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났어요? 샤워해요.”
아내가 아침인사를 건넸다. 정민구는 오늘도 변함없이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멈칫했다. 하체가 묵직했다.
“뭐예요?”
아내가 그의 하체를 보고 눈이 커지면서 웃음을 깨물었다. 최근에 하체가 일어난 것은 드문 일이었다. 정민구는 자신도 믿어지지 않아 하체를 내려다보았다. 젊었을 때처럼 팽팽하게 발기되어 있는 하체가 살아있는 것처럼 불끈거리고 있었다.
“이놈이 이제 정신을 차렸나보네.”
정민구는 계면쩍은 표정으로 아내를 향해 말했다. 그래서 그런가. 몇 십년 살을 맞대고 산 아내의 뒷모습이 요염해 보였다.
“호호호. 회춘을 하고 있나봐요.”
“회춘을 했으니 한 번 사용해 볼까?”
정민구는 아내의 등 뒤로 다가가서 가슴을 안았다. 브래지어 위로 물컹한 가슴을 애무하며 하체를 등에 문질렀다.
“늦었어요. 사용은 이따가 밤에 해요.”
아내가 등을 찌르는 하체에 놀라는 시늉을 하면서 몸을 빼냈다. 아내의 입에서 단내가 풍겼다. 아내도 여자인데 남자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밤까지 살아있을지 모르겠네.”
정민구는 아내의 목덜미에 키스를 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아쉽지만 1층에 사람들이 몰려와 있는데 침대에서 그짓을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정민구는 샤워를 하고, 아내가 준비해 놓은 속옷을 입은 뒤에 와이셔츠와 넥타이까지 매고 2층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신문을 훑어보았다. 수행 비서들인 유광우와 이종민이 2층에 올라와 인사를 하고 내려갔다. 유광우가 1층에 이봉채 교수와 원주 시의원 도영일이 와 있다고 알려주었다.
“이야, 오래간만입니다.”
정민구는 도영일을 2층으로 올라오게 하여 악수를 했다. 도영일이 서울에 올라온 것은 그에게 인사를 하여 눈도장을 찍으려는 것이었다.
“제가 살고 있는 농장 뒤에 송이버섯이 있어서 후보님 드셔보시라고 가져왔습니다.”
도영일이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인사를 했다. 시의원인데도 몸이 비대하고 덩치가 컸다.
“송이버섯이요? 그거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데….”
“후보님께서 좋아하시면 제가 매달 가지고 올라오겠습니다.”
“나야 너무 고마운 일이지만 괜히 수고를 끼치면 안 되지요.”
“아닙니다. 후보님을 위해서라면 송이 버섯 몇 개가 문제겠습니까?”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정민구는 도영일과 10분쯤 이야기를 하고 한 식구니까 아침식사를 같이 하고 돌아가라고 말했다. 도영일은 감격한 표정으로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린 뒤에 1층으로 내려갔다.
정민구는 도영일이 1층으로 내려가자 조한우의 정세분석보고서를 꼼꼼히 읽었다. 천안으로 가는 차안에서도 읽었지만 다시 내용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음.”
정민구는 정세분석보고서를 다 읽은 뒤에 잠시 허공을 쏘아보았다. 조한우의 정세분석보고서는 언론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방송국이 정민구에게 적대적이라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으나 그것이 대통령과의 관계를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입맛이 썼다. 대통령은 임기말이 되자 국민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었다. 전 대통령의 아들이 소통령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정치를 좌지우지하다가 몰락했는데 지금 대통령의 아들들도 여러 가지 비리 때문에 대통령이 사과성명을 내야 했다. 평생을 민주화투쟁을 해온 대통령으로서는 치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통령은 정치꾼일 뿐이야.’
정민구는 그렇게 생각했다. 대통령은 고등학교밖에 졸업하지 않았다. 우연하게 야당 국회의원이 되었고 독재를 하던 전 정권에서 대통령후보가 되었다. 그는 운 좋게 대통령후보가 되는 바람에 야당에서 가장 저명한 인사가 되었다. 전 정권은 그를 탄압했고 탄압을 받을수록 그는 국민들에게 영웅이 되어 갔다. 정치 투쟁을 하다가 연금이 되자 많은 책을 읽었다. 그의 지식은 모두 책에서 얻은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이 되었으나 독선적이었다.
