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기라는 기생이 죽자 장안이 떠들썩했다. 일본인들은 도색적인 취미를 갖고 있는데 그 기생이 왜 명기라는 말을 듣게 되었는지 까닭을 알기 위해 부검을 했다. 그러나 그 기생의 생식기는 일반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일본 경찰은 그 기생의 생식기를 포르말린 용액에 담가서 보관했고, 그것을 아직도 국가기관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신향란은 남자와 완전하게 일치를 이루는 점에서 본다면 분명히 명기인 것이다.
이준기는 이튿날 점심 때 한식집에서 기종철을 만났다. 토요일인데도 기종철은 정민구를 수행하느라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어제 늦게까지 마셨니?”
설렁탕을 시켜놓고 마주앉아서 이준기가 기종철에게 물었다.
“그래. 발가벗고 새벽 4시까지 마셨지.”
기종철이 시니컬하게 미소를 날렸다.
“둘이서?”
“나중에는 마담도 같이 들어와서 마셨어.”
“마담도 벗었어?”
마담은 한때 탤런트를 했었다. 30대 후반이지만 탄력 있는 몸을 갖고 있었다.
“마담은 여자가 아니냐?”
기종철은 설렁탕이 들어오자 소주도 한 병 주문했다. 속풀이를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냐?”
“너네 정보망을 이용해서 고산이 왜 출마를 하지 못했는지 알아볼 수 있을까?”
“무슨 소리야? 고산은 왜 새삼스럽게 거론해?”
이준기는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고산은 국무총리를 지냈고 불출마선언을 할 때까지만 해도 지지도가 가장 높았었다. 게다가 착실하게 출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불출마선언을 한 것이다. 그가 대통령선거에 출마선언을 했다면 선거 양상이 훨씬 달라졌을 것이다. 그의 불출마선언 배경을 놓고 뒷말이 무성했다. 그런데 기종철이 지금 그 배경을 캐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정길 쪽이야. 네가 친구니까 얘기하는 거야.”
“그건 정말 고맙다. 나한테 그런 얘기까지 안 해도 되는데 해주니 나도 앞으로 너에게는 진실만을 얘기하겠다.”
이준기는 고백을 하듯이 낮게 말했다.
“어제 김상호 의원을 만났어.”
“낮에?”
“낮에는 향천의 마담과 야외에 나갔었고… 너희들 만나기 직전에 만났어. 이정길 쪽에서도 한 방에 바짝 신경을 쓰고 있어.”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이정길 쪽에서는 빅딜할 물건을 찾고 있어. 한 방을 잠재울 수 있는 물건 말이야.”
이준기는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말 한 마디를 잘못하면 정치판이 바뀐다. 아니 차기 대통령이 바뀔 수도 있다.
“여당이 어떤 걸로 고산을 주저앉혔는지 그게 궁금한 거야. 듣자니 불출마선언을 하면서 고산이 피눈물을 흘렸다고 하더라.”
“그 이야기는 나도 들었어.”
“그러니 빅딜을 할 수 있게 도와 줘라.”
“알았다. 내가 최대한 알아보고 전화해 줄게.”
이준기는 기종철과 설렁탕을 먹으면서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정치인들이 이용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친구인 기자 놈까지 기업가들을 이용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것도 신문에 보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지지하는 이정길을 위해서 정보를 빼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을 끌어라. 공연히 남의 진흙탕 싸움에 끼어들어 흙탕물을 튀길 필요가 없다.”
마침내 야당의 경선이 시작됐다. 야당은 이정길 후보와 여성 후보인 박연숙 후보가 치열하게 맞대결을 펼쳤다.
이준기는 이정길과 박연숙의 대결을 주시했다. 박연숙이 야당 지지자들에게 높은 지지율을 끌어내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경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양쪽 진영에서 네거티브가 매일 같이 터져 나왔다. 특히 여론조사 1위를 하고 있는 이정길은 박연숙 진영에서 쏟아놓는 네거티브에 만신창이가 됐다. 여당은 이정길이 연일 신문의 주요한 면을 장식하자 환호했다. 이것으로 이정길이 본선을 시작하기도 전에 끝장이 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야당 경선의 최종일, 불과 5천여 표 차이로 이정길이 박연숙을 눌러버리자 허탈했다.
