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미칠 것 같아.’
이상희는 눈을 감고 뱀처럼 미끄러운 팔로 창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기분이 좋아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다. 창이 이상희의 둔부 밑으로 손을 넣어 허리를 들어 올렸다. 깊은 곳이 찔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창의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이상희가 고양이처럼 앓는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창에게는 위장을 할 필요가 없다. 창은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창에게 바라는 것도 없고 줄 것도 없다. 그냥 이 순간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상희는 철저하게 쾌감을 향유하기 위해 오로지 섹스에만 몰두했다. 두 사람은 한 마리의 짐승처럼 뒤엉켰다. 마치 싸움을 하듯이 30분 동안 으르렁거리면서 땀을 흥건히 흘렸다. 이내 창이 이상희를 바짝 끌어안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아, 좋아.”
이상희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창을 껴안았다. 창은 이상희의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얹어 놓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등이 땀으로 흥건했다.
“멋있어요. 내가 만난 여자들 중에 최고예요.”
창이 이마의 땀을 그녀의 가슴에 문질러 닦았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그러나 이 순간 이상희는 창이 싫지 않다. 그가 자신의 몸속에 있을 때까지 타인이 아니다.
“호호호. 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만났기에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채팅을 하면서 적지 않은 여자들을 만났어요. 요즘은 프리섹스 시대잖아요.”
“채팅을 하면 바로 여자들을 만날 수 있어?”
“70~80%는 당일치기로 모텔까지 갈 수 있어요.”
“대단한 실력인데…, 창은 어떤 여자들이 제일 좋았어?”
“학생도 있고…, 직장 여성도 있는데 그래도 유부녀들이 제일 좋아요.”
“왜 유부녀들이 좋은 거야?”
“스릴이 있어요. 남편에게 들킬까봐 전전긍긍하기 때문에 그러는지 굉장히 조심스러워 하다가도 일단 모텔에 들어가면 장난이 아니에요. 세상이 끝나기라도 하는지 미쳐 날뛰죠.”
“하룻밤에 몇 번 할 수 있어?”
“세 번 정도….”
“좋아. 그럼 오늘 밤에도 실력을 한번 발휘해 봐.”
이상희가 깔깔대고 웃음을 터뜨리면서 창의 엉덩이를 두드렸다.
이튿날 이상희는 개운한 기분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창은 이미 일어나서 돌아가고 없었다. 이상희는 나신인 채로 커피를 끓여 마셨다. 혼자 살고 있는 것이 좋은 점은 집안에서 발가벗고 다녀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밖에는 이제 겨우 동녘이 밝아오고 있었다.
‘한국은 이제 본격적인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겠군.’
텔레비전을 틀자 6시 뉴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톱뉴스는 오늘도 여당과 야당의 대권 후보들의 동정에 대한 것이었다.
사무실에 출근하자 KG그룹 회장실에서 향후 경제 전망에 대해 자세하게 보고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있었다. 이상희는 연구소장 조한우와 함께 준비해 놓은 1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보고서를 올렸다. KG그룹 구조 조정과 유동자금 확보방안에 대한 대책이었다. KG그룹은 이상희를 연구원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금융대란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창보그룹에 단기 자금을 융자해도 위험하지 않겠는가.”
다나카 미사토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은 일주일 뒤의 일이었다. 그때는 이상희가 이미 부총리 김성준을 두 번째 만나고 난 뒤의 일이었다. 김성준은 청와대와 여당 사무총장이 창보철강에 정책자금을 지원하라는 특별지시가 내려왔다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호호호. 고민할 필요 없어요.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 지원을 할 수 없는 거 아니에요?”
이상희는 역으로 부총리 김성준을 자극했다. 강남의 주택가에 있는 비밀요정이었다. 비서관들은 모두 밖에서 대기하고 있고 그들은 안채의 깊숙한 방에서 식사를 하면서 술을 마셨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지 않소. 이 박사는 뭔가 좋은 방법이 없소?”
“방법은 없어요.”
“창보철강은 각하께서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이오. 포항제철이 박정희의 치적이었듯이 각하도 물러난 뒤에 창보철강을 자기가 건설했다는 이름을 듣고 싶어 하는 거요.”
“정치적인 문제라면 부총리께서 괴로워하실 필요 없는 거 아닌가요?”