‘이제 와서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이라니….’
정민구는 조한우의 정세분석보고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방송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경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가 없다. 정민구는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비서실장은 그가 직접 전화를 걸었는데도 받지 않았다. 아내가 2층에 올라와 식사를 하라고 재촉했다.
“대통령께서는 경선에 중립을 지키려고 하십니다.”
“실장님, 내가 뭐 서운하게 해드린 것이 있습니까?”
정민구는 자존심이 상했으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수행 비서실장 유광우가 시계를 들여다보는 시늉을 했다. 지금 식사를 해야 늦지 않는다는 뜻이다.
“저를 만나시려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대통령께 말씀드려 주십시오. 시간을 내주십사하고요.”
“다른 후보들 눈이 있어서 만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비서실장은 정민구의 전화를 완곡하게 거절했다. 정민구는 화가 났으나 내색하지 않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1층 식당에는 수행 비서실장을 비롯하여 매일 아침 식사를 같이 하는 멤버들이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영일을 비롯하여 시의원, 구의원, 국회의원 정순호와 함께 오늘은 외교문제 전문가인 캠프의 이봉채 교수도 와 있었다. 정민구가 자리에 앉자 아내가 국을 떠서 밥공기 옆에 놓았다.
“식사합시다. 자 들어요.”
정민구는 먼저 수저를 들면서 수행 멤버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콩밥과 배추국이에요. 콩밥이 싫은 분은 흰 밥을 드릴게요. 후보님께서 워낙 콩을 좋아해서요.”
아내가 웃으면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의 캠프 멤버들 중에 민주화투쟁을 하다가 교도소에 갔다가 온 사람들이 아직도 콩밥을 싫어했다.
“괜찮습니다.”
유광우가 재빨리 대답했다.
“저는 흰밥을 주십시오.”
국회의원인 정순호가 말했다. 사람들이 잔잔하게 웃고 정민구도 피식 웃었다.
“미국 대통령을 만날 수가 있겠소?”
정민구가 식사를 하면서 이봉채 교수에게 물었다.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대통령 선거 기간에 후보들을 만나지 않는 것이 오랜 관례였다. 외교 통로를 통해 이봉채가 계속 미국 대통령의 면담을 추진하고 있었으나 미 국무성에서는 냉담했다. 공식적인 채널로는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 불가능했다.
“현재로서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만 대통령 특사 자격이라면 가능합니다. 그것도 경선이 시작되기 전에 해야 합니다.”
이봉채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대통령을 직접 만나지 않으면 매듭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아침을 마치고 상의를 입기 위해 2층 안방으로 올라오자 아내가 따라 올라왔다.
“당신이 영부인을 한 번 만나야겠어. 내가 연락을 해도 비서실장이 연결시켜 주지 않아.”
정민구는 아내를 포옹하고 말했다.
“무슨 일로 만나요?”
“대통령하고 식사 자리를 만들어. 가족끼리 식사하는 것으로. 아니면 부부끼리 하는 것이든가….”
“명분이 있어야 만날 텐데.”
“원주 시의원 도영일이 송이버섯을 가지고 올라왔다며? 송이버섯을 준다는 핑계로 만나. 가능하면 빨리 만나.”
“알았어요.”
아내가 상의를 걸쳐주고 넥타이를 바르게 만져주었다. 정민구는 아내의 입술에 키스를 해주었다. 1층으로 내려오자 종합신문 정치부 기자인 기종철이 와 있었다.
“기형, 아침식사는 했어?”
정민구는 기종철에게 정답게 인사를 했다. 정치부 기자들의 코멘트 하나가 항상 문제가 되기 때문에 친하지 않아도 정다운 체해야 했다.
“예. 했습니다.”
“아침부터 무슨 바람이 불었어? 언제 고스톱을 한 판 쳐야 하는데… 옛날에 몽땅 털리고 아직 복수혈전을 못했어.”
정민구의 농담에 기종철이 낄낄대고 웃었다. 기종철의 유일한 취미가 고스톱과 골프였다. 정민구는 아내의 배웅을 받으면서 현관을 나섰다. 아침 7시, 대통령후보의 고단한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