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는 지난 11일 FA 양의지와 4년 총액 125억 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계약금이 60억 원, 4년 총 연봉이 65억 원에 달한다. 연봉은 모두 옵션이 없는 순수 보장 금액. 125억 원은 롯데가 2017년 간판타자 이대호와 계약할 때 기록한 150억 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큰 금액이기도 하다. 역대 포수 최고액 계약이던 80억 원(2017년 삼성 강민호)도 무려 45억 원이나 경신했다.
양의지의 이적 소식과 몸값 규모는 야구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도 남았다. 4년 연속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다 올해 최하위에 그쳐 충격에 빠진 NC는 새 야구장에서 양의지와 함께 재도약을 노릴 수 있게 됐다. 내년 시즌부터 NC 지휘봉을 잡게 될 이동욱 신임 감독은 커다란 취임 선물을 받게 된 셈이다. 반면 김태형 두산 감독은 “1선발을 떠나보낸 것과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양의지는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비중이 큰 선수였기에 그렇다.
# 예견됐던 대박? 예상 뛰어넘는 ‘초대박’
양의지의 ‘대박’은 예견된 결과였다. 2006년 2차 8라운드(전체 59순위)에 간신히 지명돼 두산에 입단한 그는 군 복무를 마친 2010년부터 1군 주전 포수로 뛰기 시작했다. 잠재력이 뛰어났던 그가 풍부한 경험까지 쌓으니 경쟁자가 없었다. 현역 최고 포수로 성장했다. 최근 5년간 네 차례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손에 넣었고, 올해는 전 포지션을 통틀어 최다 득표까지 했다. 투수들 역시 “양의지의 리드는 뭔가 다르다”며 엄지를 치켜세우곤 했다. 결국 KBO 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포수로 인정받게 됐다.
2018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수상식에서의 양의지. 박정훈 기자
하지만 FA 시장이 열린 뒤 예상보다 계약 소식이 늦어지면서 “의외로 몸값이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FA 정국을 앞두고 나타났던 여러 정황 때문이다.
지난 9월 KBO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에 10개 구단의 제안을 반영한 FA 제도 개선안을 제시했다. ①FA 계약 총액을 4년 최대 80억 원으로 제한 ②계약금 비중을 계약 총액 30% 이내로 제한 ③FA 자격 요건을 고졸 선수 9시즌→8시즌, 대졸 선수 8시즌→7시즌으로 각 1년 단축(해외 진출 자격은 현행 7년 유지) ④연봉 기준에 따른 FA 등급제 도입 등이 골자다. 사실상 구단들이 원했던 것은 1번과 2번. 3번과 4번은 앞선 두 개의 안을 성사시키기 위해 제시한 ‘협상 카드’나 다름없었다.
FA 시장 규모가 한껏 부풀어 오르면서 몸값 100억 원(4년 계약 기준)을 넘는 선수들이 연이어 탄생하자 10개 구단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일부 구단은 “올해부터 당장 몸값 상한제를 도입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선수협이 이 안을 받아들일 경우 양의지는 당연히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이후 기자회견까지 연 선수협의 결사반대로 FA 몸값 상한제 도입은 무산됐다. 다만 이 시도로 인해 구단들 사이에 “FA 몸값 거품을 빼자”는 움직임이 적극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이 널리 알려졌다. 구단들의 비공식적 결의가 이번 FA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결과는 ‘공염불’이었다. 한 번 올라간 특급 FA의 몸값이 쉽게 떨어질 리 없다. 양의지와 동기생인 FA 외야수 김현수가 1년 전 LG로 이적하면서 4년 115억 원을 받은 상황이다. 포지션의 희귀성까지 인정받은 양의지의 몸값은 그보다 더 높이 책정될 수밖에 없다. 특히 NC처럼 구단주의 특별 지시까지 받은 팀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게 된다. 양의지의 125억 원 계약은 그렇게 성사됐다.
# 가파른 몸값 폭등세, 아무도 막을 수 없다
FA 선수들의 몸값 폭등세는 그 어떤 그래프보다 가파르다. 과거와 비교해보면 더 그렇다. 해태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잠수함 투수 이강철은 FA 제도 도입 첫 해였던 1999년 11월 삼성 이적에 합의했다. 계약서에는 3년 총액 8억 원이 적혀 있었다. 역대 최초의 FA 이적 사례였다. 12월에는 LG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포수 김동수가 다시 삼성과 3년 총액 8억 원에 FA 계약을 했다. 이강철과 김동수라는 스타플레이어들의 이동이 첫 번째 충격, 그들이 받은 돈의 규모가 두 번째 충격을 연속으로 안겼다.
