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만나 보기나 하는 거야.’
장은숙은 커피숍으로 들어서면서 속으로 다짐했다. 호텔 커피숍은 언제나 그렇듯이 평화롭고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남자는 투숙하고 있던 객실에서 내려온 탓인지 먼저 와서 창가에 앉아 있다가 이상희와 장은숙이 들어오자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타이 차림이었으나 단정한 정장이 부유해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남자가 환하게 웃으면서 그녀들에게 목례를 했다. 외국인의 독특한 억양이었다. 머리는 금발이고 눈은 푸른빛이었다.
‘아아 내가 정말 금발머리에 푸른 눈의 서양 남자를 만났구나.’
장은숙은 가슴이 방망이질을 하듯이 세차게 뛰는 것을 느꼈다. 외국인을 거리에서는 많이 보았으나 직접적으로 얼굴을 마주 대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상희가 소개를 했으나 어떻게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받았는지 정신이 몽롱했다. 그의 이름이 로버트 한이라는 것만 머릿속에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커다란 키에 머리가 단정했다.
‘이건 운명이야, 운명….’
장은숙은 로버트 한이 적어도 비호감이 아니라는 사실에 만족했다. 이 사람을 만난 것은 운명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을 졸업한 후에 10년이 넘게 만나지 못했던 이상희를 만났을 리 없고 정동일과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다.
이상희는 차를 타고 한남대교를 건너 시내로 들어오면서 정동일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는 선약이 있다고 했다. 장은숙은 실망하여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이상희가 기왕이면 외국 남자와 데이트를 하라고 했던 것이다.
“미쳤니? 외국 남자와 무슨 데이트를 해.”
장은숙은 펄쩍 뛰었다. 장은숙은 영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거리에서 외국인들이 길을 묻는 것도 두려워했다. 외국인이 지도를 들고 거리에서 서성거리고 있으면 일부러 피해 다녔다.
“싫어? 그 사람 오늘 밤에 비행기로 뉴욕으로 돌아가.”
“미국 사람이야?”
장은숙이 넌지시 물었다. 속으로는 결혼할 것도 아닌데 말만 통하면 데이트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인이지. 빅스타라고 미국 투자회사 부회장인데 미국 금융계의 거물이야.”
“어느 정도 거물인데?”
“세계 금융을 주무르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왜 한국인과 데이트를 하겠어?”
“여자는 남의 여자가 좋다고 그러잖아? 너 솔직히 외국 남자하고 하는 거 싫어?”
이상희가 눈가에 야릇한 미소를 떠올렸다. 장은숙은 아랫도리로 짜릿한 기운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외국인과 데이트를 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외국인과 같이 다니면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기 때문에 썩 좋은 느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이라는 신비감이 장은숙을 달아오르게 했다.
“게다가 그 사람 그게 아주 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장은숙은 일부러 못 알아들은 체했다. 서양 포르노 비디오에서 본 남자의 거대한 성기가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큰 게 네 몸속으로 들어온다고 상상해 봐. 흥분되지 않니?”
“얘가 왜 이래? 그만해.”
장은숙은 자신의 붉어지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이상희는 교묘하게 그녀를 자극하고 있었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비밀스러운 곳이 흥건하게 젖어왔다. 이상희는 이성배와의 약속시간까지 늦추면서 장은숙에게 외국인을 소개시켜 주기 위해 호텔 커피숍까지 같이 온 것이다.
이상희는 로버트 한과 영어로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은숙은 이상희를 따라 나가고 싶었으나 어떤 강력한 욕망이 그녀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이런 기회가 흔하게 오는 것은 아니다. 로버트 한은 여유 있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장은숙은 긴장이 되어서 그를 마주볼 수가 없었다. 로버트 한의 그것이 크다고 말한 것을 보면 이상희는 이미 같이 잤다는 말이 아닌가. 나쁜 년. 친구에게 저와 같이 잔 외국인을 소개시켜 줄 게 뭐야. 그나저나 이 사람의 그게 얼마나 크기에 상희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장은숙은 온갖 생각이 두서없이 머리를 스쳐가고 스쳐왔다. 잠시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흘러갔다. 장은숙은 새침한 표정을 하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로버트는 외국인이라 나이를 자세하게 알 수 없었으나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미스 장은 아름답습니다.”
로버트가 장은숙을 향해 웃었다.
“감사합니다.”
장은숙도 미소를 지었으나 응수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하세요?”
“금융업입니다. 우리 회사는 한국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부족한 달러를 우리 투자회사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얼마나 투자했어요?”
“20억 달러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투자할 것입니다.”
“한국에 온 지 오래되었어요?”
“6개월 되었습니다.”
“한국말이 아주 능숙하세요.”
“감사합니다.”
로버트 한이 밝게 웃었다. 장은숙은 로버트 한의 얼굴이 점점 친밀하게 바뀌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한국말이 능숙한 편이어서 대화를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미스 장, 우리 방에 가서 술 한잔합시다.”
로버트 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장은숙은 이상하게 거절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로버트 한이 커피값을 계산하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다. 장은숙도 로버트 한을 따라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로버트 한은 한국의 날씨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는 한국의 여름이 미칠 것처럼 덥다고 해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들어오세요. 환영합니다.”
로버트 한의 방은 호화로운 펜트하우스였다. 일반적인 스위트룸과는 전혀 다르게 넓고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금융계의 거물이라고 하더니 방도 보통이 아니네.’
장은숙은 속으로 감탄했다. 로버트 한은 장은숙을 소파에 앉게 하더니 양주 두 잔을 따라왔다. 장은숙은 거실에 켜놓은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로버트 한이 건네주는 양주잔을 받았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미 박도형 의원의 후원회 파티에서 술을 마셨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로버트 한의 객실까지 따라온 것은 술기운이 혈관 속에 남아 있기 때문에 대범해 진 탓인지도 몰랐다. 장은숙은 로버트 한과 잔을 부딪친 뒤에 한 모금을 마셨다.
로버트 한은 술을 마시자 장은숙에게 양해를 구하는 법도 없이 상의를 벗고 셔츠를 벗었다. 서양인들은 러닝셔츠를 잘 입지 않는다. 로버트 한이 셔츠를 벗자 건강한 근육질의 알몸이 드러났다.
‘제기랄, 무드도 잡지 않고 뭘하는 거야?’
장은숙은 얼굴이 붉어졌으나 무엇이라고 항변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양주를 한꺼번에 입속에 털어 넣었다.
“오우!”
로버트 한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벗었다.
‘이런 야만인 같은 놈!’
장은숙은 분노와 수치심을 동시에 느꼈다. 그와 함께 맹렬한 욕망이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 빠르게 전신으로 번졌다.
“어맛!”
로버트 한이 다가오자 장은숙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로버트 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안아서 키스했다. 장은숙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몸에서 톡 쏘는 향수냄새가 풍겼다. 그때 로버트 한의 손이 그녀의 스커트 안으로 들어와 팬티를 움켜쥐었다. 장은숙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재빨리 그의 손을 저지하려고 했으나 그녀의 팬티가 순식간에 무릎 밑으로 끌어내려졌다. 장은숙은 로버트 한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를 만나기 위해 커피숍까지 이상희를 따라왔고, 호텔방까지 동행한 것은 거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받아들이기 위해서였다.
“아앗.”
로버트 한이 그녀의 몸속으로 깊숙이 들어오자 장은숙은 입이 딱 벌어졌다. 로버트 한이 휘둘러댈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