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돈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니까 해볼 만한 가치가 있어.’
오준태는 소파에 앉아서 깊이 생각에 잠기다가 결단을 내렸다. 주애란의 통통한 허벅지와 하얀 속옷자락이 다시 눈앞에 어른거렸다. 김포의 장어요리집에서 두 시간쯤 식사를 하면서 술을 마신 뒤에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억새풀이 우거진 하천 둑을 걸었다.
“선배, 정말 매력 있다.”
오준태는 주애란의 뒤를 따라 걷다가 둥그스름한 주애란의 히프를 보면서 마른침을 꿀컥 삼켰다. 남자들은 왜 여자들의 둥그스름한 곳에 자극을 받는 것일까. 여자들의 가슴이나 히프에 남자들의 눈이 쏠리는 것은 그곳이 부드러운 구형(求刑)이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후배가 감히 선배를 희롱하는 거야?”
주애란이 돌아보면서 눈을 하얗게 흘겼다. 하얀 눈자위가 옆으로 쏠리는 모습도 매력적이었다. 입 언저리에 미소를 매달고 있는 탓이다.
‘흐흐…, 외간남자와 밖에 나왔는데 선배라고 달아오르지 않겠어?’
오준태는 여자나 남자나 똑같은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고 욕망이 일어나면 섹스를 해야한다. 점잖은 말로는 식욕이니 성욕이니 하지만 톡 까놓고 말하면 합쳐지고 싶은 것이다. 사무실에 있을 때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앞에 앉은 여자들의 옷을 벗기는 상상을 하는가. 어떤 보고서에 의하면 여자들도 하루에 한 번 이상 이성과의 섹스를 상상 속에서 꿈꾼다고 한다. 이성이 서로 자극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종족번식이 이루어지겠는가.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기회만 있으면 서로에게 달라붙으려는 종족보존의 본능 때문인 것이다.
“한눈에 반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 그건 Y의 유전자나 X의 유전자가 마주쳤을 때 서로의 유전자를 검색하여 저 유전자와 내 유전자가 합치면 우량종이 나올 거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는 거야.”
남녀가 서로에게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시각 때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유전자가 서로를 알아본 뒤에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작용이라는 것이 유전공학을 전공한 어느 교수의 말이었다. 오준태는 유전자에는 문외한이었으나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다.
“희롱하기는 완전히 S라인인데…. 난 선배의 날씬한 몸매를 칭찬하고 있는 거라고.”
오준태는 술까지 마셨겠다, 주책을 떠는 시늉을 하면서 여전히 주애란의 히프에 시선을 꽂아놓고 집적거렸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집적거리면 징그러운 듯이 몸을 떠는 시늉을 하면서 경멸하다가도 어느 순간에 넘어가고 마는 것이다. 여자가 가장 약한 곳이 귀가 아닌가. 여자는 남자가 달콤하게 속삭이는 말에 항상 무너진다.
“입 다물어. 더 이상 진도 나가면 너하고 사업 안할 거야.”
오준태가 술기운을 빌어 반말을 하자 주애란은 너라는 말까지 사용했다. 그것은 더욱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선배는 내가 그렇게 못생겼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못생겨서 싫으면 그렇다고 말해. 얼굴은 안 보이게 뒤에서 안기만 할게.”
“호호호. 진짜 못 말리는 화상이네.”
주애란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선배, 히프만 살짝 만질게 화내지마.”
“미워하기 전에 그만해.”
“후배 사정 좀 안 봐줘? 선배가 뭐 그러냐?”
오준태는 주애란에게 바짝 다가가서 어린 아이처럼 보챘다. 주애란도 몸이 더워 오는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준태는 주애란의 둥근 히프에 슬며시 손을 갖다가 댔다.
‘흐미 좋은 거.’
“그만해라. 자꾸 치근대면 추해지는 거야.”
주애란이 오준태의 손을 떼어내며 서릿발이 내리듯이 냉랭한 말투로 내뱉었다. 자칫하면 감정이 폭발할지도 몰라 오준태는 재빨리 손을 떼었다.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오준태는 주애란을 언제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배운 여자들이나 교양 있는 여자들이나 일단 발가벗겨 놓으면 똑같은 것이다.
“퇴근 안하세요?”
저녁 때가 되자 정혜원이 오준태에게 말을 건넸다.