그 후 20년이 흘렀다. 그 사이 2000년 쌍방울 김기태(4년 18억 원)-2001년 삼성 양준혁(4년 27억 원)-2003년 롯데 정수근(6년 40억 6000만 원)-2004년 삼성 심정수(4년 60억 원)가 FA 시장에 상징적인 이정표를 꽂아 나갔다. 심정수가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남긴 탓에 이후 7년간 시장이 위축되기도 했지만, 2011년 넥센 이택근이 4년 50억 원에 사인하면서 또 다른 전기가 마련됐다. 각 구단 주전급 FA 선수들에게 몸값의 새 기준을 마련해준 계기였다. 한 야구 관계자는 “그때부터 주전급이나 이름이 좀 있는 선수들은 기본 50억 원부터 협상을 시작하게 됐다”며 “이전까지는 50억 원이 넘보기 어려운 산이었다면, 그때부터는 오히려 협상의 출발점이 됐다”고 증언했다.
가속도는 더 붙었다. 2013년과 2014년을 거치면서 시장은 점점 더 매머드급으로 확장됐다. 1999년엔 선수 한 명을 잡는 데 평균 4억 8500만 원이 필요했다면, 2014년에는 한 명에게 평균 33억 2000만 원을 줘야 했다. 특히 2013년엔 롯데 강민호가 4년 75억 원에 사인해 9년 묵은 심정수의 역대 최고액 기록을 깨는 ‘사건’이 벌어졌다. 심정수는 마이너스 옵션을 채우지 못해 실제로는 60억 원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을 가져갔지만, 강민호의 75억 원은 순수 보장 금액이었다.
최정. 연합뉴스
한 번 무너진 벽은 다시 세우기 어렵다. 2015년 SK 최정(4년 86억 원)이 80억 원, KIA 윤석민(4년 90억 원)이 90억 원 벽을 각각 깼다. 그리고 2016시즌을 마친 FA 최형우가 KIA와 4년 100억 원에 사인하면서 KBO 리그에 마침내 ‘FA 100억 원 시대’가 열렸다. 물론 이전에도 공식적으로 발표된 금액과 별개로 이미 100억 원의 벽은 무너졌다는 소문이 야구계에 파다했다. ‘시장을 어지럽힌 상징적 인물’로 역사에 남거나 손가락질을 받는 게 부담스러웠던 구단들과 선수들이 공식 발표 금액을 축소했다는 설들이다. 하지만 최형우의 계약 발표를 계기로 100억 원에 대한 구단들의 압박감도 사라졌다. 이대호의 150억 원과 양의지의 125억 원 계약이 그 증거다. 양의지의 계약은 해외 복귀파가 아닌 순수 국내파 선수의 FA 최고액을 2년 만에 25%에 상승시킨 또 다른 ‘잭팟’이기도 했다.
# 양의지의 계약금 60억 원, 암묵적 약속은 어디로?
지나치게 높아진 계약금 규모에 대한 업계의 비판도 통하지 않았다. 양의지의 계약금 60억 원은 총액 대비 48%에 이르는 금액이다. “합리적 투자를 위해 계약금 비중을 총액 30%로 제한하자”는 각 구단의 개선책 역시 “양의지가 꼭 필요하다”는 구단의 절실함 앞에선 통하지 않았다.
계약금을 놓고 논란의 목소리가 커진 것은 2년 전부터다. 2014년 SK 최정과 두산 장원준을 필두로 웬만한 대형 FA들의 계약금 비율이 50%에 육박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2016년 말 계약한 NC 박석민(96억 원 중 56억 원)과 LG 차우찬(95억 원 중 55억 원)이 나란히 총액 대비 58%에 해당하는 계약금을 받았다.
앞서 언급한 김현수는 심지어 총액 115억 원 가운데 57%에 달하는 65억 원을 계약금으로 받았다. 역대 FA 총액 1위는 이대호의 150억 원이지만, 그의 계약금 비율은 약 33% 선인 50억 원으로 알려졌다. 순수 계약금 수입으로만 따지면 김현수가 역대 최고액이다. 올해 양의지가 받은 계약금은 그 금액에 딱 5억 원 못 미친다.
