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상장이 되겠어요?”
장은숙이 눈언저리에 교태를 묻힌 표정으로 물었다. 속삭이듯이 감미로운 목소리다. 정동일은 장은숙의 가슴을 눈으로 더듬었다. 며칠 전 모텔에서 그녀와 뒹굴던 생각이 떠오르면서 하체가 묵직해져 왔다.
“장 여사께서 하시는 일이니 상장이 되도록 해야지요.”
정동일은 자신이 초라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명색이 한국 금융계의 엘리트라고 불리던 자신이 IMF를 예측하지 못하고 주식투자로 많은 돈을 날린 사실이 어처구니없었다. 다행이 주식이 폭등할 때 다시 사들여 어느 정도 회복하기는 했으나 예전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그럼 정 국장님만 믿으면 되겠네요?”
장은숙이 다짐을 하듯이 다시 물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다음달이면 상장될 수 있을 거요.”
정동일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일을 저질러야 했다.
“그럼 국장님만 믿고 돌아갈게요.”
장은숙이 은밀한 눈길을 던졌다.
“점심 때 거기서 만납시다.”
정동일은 장은숙의 가슴께에 눈길을 거두면서 재빨리 말했다. 거기라는 것은 근처에 있는 모텔을 말하는 것이다. 기왕에 장은숙의 청을 들어줄 바에야 다시 한 번 그녀를 품에 안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장은숙은 정장에 셔츠를 입고 있었으나 안에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 U자로 파인 언더셔츠 위로 커다란 젖무덤이 절반이나 드러나 있었다. 허리를 숙일 때면 묵직해 보이는 가슴이 쏟아져 나올 것처럼 아슬아슬한 차림이었다.
‘전에도 저런 차림으로 나를 유혹하더니….’
영악한 여자들은 자신의 몸으로 승부를 건다.
“그럼 문자 보낼게요.”
장은숙이 눈웃음을 치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정동일은 장은숙이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가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감독원에서 은행으로 자리를 옮기면 공무원에서 사기업 임원이 된다. 공무원으로 오랫동안 근무를 하게 되면 차관, 장관을 거쳐 경제부총리를 한 뒤에 국회의원까지 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차관까지 오르는 데도 많은 난관이 버티고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경쟁이 치열하다. 경쟁자들과 힘겨루기를 해서 승진을 해야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권의 핵심세력과 밀착되어 있어야 하고 청와대의 눈에도 들어야 한다.
‘나는 고시파가 아니야.’
정동일은 차관이나 장관까지 승진할 자신이 없었다. 재정경제부는 소위 고시파가 장악하고 있다. 승진은 언제나 고시파와 서울의 일류대학 출신들이 우선이다. 지방대학 출신으로 감독원의 국장까지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은 엄청난 출세를 했다고 할 수 있다.
“김 부장.”
정동일은 장은숙이 놓고 간 서류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코스닥 상장을 담당하고 있는 김종민 부장을 불렀다. 김종민이 전화를 걸다가 말고 후닥닥 달려왔다. 서울의 일류대학을 졸업했는데 윗사람들에게 아부를 잘했다. 머리가 벗겨져 여직원들이 ‘빛나리 부장’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이거 부족한 서류 보완하게 하고 인가해 줘.”
김종민이 책상 앞에 와서 허리를 숙이자 정동일은 서류를 그의 앞으로 밀었다.
“원장님께서….”
김종민은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원장이 결재를 해주겠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원장님은 내가 책임질게.”
“알겠습니다.”
김종민이 허리를 숙이고 물러갔다. 공무원들은 장관이라고 해야 월급이 얼마 되지 않는다. 월급만 받는다면 장관이라고 해도 결코 상류층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이권에 개입하거나 청탁을 들어주고, 뇌물을 받아야만 상류층으로 살아갈 수 있다. 물론 일부 극소수 공무원들의 얘기다.
장은숙은 감독원을 나오자 정동일과 잔 적이 있는 모텔을 향해 걸어갔다. 정동일이 감독원에서 나오려면 아직도 30분은 더 있어야 한다.
‘여자가 모텔을 잡아야 하다니….’
장은숙은 수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카운터의 남자에게 열쇠를 받으면서 씁쓸해 했다. 이영훈의 회사에 투자를 하여 코스닥 상장을 한 뒤에 큰돈을 만들려고 했으나 뜻밖에 상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감독원에서 상장 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면서 거래소에 반려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장은숙은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 나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영훈으로부터 감독원에서 브레이크를 건다는 말을 들은 장은숙은 정동일을 포섭하기로 한 것이다.
모텔의 어둠스레한 복도와 층계에는 붉은 카펫이 깔려 있었다. 3층에 있는 방에 들어가 정동일에게 문자를 보내려는데 로버트 한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오늘 오후 5시 커피숍에서 만났으면 해요.’
장은숙은 로버트 한의 문자 메시지를 보자 전율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두 달 전 이상희의 소개로 처음 로버트 한을 만났던 일이 섬광처럼 뇌리에 떠올랐다. 그날 장은숙은 제 정신이 아니었다. 로버트 한의 거대한 물건이 그녀의 내부로 들어오자 그녀의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고 로버트 한이 그녀에게서 떨어졌을 때는 축 늘어지고 말았다. 그 후로 문득문득 로버트 한이 떠오르면서 장은숙은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과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교차되고는 했었다.
‘외국 놈과 그짓을 하다니 내가 미쳤지.’
장은숙은 집으로 돌아오자 공연한 짓을 했다고 후회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어서 어기적어기적 걷다가 침대에 쓰러져 버렸다.
“어땠니, 어제 좋았어?”
이튿날 이상희가 전화를 걸어왔다.
“얘, 왜 하필 그런 사람을 소개해 줬어. 죽는 줄 알았잖앗.”
장은숙은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소리를 질렀다.
“좋아서?”
“좋은지 뭔지 모르겠어. 너무 커서 제 정신이 아니었어. 게다가 기분 나빴어.”
“뭐가 기분 나빠?”
“그 자식이 나를 공깃돌처럼 가지고 노는 것 같았어.”
“그럼 앞으로는 니가 가지고 놀아.”
“미국 가버렸는데 어떻게 가지고 놀아.”
“호호호. 두 달 후면 돌아올 테니까 그때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
이상희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린 뒤에 전화를 끊었다. 그 로버트 한이 다시 입국한 것이다. 거대한 그의 물건을 생각하자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반가워요. 5시에 만나기로 해요.’
이상희는 로버트 한의 문자 메시지를 오랫동안 들여다본 뒤에 답장을 보냈다. 이번에는 당하고 있지만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305호예요. 빨리 오세요.’
장은숙은 정동일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틀었다.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미국의 투자전문회사 빅스타가 한국에 들어왔다고 소개되고 있었다. 화면에 여러 면의 외국인들과 함께 로버트 한의 얼굴도 비쳤다.
‘정말 유명한 사람이네.’
화면에 로버트 한이 비친 것을 보고 장은숙은 깜짝 놀랐다. 정동일은 12시가 약간 지나서야 모텔에 나타났다. 아마 점심까지 먹고 온 모양이었다.
“오래 기다렸습니까? 미안해요.”
그는 옷을 벗자 다짜고짜 장은숙에게 달려들었다.
“아니에요.”
장은숙은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기 때문에 정동일의 등을 와락 껴안았다. 정동일과는 두 번째 만남이다. 이미 한 번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의 육체는 낯이 익었다.
‘저녁에는 로버트 한을 만나야 하는데….’
장은숙은 정동일을 껴안은 채 복이 터졌다고 생각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