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평위는 재정경제원(옛 재정경제부)이 종금사 부실상황을 평가하기 위해 외환위기가 시작된 지난 97년 12월 말 회계사, 변호사, 교수 등 11명의 민간인 전문가로 구성한 임시위원회로 이듬해인 98년 2월 말까지 활동했다.
당시 경평위가 작성한 종금사 평가 보고서는 지난 98년 2월말 임창열 당시 재정경제원 장관에게 전달된 문서였으며,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재정경제부 장관을 거쳐 금감위원장에게 넘겨졌다.
하지만 종금사의 부실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한 이 보고서는 당시 재경원 등 금융정책 당국에 의해 철저히 무시됐고, 이로 인해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 사건’이 발생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김일섭 당시 경평위 위원장(현 이화여대 부총장)은 “금융 당국에서 경평위의 보고서대로 단호한 조치를 취했더라면 나라종금은 조기퇴출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8년 당초 정부는 “경평위의 평가 결과에 따라 종금사 퇴출 여부를 결정하겠다”라고 공개 천명한 상황이어서 경평위의 ‘종금사 경영평가 보고서’는 종금사의 ‘살생부’와 같았다.
김일섭 부총장은 “당시 30개 종금사에 대한 평가를 실시했는데, 나라종금은 A∼E등급 가운데 D등급으로 평가됐다”며 “나라종금이 받은 D등급은 ‘조건부 폐쇄 권고’를 의미했다”라고 말했다.
‘조건부 폐쇄 권고’란 정밀 검사를 거쳐 정상화 가능성이 없으면 ‘즉각 폐쇄’해야 하는 대상. 나라종금의 경우 ‘즉각 폐쇄’ 대상인 E등급은 아니지만 “D등급도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김 부총장의 설명.
김 부총장은 “이 내용을 담고 있던 경평위 보고서는 지난 98년 2월 말 임창열 부총리 겸 재경원 장관에게 처음 전달됐다”고 말했다. 이후 DJ정부가 출범하면서 이 보고서는 재정경제부 장관인 이규성씨에게 인계됐고, 이어 금감위가 출범하면서 초대 위원장인 이헌재씨에게 다시 넘겨진 것으로 전해졌다. 종금사의 퇴출권이 재정경제부에서 금감위로 이관됐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경평위 보고서가 이규성 당시 재경부 장관에게 넘어간 뒤부터 발생했다. D등급으로 평가된 나라종금에 대한 금융 당국의 정밀 검사가 실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이헌재 금감위원장 재직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보고서가 넘어갈 당시 1차 영업정지를 받았던 나라종금에 대해 정부는 98년 3월~5월 사이에 1조4천2백여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공적자금까지 투입했고, 그 해 5월 나라종금은 영업을 재개했다. 결국 경평위의 보고서는 금융 당국에 의해 철저히 묵살된 셈.
이 같은 사실은 최근 검찰 수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 나라종금은 당시 경평위의 요구사항인 자기자본비율 4%를 충족시키기 위해 당시 2천억원대의 자본을 편법으로 증자한 사실이 드러난 것.
이 같은 편법 증자를 금감위가 허용했다는 것은 나라종금이 작성한 ‘부실 경영계획’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였다. 이는 경평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금융 당국이 나라종금에 대한 정밀 검사를 실시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
당시 나라종금이 편법증자에 성공하고, 영업을 재개할 수 있었던 배경에 재경부와 금감위에 정치권의 외압이나 나라종금의 로비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일요신문>은 당시 재경부 장관이었던 이규성씨와 금감위원장을 맡았던 이헌재씨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연락을 시도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김일섭 부총장은 “당시 경평위의 보고서대로 금융당국에서 정밀심사를 벌였다면 나라종금은 조기에 퇴출됐을 것”이라며 “당시 공적자금을 투입한 금융 당국의 결정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98년 5월 영업을 재개한 나라종금은 2000년 1월 2차 영업정지를 당하기 전까지 단 한 차례의 정밀검사도 받지 않았던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종금사들은 지난 99년 8월 대우그룹의 기업개선작업이 진행되면서 위기상황을 맞았다”며 “대한투신과 한국종금에서 1조원을 빌려 대우그룹 계열 다이너스클럽코리아와 대우캐피털에 빌려줬던 나라종금도 치명타를 맞았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나라종금의 예금인출사태가 빚어졌고, 결국 나라종금은 2000년 5월 퇴출됐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 그러나 이는 금감원이 나라종금에 대한 정밀조사 필요성을 감지한 시점이 대우사태가 터진 지난 99년 8월이었음을 의미한다. 경평위가 정밀조사를 요구한 시점에서 무려 1년 반이 지난 시점이다.
하지만 나라종금이 지난 98년 5월 영업을 재개한 이후부터 2000년 1월 2차 영업정지를 당할 때까지 문제가 없었느냐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검찰이 최근 금감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이는 것도 이 같은 의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과 염동연 민주당 인사위원이 김호준 전 보성그룹 회장으로부터 각각 2억원과 5천만원을 받은 시점이 지난 99년 6월과 8월이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검찰은 김 전 회장의 계열사 자금 담당 이사였던 최아무개씨가 지난 99년 7월부터 2000년 6월까지 11개월 동안 분산 관리했던 30여 계좌의 예금 잔고가 2000년 1월 나라종금의 2차 영업정지 직전에 크게 줄어든 점을 주목하고 있다.
한때 예금 잔고가 수십억원에 달했던 김 전 회장의 비자금이 99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 사이에 하루 잔고가 최소 1억원대에 불과할 정도로 줄어든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
검찰은 종금사의 최종 퇴출 결정권을 쥐고 있는 금감위에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정·관계 실력자들이 나라종금의 로비대상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금감원 비은행 검사국 정재삼 팀장은 “나라종금 퇴출과 관련된 외압은 절대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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