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장관께서는 다른 차로 오실 것입니다.”
묵묵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김광호를 향해 영국대사가 말했다.
“예.”
김광호는 긴장하여 건성으로 대답했다. 영국 총리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영국 총리들은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세계의 운명을 주도해 왔다. 처칠이 그랬고 대처가 그랬다. 그러나 영국 총리에게 지나치게 굽실거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내 차가 다우닝가 10번지에 이르렀다. 총리관저의 육중한 철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관저를 지키는 정복경관이 차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선도하는 차에서 설명을 했는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통과를 시켰다.
총리는 관저 뜰을 산책하고 부인과 함께 현관에서 김광호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영국대사가 김광호를 소개하자 와이셔츠 차림의 총리가 손을 내밀었다. 총리는 키가 작고 곱슬머리였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김광호는 허리를 약간 숙이고 총리의 손을 잡았다.
“어서 오세요.”
총리 부인도 화사한 미소를 지으면서 김광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얼마 전에 딸을 낳아 총리 관저에서 아기를 낳은 일이 몇 십 년 만에 처음이라고 영국 언론에 화제가 되었던 여인이었다. 우아하고 섬세한 손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영국의 친구를 잊지 않습니다.”
“저도 신사의 나라 영국을 좋아합니다.”
“아침에 산책을 했습니다. 날씨가 아주 좋습니다.”
“관저가 아름답습니다.”
“어떤 운동을 좋아하십니까?”
“테니스와 골프를 좋아합니다.”
김광호는 총리와 아침식사를 하면서 덕담을 나누었다. 조찬에서는 비교적 가벼운 대화를 나눈다. 식사 전에 합류한 영국 재무장관도 날씨와 운동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삼았다. 특이한 것은 그들의 대화에 항상 유머가 있다는 것이었다. 처칠과 흐루시초프가 회담을 하는데 흐루시초프가 파이프 담배로 유명한 처칠에게 담배가 몸에 해롭다고 하자 사람의 몸에 진정으로 해로운 것은 공산주의라고 처칠이 맞받아쳤다는 따위였다. 조금도 유머러스하지 않았으나 그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는 했다. 식사는 스프와 빵, 우유, 계란프라이, 소시지, 위스키 한 방울을 떨어뜨린 홍차가 전부였다.
‘카나미스를 런던증시에 상장하는 대가로군.’
김광호는 영국 총리와 식사를 하는 일이 따분했다. 총리를 만나는 것은 의전적인 행사일 뿐이었다. 영국 영주권을 주는 일이나 김광호의 가족이 살아갈 아름다운 저택을 마련해주는 것은 실무진이 처리할 것이다.
영국 총리는 아침 식사가 끝나자 현관까지 김광호를 배웅해 주었다. 총리는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김광호는 호텔로 돌아오자 긴장감이 일시에 풀어지는 것 같았다. 김광호는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서 몸을 뉘었다. 그때까지 침대에서 자고 있던 제니스 윙거가 나신으로 욕실로 들어왔다. 제니스 윙거의 나신은 인어처럼 매끄러웠다.
“총리 각하를 만난 일은 어떻게 되었어요?”
제니스 윙거가 욕조로 들어오면서 물었다. 욕실의 물이 넘쳐서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그냥 인사만 하는 자리였어.”
김광호는 팔을 벌려 욕조로 들어온 제니스 윙거를 안았다. 김광호의 가슴과 제니스 윙거의 가슴이 물속에서 밀착되었다.
제니스 윙거가 키스를 했다.
“별로였어. 홍차 맛이 특이하더군.”
김광호는 제니스 윙거의 머리를 빗질했다. 긴장이 풀어진 탓인지, 제니스 윙거의 맨살이 닿았기 때문인지 하체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섰다.
“우유를 마셨어요?”
제니스 윙거의 눈이 요기를 뿌렸다. 제니스 윙거도 김광호의 물건이 살아서 펄떡거리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아니. 나는 우유를 싫어하잖아.”
“호호호. 소의 젖이라 그렇죠. 그럼 내 젖을 마셔요.”
제니스 윙거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면서 김광호의 입으로 가슴을 가져왔다. 김광호는 제니스 윙거의 가슴을 입속에 넣고 부드럽게 저작하기 시작했다. 밍밍한 살덩어리가 입속에서 말랑말랑하게 풀어졌다.
