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남녀가 헤어질 때 뭐라고 그러는지 아세요? 딱 한 마디래요.”
“뭐라고 그러는데요?”
“빼!”
“호호호. 재미있네.”
여자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깔깔대고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나 발칙한 상상인가. 남녀가 둘이 앉아서 야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흥분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여자도 지지 않으려는 듯이, 자기의 지식을 과시하기라도 하듯이 PC통신의 야한 이야기를 했다.
“부부가 연령별 섹스 하는 법도 있어요.”
“그래요? 그건 뭡니까?”
“이십대는 이심전심으로 하고 삼십대는 삼삼하게 하고 사십대는 사족을 못 쓸 정도로 하고….”
여자가 자신의 말이 지나치다고 생각했는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강유미라고 그랬던가. 이 여편네도 달아오른 기색이 역력했다. 간간이 자세를 고쳐 앉는 것이 다리가 꼬이고 있는 것이리라. 하기야 오준태의 물건이 불끈 솟았는데 저라고 온전하겠는가. 오준태는 강유미의 옆에 바짝 다가앉았다. 얼마나 바람을 피우고 싶었으면 화장을 이렇게 진하게 했겠는가. 강유미는 오준태가 옆에 앉는데도 피하지 않았다. 서른너댓 살쯤 되었을까. 수영장이라도 다니는지 몸매가 팽팽하게 균형이 잡혀 있다. 봉긋한 젖가슴은 탐스러운 편이고 살결도 뽀얗다. 머리가 단발머리인데 소녀티가 나면서 요염해 보였다.
‘흐흐…, 속살이 통통하게 올라있겠군.’
오준태는 상 위의 요리를 먹으면서 강유미를 해치울 궁리를 했다. 오준태가 여자를 후리는 것은 몇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오늘은 세 번째 시나리오로 진행 중이었다. 밖에 나가서 종업원들에게 들어오지 말라고 했으므로 30분 동안 방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것이다.
강유미는 강남의 아파트를 전매하여 많은 돈을 번 여자다.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기 위해 등기도 하지 않고 있다가 전매를 한다. 남편은 공무원이라고 하는데 건설부의 주택과에 있다. 그러니 아파트값이 오르내리는 것을 오죽 잘 알겠는가. 아파트가 분양된다고 하면 떳다방과 연합하여 딱지를 왕창 사들였다가 프리미엄을 붙여서 팔아먹는다. 게다가 IMF 이후 아파트값이 폭락하지 않았는가. 그때도 20여 채의 아파트를 사들였다가 되팔아 10억여 원의 이익을 챙기고 팔아치웠다.
‘이런 여편네는 떼돈을 벌고 있는데 나는 심부름이나 하고 있으니….’
오준태는 강유미와 같은 여자들이 돈을 벌고 있는 것을 보고 눈이 뒤집힐 것 같았다. 지난 7년 동안 얼마나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해왔던가. 그런데 하루아침에 회사가 부도가 나자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실업자가 되었던 것이다.
6개월 동안의 실업자 생활은 악몽과 같았다. 그는 IMF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시시각각 닥쳐오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정부에서조차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쩔쩔매다가 당했는데 일개 직장인이 어떻게 알겠는가. 오준태가 실업자가 된 것은 IMF가 닥치기 3개월 전의 일이었다. 오준태는 다른 사람들보다 3개월 먼저 IMF를 맞은 셈이었다.
‘이제는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돈을 번다.’
오준태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강유미와 같은 여자를 만나고 그녀들의 심부름이나 하면서 결정적인 기회가 왔을 때 한몫 챙기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기 위해서는 치맛자락 펄럭거리고 돌아다니는 돈 많은 여편네들을 닥치는대로 해치워야 했다.
“손 좀 잡아 봅시다.”
오준태는 식사가 얼추 끝나자 강유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강유미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오준태를 쳐다보았다. 음담패설을 유머랍시고 실컷 해댔으므로 강유미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냥 잡고만 있을 게요. 연애하는 기분이라도 느끼려고 그래.”
강유미는 오준태보다 서너 살이나 위로 보였다. 그래서 오준태는 강유미에게 경어도 쓰고 반말도 한다. 강유미가 오준태를 빤히 쳐다보다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는 거야?”
“손 잡는다고 연애 기분이 나나?”
강유미가 하얗게 눈을 흘기는 시늉을 했다. 마치 동생을 나무라는 듯한 태도였다.
“그럼 이걸 만질래?”
오준태는 강유미의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물건 위에 올려놓았다. 강유미가 깜짝 놀라서 손을 떼려고 했다. 그러나 오준태는 억센 손으로 강유미의 손을 잡아 자신의 물건 위에 머물러 있게 했다. 여자의 손을 감지한 오준태의 물건이 눈치 빠르게 꿈틀거렸다.