“결국 국민은 이정길을 선택할 것인가?”
오성그룹에서도 초미의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정길이 판정승을 하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성그룹에서는 막판에 박연숙이 역전승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이정길이나 박연숙이나 모두 보수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오성그룹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상관이 없었다. 나중에 미운 털이나 박히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이제는 이정길을 밀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오성그룹에서 가신회의가 다시 비밀리에 열렸다.
“저쪽에서 한 방을 터트리면 어떻게 됩니까? 아직 결정을 내릴 때가 아닙니다.”
“저쪽에서 한 방을 터트리겠나? 자기들도 죽을 거 아니야?”
“대선자금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저쪽은 큰 도둑놈이고 자기들은 작은 도둑놈이라고 주장하면서 큰 도둑놈 때려잡자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터트릴 가능성이 높다는 거 아니야?”
“권력에 대한 욕망은 저들이 더 많습니다.”
“이정길이는 대체 왜 그렇게 더티한 짓을 많이 했어?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세금포탈… 명색이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이 안 저지른 짓이 없잖아?”
“일부는 네거티브도 있습니다.”
“그럼 일단 관망하기로 하지. 어떤 놈이든지 내 돈 안 쓰고 대통령이 되지는 못할 테니까.”
이정행의 말에 가신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이정길의 지지율은 50%대로 뛰어올랐다. 박연숙은 공식적으로 경선 결과에 승복한다고 했으나 연일 이정길 캠프에 불만을 터트리고 있었다.
‘짜증나는 집안이군.’
이준기는 박연숙이 이정길에게 브레이크를 거는 것을 보고 까닭 없이 화가 났다.
여당도 경선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여당은 경선초반부터 여론으로부터 몰매를 맞기 시작했다. 여당의 대통령 경선 후보들은 개혁주의를 자처하고 있었으나 경선부터 물의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경선에서 국민투표를 하는 선거인단의 부정 등록이 기승을 부리고 심지어는 현직 대통령까지 선거인단으로 등록하는 비리를 저질렀다.
여론의 몰매와 외면을 당한 여당 경선은 관심권 밖에서 그들만의 리그로 진행되었다. 여당은 경선을 전국을 돌면서 진행하게 되어 있었다. 애초에 여론은 정민구와 야당에서 탈당하여 이적한 장영규가 팽팽한 접전을 벌일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조직에서 앞선 정민구가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군소 후보들이 정민구가 경선 부정을 저질렀다고 맹렬하게 비난했으나 서울에서도 압도적으로 승리하여 여당의 공식적인 후보가 되었다. 대통령선거 형세는 일단 이정길과 정민구가 대결을 하는 모양으로 압축되었다. 그러나 이재형이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었고 박연숙도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우리의 목적은 빼앗긴 방송국을 찾아오는 것이다.”
하루는 이정행이 이준기와 골프를 치면서 말했다. 대통령선거 여당 경선에서 정민구가 승리를 하던 날이었다.
“방송이요?”
이준기는 어리둥절하여 이정행을 쳐다보았다.
“넌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방송국을 빼앗겼다.”
오성그룹은 80년대 초에 신군부에 방송국을 빼앗겼다. 많은 사람들이 고별방송을 할 때 울었고 오성그룹은 빼앗긴 방송국을 되찾아오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었다.
“방송국이라면 케이블TV도 2개나 있지 않습니까?”
“지상파가 필요하다. KOS2가 원래 우리 것이지 않았느냐? 그걸 찾아오지 못하면 MBS라도 가져와야 한다.”
“두 방송국이 모두 국가 소유입니다. 어떻게 그걸 가져옵니까?”
“어떻게든 가져와야지. 10년이 걸리더라도 가져와야 한다. 우리는 20년 전부터 그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가동해 왔다. 너도 이제는 알아야 한다.”
이정행은 단호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