“아, 해야죠.”
“제가 저녁 살게 같이 나가실래요?”
정혜원이 오준태에게 눈웃음을 쳤다. 오준태는 정혜원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정혜원의 느닷없는 제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이게 왜 나한테 대시를 하는 거지?’
오준태는 정혜원의 가슴께에 시선을 던지고 눈을 끔벅거렸다.
“술이라면 몰라도 저녁은 사양할래요.”
오준태는 일단 튕겨보았다. 정혜원이 더 달라붙으면 사양하지 않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술은 나중에 하고요.”
정혜원이 약간 눈을 흘기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그럼 저녁도 나중에 하지요, 뭐.”
오준태는 일단 정혜원을 눈으로 밀어냈다. 여자가 접근한다고 해서 냉큼 따라나서면 백발백중 실패한다. 적당하게 밀고 당기기를 해야 여자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럼 내일 뵐게요.”
정혜원의 얼굴에 언뜻 실망한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오준태는 고개를 까딱해 인사를 했다. 정혜원은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오준태는 김상복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상복은 논현동 룸살롱에서 부동산중개소 사람들과 모임이 있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준태가 좀 만나자고 하자 술집으로 오라고 말했다. 오준태는 술을 마시게 되면 늦게 끝날 것 같아 근처에서 설렁탕을 한 그릇 먹은 뒤에 택시를 잡았다. 오준태는 룸살롱의 빈 방에서 김상복과 마주앉았다.
“넌 현금 얼마나 동원할 수 있어?”
“글쎄, 왜 그러는데?”
“200억쯤 할 수 있어?”
“인마, 내가 무슨 졸부라고 그렇게 큰돈을 동원해. 주애란 선배와 관련된 거야?”
“그래. 아주 큰 건수야.”
오준태는 주애란이 제안한 이야기를 김상복에게 낱낱이 설명했다. 김상복의 얼굴이 점점 심각하게 바뀌어가더니 이야기가 끝나자 오준태의 손을 덥석 잡았다.
“괜찮다. 니가 엄청나게 큰 건을 잡았어.”
“그래서 얼마나 동원할 수 있는데?”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돈이 20억쯤 될 거야. 그리고 내가 아는 여자가 30억쯤?”
“그럼 그 뚱뚱이가 나머지 150억을 동원할 수 있을까?”
“글쎄, 워낙 큰돈이라 쉽지 않을 걸. 아무튼 내일 당장 그 여자한테 접근해 봐. 내가 어떻게 하든 100억 만들어 볼게 그 여자가 100억을 동원하게 만들어.”
“우리 말을 믿을까.”
“우리 말은 믿지 않아도 주애란 선배 말은 믿을 거야. 남편이 요즘 잘 나가고 있잖아.”
김상복이 눈을 빛내면서 오준태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오준태는 김상복과 이야기를 끝내자 부동산중개소 사람들과 합석하여 어울렸다. 일일이 명함을 주고받고 인사를 나눈 뒤에 아가씨들을 무릎에 앉히고 놀았다. 탁자에는 박통이 마시다가 총 맞고 죽었다는 시바스리갈 양주병과 콜라, 우롱차, 우유, 과일 안주가 푸짐하게 놓여 있었다.
‘이쁜 여자들은 모두 룸살롱에 모여 있다고 하더니 이거 보통 미인이 아니네.’
오준태는 무릎에 앉아서 아양을 떠는 미스 신이라는 아가씨 때문에 물건이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오준태는 미스 신의 가슴을 쥐고 부드러운 촉감을 즐겼다.
“어머, 어머….”
오준태의 물건이 엉덩이를 찔러대자 미스 신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기랄, 여자가 엉덩이로 비벼대는데 물건이 안 서면 그게 사람이냐?’
오준태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러나 술자리는 초저녁에 시작되었는지 오준태가 즐길 새도 없이 파하고 말았다. 자리에 있던 몇 사람이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하자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오준태도 덩달아 일어서야 했던 것이다.
“자기 늦었네.”
집에 돌아오자 아내가 속살이 은은하게 내비치는 나이트가운을 입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오준태에게 달려들었다. 오준태는 아랫도리가 팽팽하게 부풀어 있던 참이라 아내를 안아서 무릎에 앉히고 가운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룸살롱의 여자가 자극을 해놓는 바람에 아내만 호강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