“그렇지요? 역시 이 박사의 위로에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소. 이 박사는 참으로 총명하고 아름답소.”
김성준이 야릇한 눈빛을 보냈다. 이상희는 김성준의 은밀한 눈빛이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김성준도 수컷이 아닌가. 여자들은 수컷이 보내는 신호를 간파하는 능력이 있다. 싫으면 눈빛이 차가워지지만 싫지 않으면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좋다는 신호인 것이다.
“이 박사처럼 아름다운 여성과 연애를 하면 죽어도 소원이 없을 것 같소.”
“부총리 각하처럼 멋진 분이 왜 그러세요.”
이상희는 밉지 않게 눈을 흘기는 시늉을 하면서 김성준의 접근을 슬쩍 튕겨냈다.
“아니오. 나는 사랑이라는 것을 해본 일이 없소.”
“부인이 계시잖아요?”
“그냥 중매로 결혼했기 때문에 집사람을 사랑한다는 감정은 없었소. 지금은 그저 친구처럼 지내고 있을 뿐이오.”
“저도 미칠 것 같은 사랑을 한번 해보고 싶죠.”
김성준처럼 나이 먹은 사내에게 계속 튕기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상희는 적당한 선에서 호응을 해주는 척했다.
“이 박사.”
김성준이 갑자기 이상희의 자리로 다가왔다. 김성준의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다. 술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욕망이 들끓는 수컷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네?”
“참으로 아름답소. 아름답다는 말 외에는 무어라고 표현할 방법이 없소.”
김성준이 이상희를 와락 끌어안고 입술을 비벼댔다. 이상희는 그의 입술을 거부하지 않았다. 거부하면 이런 사내는 모욕감을 느끼고 멀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 너무 빠른 것 같아요.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이상희는 김성준을 살며시 밀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김성준의 손이 뜻밖에 스커트 안으로 빠르게 밀고 들어와 삼각 분기점의 도톰한 부분을 덮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어눌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손이 놀랄 정도로 날쌘돌이였다.
“이러시면 안 돼요. 부총리께서 이러시면 저를 모욕하는 거예요. 저는 술집 여자가 아니에요. 그런 여자 취급하지 마세요.”
이상희가 맹렬하게 그의 손을 뿌리쳤다.
“미, 미안하오. 내가 너무 흥분했던 것 같소.”
김성준이 비로소 이상희에게서 떨어졌다. 그러나 그의 손이 이상희의 깊숙한 곳까지 만진 뒤의 일이다. 능청스러운 인간이다.
“저에게 며칠 동안이라도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남자들에게는 너무 가벼워 보여도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창녀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좋소. 사흘 후에 창보그룹 회장과 골프 모임이 있는데 같이 가겠소?”
“저야 영광이죠.”
“아마 그 자리에는 어르신의 동생도 나올 거요.”
어르신의 동생은 사람들이 소통령이라고 부르는 여당의 실세를 말하는 것이다. 대통령선거 때 ‘나라 구하기 운동본부’라는 이상한 청년단체를 만들어 막대한 대선자금을 끌어 모았었다. 본부장은 명망 높은 인사가 맡고 소통령은 기획실장을 맡고 있다. 부총리 김성준과 창보그룹 회장이 골프장에서 만나는 것은 창보철강에 대한 융자 때문일 것이다.
이상희는 강남의 요정에서 김성준과 헤어질 때 그의 볼에 가벼운 키스를 해주었다.
“9월까지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9월에 다시 한 번 융자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상희는 다나카 미사토에게 보고했다. 골프를 치면서 창보그룹 회장 장학민을 살피자 예사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면 정치인에게 제공했던 비자금이라도 기자들에게 모두 폭로할 것 같은 무대포형 인간이었다. 그러나 융자를 받기 위해 그는 억지로 내기 골프를 치고 있었다. 골프 실력이 훨씬 뛰어난데도 이상희와 김성준에게 보기를 범하면서 져주고는 했다.
나라 구하기 운동본부 기획실장인 소통령 김철호는 새파란 30대였다. 이상희는 이런 자가 나라를 좌우한다고 생각하자 역겨웠다. 김철호는 국회의원 공천, 대통령의 인사문제까지 좌우하여 장관들까지 쩔쩔매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