“이러지 말아. 이러면 안 돼.”
“조금만 만져줘. 몇 달 동안 굶어서 여자만 보면 환장을 한다구. 그냥 딱 1분만 만져줘.”
“미쳤나 봐.”
“내 사정 한번만 봐줘. 내가 어떻게 하자는 거 아니잖아? 음식점에서 어떻게 할까봐 그래?”
오준태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강유미가 할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고 그의 물건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강유미가 그의 물건을 만졌으니 오준태도 강유미의 은밀한 곳을 만지겠다고 떼를 썼다. 강유미는 펄쩍 뛰는 시늉을 하면서 거절했으나 곱게 물러날 오준태가 아니었다. 무릎만 만지게 해달라고 사정을 하여 방심을 하게 한 뒤에 기어이 허벅지를 만지고 그곳까지 진입했다. 비록 일식집이었지만 강유미를 완전히 흐느적거리게 만들어 모텔로 끌고갈 수 있었다.
‘흐흐…, 한 번 먹기가 어렵지 길만 들여 놓으면 내 여편네지.’
오준태는 침대 위에 축 늘어져 있는 강유미의 알몸을 내려다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모텔에서 30분 남짓 봉사를 해주자 여자는 고양이 우는 소리를 내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이제는 오준태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고마워.”
오준태는 강유미의 도톰한 입술에 키스를 했다.
“너무 좋았어. 온몸이 전율하는 것 같았어.”
오준태는 여자의 귓전에 낮게 속삭였다. 여자는 대꾸하지 않고 배시시 웃고만 있다. 남편 몰래 바람을 피웠다는 죄책감 때문에 노골적으로 좋아하는 표정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오준태가 30분 동안이나 봉사를 해주었으니 몇 시간만 지나면 다시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모텔에서 나오자 여자를 택시에 태워보내고 오준태는 사우나에서 들어가서 쉬었다. IMF 상황이라 사우나도 텅텅 비어 있었다. 음식점들이 문을 닫고 거리에는 실업자들이 넘치고 있다. 대기업들이 줄줄이 부도가 나서 30~40대 남자들이 실직을 하여 우울한 얼굴로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한증막에서 땀을 빼고 휴게실에 들어가서 눈을 감았다. 지난 두 달 전의 일을 생각하면서 잠을 청했다. 2개월 전만 해도 오준태는 실업자로 거리를 배회하다가 조선의 왕들 신주를 모신 종묘에 들어가 낮잠을 자곤 했다. 그는 천천히 지난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2개월 전의 일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으로 스쳐왔다.
잔디밭에 수선거리는 햇살이 걷히면서 어둠이 스멀거리고 내리기 시작했다. 따가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 신문지로 얼굴을 덮고 있던 오준태는 어둡고 축축한 바람이 살갗을 스치자 비로소 눈을 떴다. 역시 선잠이었다. 마땅히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종묘까지 들어와서 잔디밭에서 눈을 붙였으나 짧은 가을 해가 기울면서 기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잔디밭에 누워 있어도 등이 차갑다. 이제는 고궁인 종묘도 문을 닫을 것이다. 하늘은 매연 때문에 잿빛으로 흐릿했다. 태양이 떠 있어도 언제나 흐릿한 하늘이었다. 종묘를 나온 오준태는 지하철역을 향해 느릿느릿 걷다가 전파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전파사 앞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오준태도 전파사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했다. 대통령은 특유의 경상도 악센트로 한국에 금융위기가 와서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동참하여 극복할 것을 호소하고 있었다.
“정부는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구조조정의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다하겠습니다.”
텔레비전은 정부가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이라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대통령 특별 담화문 내용을 잇달아 방송하고 있었다.
“IMF가 뭐야?”
“글쎄 무슨 소리인지 통 모르겠네.”
사람들은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대기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종합금융회사의 정리, 공적자금 투입, 외화수급 특별대책 등 전에는 좀처럼 들어보지도 못하던 단어들이 아나운서의 입에서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저것인가. 기업들의 방만한 운영이 은행의 부실을 초래하여 금융위기가 온 것인가.’
오준태는 텔레비전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그는 IMF라는 말도 처음 들었고 한국에 금융위기가 심각했다는 말을 들은 일도 없었다. 지난 몇 달간 한국에 위기가 닥쳐왔다는 말이 언론에 간간이 보도가 되기는 했으나 대통령선거에 묻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다만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실업자가 되어 있었고 취직을 하려고 몸부림을 쳐도 기이할 정도로 취직이 되지 않았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