 낙엽처럼 굴러다니고, 주식값이 폭락하여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게 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전쟁 못잖은 경제위기에 대처할 방법을 몰라 당황하게 될 것이다. 조한우는 그날 이후 한국의 금융 상황에서 면밀하게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상황이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창보그룹, 대유그룹, 신로그룹과 같은 재벌들이 부도가 날 것이고, 현도그룹도 하이네스 반도체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기 때문에 유동성 위기를 대처하지 않으면 위험에 빠질 것이다. 한국의 30대 재벌 중 10개는 쓰러질 것이 분명했다.
기이한 것은 조한우가 한국의 금융위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때 이상희가 귀국하여 국내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이상희는 무작위로 대학연구소와 민간연구소에 취업희망서를 보냈는데 그것이 조한우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앉으십시오. 미인을 보니까 제가 그만 넋을 잃었습니다.”
조한우는 너스레를 떨면서 이상희에게 소파를 가리켰다.
“호호호. 감사합니다.”
이상희가 하얀 이를 드러내놓고 웃으면서 소파에 얌전하게 앉았다. 원피스자락을 가지런히 모으고 다리를 포개는 유연한 동작 하나하나가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조한우는 비서실에 차를 가져오라고 지시하고 눈으로 새삼스럽게 이상희의 가슴께를 더듬었다.
‘흐흐흐…. B컵 사이즈인가?’
조한우는 이상희의 가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살결도 눈이 부시게 하얀 여인이었다.
‘제기랄, 날로 먹어도 비린내가 나지 않겠군.’
조한우는 이상희의 알몸을 상상하면서 눈빛이 몽롱해졌다.
“이 박사님, 한국에 금융위기는 언제 올까요. 논문을 읽기는 했지만 현실감이 없어서요.”
조한우는 이상희와 마주보고 앉아서 질문을 했다.
“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1년 안에 올 거예요.”
“어떻게 확신을 하십니까?”
“남미가 좋은 예가 되고 있어요. 아르헨티나는 2차대전 때만 해도 선진국이었는데 완전히 무너졌죠.”
“대책은 뭐가 있을까요?”
“호호호. 너무 간단하게 물으시네요. 그 질문에 답변을 하려면 하루종일 걸려도 쉽게 답변할 수 없어요. 책을 몇 권 써도 부족하죠. 하지만 한마디로 말하라면 달러를 많이 확보하라는 거예요.”
“그게 대책입니까?”
“그럼요. 소장님도 달러를 많이 확보해 놓으세요. 10만 달러만 모아 놓으면 20만 달러를 벌 수가 있어요.”
그때 비서실 직원이 녹차를 두 잔 가지고 들어왔다. 조한우는 찻잔을 들고 이상희에게 녹차를 권했다.
“아무튼 저는 이 박사님이 우리 연구소에서 함께 근무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같이 근무를 했으면 합니다.”
“저도 조국에서 일을 하게 돼서 기뻐요.”
이상희가 다리를 포개고 앉았다. 그 바람에 짧은 치맛자락 사이로 이상희의 하얀 허벅지가 조한우의 눈을 찔러왔다.
“여보. 우리 은행에 있는 돈을 모두 달러로 바꾸어야겠어.”
조한우는 이상희에게 연구실을 안내해 주고 소장실로 돌아오자 주애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