“으음.”
제니스 윙거가 허리를 비틀며 신음을 토해냈다. 두 사람의 하체는 물속에 잠겨 있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물이 욕실 바닥으로 넘쳤다. 그러나 김광호가 제니스 윙거에게 진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제니스 윙거는 영화 촬영 때문에 한동안 런던에 머물 예정이었다. 당분간 헤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김광호를 더욱 달아오르게 했거나 욕조에서의 사랑이 드물었기 때문인지 몰랐다. 김광호의 물건은 물속에서도 팽팽하게 부풀었고 제니스 윙거는 시간이 흐를수록 격렬해졌다. 제니스 윙거는 섹스를 즐기는 여자였다. 김광호도 섹스를 싫어하지 않았다. 욕조에서 나와 서로의 몸에 비누칠을 했다. 비누향이 상큼했고 비누거품 때문에 살과 살이 부딪칠 때마다 미끄러졌다. 꼭 껴안아도 빠져나가고 미끄러졌다. 제니스 윙거는 그럴 때마다 즐겁게 웃었다.
욕실에서의 섹스를 마치고 템스 강 상류에 있는 저택을 구경하러 갔다. 한때 영국의 귀족이 살았던 집이었으나 귀족이 사업에 실패하여 영국 재무부에서 압류했던 집이라고 했다. 김광호에게 불하하는 형식으로 내줄 것이라고 했다. 영국 정부가 김광호에게 저택까지 내준다는 것은 카나미스의 런던증시 상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괜찮아요?”
제니스 윙거가 김광호의 팔짱을 끼고 물었다. 대문에서 집까지는 500m나 되었고 아름다운 정원이 집을 둘러싸고 있었다. 집은 2층으로 방이 9개나 되었다. 2층에는 고풍스러운 서재까지 있었다.
“음. 아주 좋은 걸.”
김광호는 이 집에서 귀족같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 구경을 한 뒤에 김광호는 런던 시내로 돌아와 호텔에서 영국 방위산업체의 사장들과 구리 매매에 대하여 상담했다. 구리는 탄피를 만드는 데 쓰일 뿐 아니라 무기 공장에서 무한대에 가까울 정도로 필요했다. 카나미스에서도 임원들이 런던에 왔기 때문에 필요한 상담을 할 수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임원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사장님, 저희는 내일 상담 준비를 하겠습니다.”
카나미스에서 해외 마케팅을 담당한 중역들이 김광호에게 말했다.
“내일은 계약을 체결하도록 해요.”
김광호는 간단하게 지시를 내렸다. 영국이 수입하는 구리를 장기간 공급하기로 계약을 체결하는 대신 현재 국제 구리 가격에서 10%를 할인해 주는 것이 마케팅팀의 전략이었다. 어차피 구리 값은 등락을 계속할 것이고 안정적인 공급과 수급을 확보하는 것은 양측에 모두 좋은 조건이었다.
해외마케팅팀과 헤어져 김광호는 런던 시내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버킹엄 궁을 비롯하여 국회의사당, 타워브리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을 둘러보고 트라팔가르 광장에 이르렀다. 트라팔가르 광장은 1841년 완성되었는데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의 승리를 기념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중앙에 높이 약 50m의 넬슨 탑이 있다. 넬슨 제독은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 비교되는 영국의 전쟁영웅이다. 트라팔가르 해전은 넬슨의 영국함대가 프랑스와 에스파냐 연합함대를 에스파냐 남서쪽 트라팔가르에서 격파한 유명한 해전이었다.
김광호는 런던에서 사흘을 머물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왔다. 카나미스의 런던증시 상장은 빠르게 추진되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 각료들에게는 런던증시 상장이 카나미스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고 카나미스의 임원들에게는 주가 상승으로 돈을 벌게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몇몇 임원들이 런던증시보다 뉴욕증시에 상장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으나 앞으로 늘어날 제3세계들과의 교역을 생각할 때 런던증시가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카나미스는 6개월 만에 런던증시에 상장되었다. 런던증시에 상장시키기 위해 회사의 회계를 국제적으로 바꾸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었다. 카나미스는 런던증시에 상장되자마자 시가 총액이 100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주가가 상승했다.
“우리가 여기서 살게 돼요?”
런던에 도착하여 저택을 돌아본 아내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내는 김광호가 10억 달러에 이르는 주식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