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금단증상을 멎게 할 수 있을까?’
주애란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악마 같은 헨리 제이콥스의 얼굴이 떠올라왔다. 그 자가 마약을 복용하게 한 것이다. 아아 어떻게 내가 감쪽같이 속을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에게 매달려 몸부림을 치며 좋아했던가. 그 생각을 하자 머리가 쪼개지는 것 같았다.
‘내가 어리석었어.’
주애란은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남편 조한우의 냉랭한 얼굴이 떠올라왔다. 그는 주애란을 버러지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주애란이 마약중독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조한우는 손을 벌벌 떨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몇 달 만에 한 여자가 이렇게 철저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이 사실이 경찰에 알려지면 주애란이 구속되는 것은 물론 그조차 온전할 수 없었다.
‘헨리 제이콥스는 악마 같은 놈이야.’
주애란은 헨리 제이콥스로 인해 마약 중독자가 되었다고 조한우에게 고백했다. 조한우는 비밀리에 헨리 제이콥스의 뒤를 조사했다. 그러자 그가 미국 투기자본의 하수인이고, 부국은행 합병 때문에 주애란을 마약중독자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이 일을 지혜롭게 해결해야 돼.”
조한우는 주애란에게 냉랭하게 말했다. 헨리 제이콥스는 이미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그에게 보복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주애란이 몸을 떨면서 물었다.
“우리는 이혼을 할 수밖에 없어.”
“내가 마약을 끊을게요.”
“마약을 끊는 일이 쉬워? 인간의 의지로는 끊기가 어려워. 또 그걸 끊으려면 치료센터에 등록을 해야 돼. 그렇게 되면 당신이 마약 중독자라는 사실이 드러날 거야.”
주애란은 넋을 잃은 표정으로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학교는 어떻게 해?”
“사표를 내야지. 학교에서도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되잖아?”
“알겠어요. 사표를 내겠어요.”
“이혼을 하고 시골에 내려가 쉬면서 마약을 끊어야 해.”
“당신이 하라는 대로 할게요.”
주애란은 대학교에 사표를 내고 이혼에 동의했다. 자신의 마약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가정주부까지 마약중독자로 만드는 악마 같은 놈들.’
조한우는 투기자본이 저지른 짓에 분노했다. 그러나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당장은 주애란의 마약중독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주애란이 경찰에 체포되면 그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조한우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주애란은 마약을 복용하지 않으면서 금단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우리가 너무 앞만 보고 달렸어.’
조한우는 자신과 주애란이 상류사회로 진출하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 대가를 주애란이 받고 있었다. 주애란이 마약중독자가 된 것은 그녀의 책임도 있었으나 버리고 싶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녀는 내 아내야.’
조한우는 주애란을 설득하여 이혼 수속을 밟았다.
“나를 믿을 수 있으면 시골에 내려가 있어.”
조한우는 이혼 수속을 마치자 주애란에게 말했다. 이혼은 하고 싶지 않았었다. 그들이 비록 형식적인 부부생활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주애란은 조한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약중독자가 된 이상 친정식구들에게 알릴 수도 없었고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죽으라고만 하지 않는다면 조한우가 하자는 대로 하겠다고 결심했다. 조한우가 그녀와 이혼한 것은 만약의 경우 자신에게 불똥이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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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우가 시골집에 데려다가 주고 말했다. 경기도 양평에 있는 집이었다. 용문사로 올라가는 골짜기에 단층 양옥이 한 채 있었다. 집 앞에 거대한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동양화를 그리는 화가가 살다가 중국으로 유학을 가는 바람에 비어 있는 집이라고 했다. 동양화를 그리는 사람은 중국으로 유학을 가는구나. 주애란은 얼핏 그렇게 생각했다.
“견딜 수 있겠어? 아니 무조건 견디어야 돼.”
조한우가 주애란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견디어 볼게요.”
주애란은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조한우가 서울로 올라가자 주애란은 그 집에서 마약과 싸우기 시작했다.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그 집은 무덤 속처럼 조용했다. 주애란은 금단증상 때문에 마약에 대한 유혹이 일어나면 이를 악물고 버티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괴물이 나타나 그녀를 죽이려는 환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공포에 떨었다. 눈을 감으면 은행나무를 흔드는 바람소리가 들리고 바람소리에 섞여 괴물의 발자국소리가 쿵쿵거리고 들려왔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조한우가 사흘 만에 내려와서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주애란은 금단증상 때문에 사흘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해 귀신처럼 눈이 움퍽 들어가 있었다. 세수도 하지 않고 머리는 산발한 상태였다.
“밥도 먹지 않았지?”
주애란은 시골에 내려온 것이 사흘이 되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초밥을 사왔는데 먹어 봐.”
조한우가 초밥상자의 뚜껑을 열고 주애란 앞에 놓았다. 주애란은 초밥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조한우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초밥에 독약을 넣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주애란은 공포에 떨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왜 그래?”
조한우가 주애란의 얼굴을 살폈다.
“밥을 먹을 수 없어요.”
주애란이 공포에 질린 눈으로 조한우를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나를 봐?”
주애란은 방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극복해야 돼. 내가 무서워 보인다면 환각 때문이야. 밖에 나가서 바람이나 쐬자.”
조한우가 주애란의 손을 잡아당겨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주애란은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으나 조한우가 강하게 잡아끄는 바람에 마지못해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가을 햇살이 눈부셨다. 조한우는 주애란의 손을 잡고 골짜기로 걸어갔다. 골짜기는 들국화가 군데군데 피어 있고 억새풀이 바람에 나부꼈다. 주애란은 골짜기에서 갑자기 괴물이 튀어나오는 환각 때문에 공포에 떨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면 괴물이 사라지고 타는 듯이 붉은 산들이 눈앞에 있었다.
“걸어 봐. 운동을 해야 육체적으로 피로하고 잠이 와.”
조한우는 주애란을 한 시간 동안이나 억지로 걷게 했다. 사흘 동안이나 음식을 먹지 못한 주애란은 식은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이제 몇 개라도 먹어 봐.”
조한우는 집으로 돌아오자 다시 주애란에게 초밥을 먹게 했다. 주애란은 초밥 몇 개를 집어 먹었다. 조한우는 그녀가 잠들었을 때 서울로 올라갔다. 주애란은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다시 금단증상에 몸을 떨어야 했다. 누군가 자꾸 자신을 죽이러 오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잘 견디고 있었네. 이만 해도 다행이야.”
조한우가 서울에서 두 번째로 내려왔을 때는 의사에게서 수면제를 처방해 왔다. 가정부도 하나 구해서 같이 잠을 자게 하고 같이 밥을 먹게 했다.
금단증상과의 싸움은 지옥과 같았다. 가정부가 도와주기는 했으나 때때로 그녀가 칼을 들고 자신을 찌르려는 환각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이혼을 했는데 왜 나를 도와주는 거예요?”
하루는 주애란이 조한우에게 물었다. 주애란이 양평의 용문사 골짜기로 내려온 지 여러 달이 되었을 때였다.
“이혼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거야.”
조한우가 쓸쓸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빅스타는 기어이 부국은행을 합병하고 김영택은 백성은행을 합병했다. 김영택은 새로운 은행의 은행장이 되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놈들.’
주애란은 그들을 텔레비전 화면에서 볼 때마다 분노로 몸을 떨었다. 몸은 점점 좋아지고 있었으나 금단증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주애란은 금단증상에서 벗어나려면 길고 긴 터널을 지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기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