계약금은 원래 선수가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대가로 받는 별도의 수입(사이닝 보너스·Signing Bonus)이지만, 그 의미는 퇴색된 지 오래다. 보너스 격인 계약금이 오히려 ‘주 수입’으로 둔갑했을 정도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계약금이 총액의 10% 안팎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FA들의 계약금 규모는 더 커 보인다. 반대로 일부 관계자들은 “어차피 국내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나 일본 선수들의 연봉을 따라 잡을 수 없다. 계약금으로 최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심리가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해석하고 있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NC는 양의지 계약 내용 발표 직후 다른 구단들로부터 적지 않은 손가락질을 받았다. 아무리 FA 제도 개선안이 통과되지 않았다 해도, 각 구단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방침을 무참히 깨버렸다는 이유에서다. 양의지보다 먼저 NC와 계약한 내부 FA 외야수 모창민도 3년 최대 20억 원 가운데 40%인 8억 원을 계약금으로 먼저 받는다. 애초에 각 구단의 논의 내용은 NC의 고려대상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이재원. 연합뉴스
반면 내부 FA인 내야수 최정과 포수 이재원에게 ‘우승 턱’을 쏜 SK는 NC의 계약 내용 덕에 반사적으로 좋은 평가를 얻게 됐다. 최정은 6년간 옵션 포함 최대 106억 원 규모에 먼저 계약했다. 계약금은 32억 원이고, 6년 연봉 총액은 68억 원. 첫 4년간 연봉을 12억 원씩 받고, 이후 2년은 10억 원씩 나누는 조건으로 사인했다. 여기에 연간 1억 원씩 총 6년간의 옵션 6억 원이 포함된다. 지난 2014년 말 SK와 4년 총액 86억 원에 계약했던 최정은 이로써 두 차례 FA를 통해 10년 동안 192억 원을 벌어들이게 됐다. 특히 4년이 아닌 6년 계약을 성사시키면서 구단과 최정 모두 “은퇴할 때까지 함께하자”는 대의에 합의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최정과 협상이 끝나자 이재원과 대화도 급물살을 탔다. 이재원은 4년간 계약금 21억 원, 연봉 합계 48억 원을 포함한 총액 69억 원을 받는 조건으로 최정과 같은 날 계약했다. 최정은 2005년, 이재원은 2006년 각각 1차 지명으로 SK에 입단한 선수들이다. 구단의 정통성을 상징할 만한 선수 두 명과 미래를 약속한 셈이다.
당초 SK와 두 선수의 계약이 발표된 직후에는 일각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놓기도 했다. 양의지의 뒤를 잇는 FA 대어로 꼽혔던 최정과 이재원이 작지 않은 규모로 FA 계약을 끝낸 탓이다. 양의지가 아직 FA 협상을 이어가고 있었던 데다 준척급 FA들의 계약이 눈치작전에 돌입한 상황에서 최정의 6년 106억 원과 이재원의 4년 69억 원은 새로운 ‘기준점’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일부 관계자들은 “FA 몸값 현실화를 주창하던 올해 시장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액수이지 않느냐”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거액의 계약금을 포함한 양의지의 FA 이적이 발표되자 상황은 뒤바뀌었다. SK만 두 선수의 계약금을 30% 안팎으로 책정했다는 이유에서다. 최정은 106억 원의 30% 선인 32억 원, 이재원은 69억 원의 30%인 21억 원을 계약금으로 각각 받았다. SK 관계자도 “애초에 계약금은 30% 안으로 묶는다는 게 구단 방침이었다”고 말해 의도적으로 ‘제한’을 뒀다는 점을 인정했다. 한국시리즈 우승팀 SK가 스토브리그에서도 명분과 실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순간이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한미일 최고 연봉 포수들을 살펴보니… 올해 FA 시장은 ‘포수’라는 포지션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입증한 무대였다. 두산에서 NC로 이적한 현역 최고 포수 양의지는 역대 포수 FA 최고액 계약은 물론, 순수 국내파 선수 FA 최고 금액까지 경신하는 위용을 뽐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포수 이재원도 친정팀 SK로부터 충분한 대우를 받았다. 양의지 이전에 KBO 리그에서 가장 성공했던 포수는 삼성 강민호였다. 강민호는 2013년 원 소속구단 롯데와 계약하면서 4년 75억 원에 사인했다. 당시로는 역대 FA 최고 액수. 지난해엔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4년 80억 원을 받기로 했다. ‘나이도 재산’인 프로야구 선수가 두 번째 FA에서 첫 번째보다 더 높은 몸값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4년 사이 FA 시장 규모가 얼마나 커졌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강민호는 두 번의 FA 계약을 통해 8년간 총 155억 원을 챙기게 됐고, 양의지는 첫 번째 FA에서 이 총액에 불과 30억 원 모자라는 금액을 벌게 됐다. 공격 능력을 겸비한 국가대표급 포수가 KBO 리그에서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타격 성적이 좋은 포수의 가치는 하늘을 찌른다. 최고 명문구단 요미우리에서 주장과 4번타자를 맡았던 포수 아베 신노스케가 2014년 연봉 6억 엔(약 59억 9200만 원)을 받아 일본 프로야구 역대 최고 연봉 3위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다. 전설적인 마무리 투수 사사키 가즈히로(6억 5000만 엔)와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서 뛰었던 괴물 타자 마쓰이 히데키(6억 1000만 엔) 다음으로 많은 액수다. 메이저리그에선 샌프란시스코 포수 버스터 포지가 역대 가장 높은 몸값을 받은 포수다. 포지는 2013년 샌프란시스코와 9년간 1억 6700만 달러(약 1885억 원)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에 사인했다. 하지만 역대 빅리그 FA 계약 순위에선 20위에 올라 있다. 메이저리그는 한국과 일본보다 포수의 수비 비중을 상대적으로 덜 인정하는 탓이다. 포수 역시 타자 9명 가운데 한 명으로만 여기는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