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보사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권순정)는 지난 15일 이웅열 전 회장을 상대로 출국금지 명령을 내렸다. 6월 초 코오롱생명과학과 미국 자회사 코오롱티슈진, 식약처 등을 잇따라 압수수색하며 본격 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이번엔 이 전 회장을 정조준한 셈이다.
검찰이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에 대해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사진=연합뉴스
인보사는 사람 연골에서 추출한 1액, 연골세포와 2액, 형질전환세포로 구성된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다. 지난 2017년 국내 판매 허가를 받았지만, 최근 2액이 허가 당시 제출한 자료에 기재된 세포가 아니라 종양을 유발할 수 있는 신장 세포인 것으로 드러났다. 식약처가 자체 시험검사·현장조사 등을 종합한 결과 코오롱생명과학은 허가 당시 허위 자료를 제출하고 허가 전 추가로 확인된 주요 사실도 은폐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전 회장은 19년 동안 인보사 개발 전 과정을 진두지휘해 온 만큼 의혹이 불거진 직후부터 허위 자료 제출, 은폐 등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심을 꾸준히 받아왔다. 여기에 지난해 11월 450억 대 퇴직금을 받고 돌연 사임한 시기와 인보사의 미국 임상 3상이 추진되고 있던 시점이 겹친다는 게 알려지면서 의심의 강도는 더 높아졌다. 이번 인보사 사태의 핵심인 세포가 뒤바뀐 사실은 코오롱티슈진이 미국 허가 준비 과정 중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면서 드러났다.
검찰은 수사 착수 당시 코오롱생명과학 측의 ‘세포 변경 인지 시점 및 고의적 은폐’ 여부를 집중적으로 확인했다. 그런데 최근 ‘인보사 허가로 인한 부당 이득 취득’ 여부로 수사 범위를 확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이웅열 전 회장에 대해 적용한 구체적인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사기’다.
검찰은 이 전 회장이 코오롱그룹 대주주 자격으로 인보사를 개발한 코오롱티슈진의 상장 과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코오롱티슈진의 최대 주주는 그룹 지주사인 ㈜코오롱(지분율 27.26%)이다. 이 전 회장은 ㈜코오롱의 지분 49.74%를 소유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은 이러한 지위를 활용해 인보사 문제를 숨긴 채 코오롱티슈진 상장을 추진했고, 대규모 상장 차익을 냈다는 의심을 받는다.
실제 코오롱티슈진은 2017년 11월 코스닥에 상장했다. 식약처 등에 따르면 코오롱티슈진이 인보사 세포가 뒤바뀐 것을 인지한 시점은 2017년 3월이다. 상장한 시점보다 8개월 앞선다. 그런데도 코오롱 측은 상장을 추진하며 문제를 공개하는 대신 “세계 최초 골절관염 치료제로서 한국과 미국에서 허가를 받을 것을 확신한다”는 내용으로 홍보했다.
코오롱티슈진은 상장 직후 코스닥 상장 종목 중 최대 규모의 기록을 세웠다. 기관투자자들이 써낸 공모 희망가는 밴드 최상단인 2만 7000원이었으며 시가총액은 약 1조 7100억 원에 달했다. 이 때문에 코오롱티슈진 주식을 보유한 계열사들의 주가가 올랐고, 덕분에 최대주주인 이웅열 전 회장의 당시 코스닥 주식 자산 증가율은 1466억 원에서 2636억 원을 기록했다. 코오롱티슈진만으로도 이 전 회장이 얻은 차익은 상당하다. 이 전 회장이 보유한 티슈진 우선주 지분가치는 1047억 원으로, 투자금은 약 60억 원이었다. 공모가만으로도 평가차익은 약 1000억 원 대다.
이 전 회장은 티슈진 주식을 팔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검찰은 소액주주들만 6만 명에 달하고, 피해액도 수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사실관계를 명확히 확인할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이 전 회장이 허위 투자설명서로 주식을 상장시켰는지 여부, 거짓 자료를 바탕으로 사업보고서 및 반기·분기신고서를 제출하고 주식을 유통시켰는지 여부 등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마곡에 위치한 코오롱, 코오롱생명과학이 위치한 원 타워(one tower). 사진=이종현 기자
이 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 됐지만, 코오롱 측이 공식 입장 표명은 하지 않을 가능성에 힘이 실린다. 이 전 회장은 지난 2014년 2월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당시엔 사고 발생 9시간 만에 현장을 찾아 입장문을 발표하는 등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이번 인보사 사태가 불거진 이후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코오롱그룹은 현재도 세포가 바뀐 것을 몰랐으며, 고의성이나 윗선 보고 등도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판매 허가 취소 등의 행정처분이 내려지면 소송을 통해 다퉈보겠다는 입장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코오롱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인보사 임상3상 시험에서는 성분을 연골세포가 아닌 신장세포로 바꿔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FDA의 임상시험을 통과해 미국에서 인보사의 품목허가가 이뤄지면 한국 식약처의 허가취소를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한 검찰출신 변호사는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만큼 그룹이나 이 전 회장이 사과를 하거나 책임을 지겠다는 모습을 보이면 세포가 바뀐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된다”며 “이 경우 고의성까지 드러나게 되는 만큼 형사상 책임뿐 아니라 주주 등과의 민사소송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 전 회장 외에도 회사의 핵심 임원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가장 주목하고 있는 인물은 이관희 전 인하의대 교수로 알려졌다. 그는 이 전 회장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인보사 아이디어를 처음 이 전 회장에게 소개했다. 노문종 현 코오롱티슈진 대표와 인보사 개발을 주도했고, 코오롱생명과학 임원과 코오롱티슈진 대표이사를 맡았다. 인보사 실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핵심 인물인 셈이다.
그런데 이관희 전 교수는 2010년부터 코오롱생명과학 지분을 서서히 정리하며 인보사 개발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식약처 허가를 받기 전후인 2017년 6월부터 9월 사이엔 코오롱생명과학에 남은 주식 3만 주를 전량 처분했다. 이 시기는 코오롱생명과학 주가가 12만 원으로, 2016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을 때였다. 이 전 교수는 같은해 말 코오롱티슈진 대표에서 물러났다. 그가 회사를 떠난 직후 인보사 사태가 불거졌고, 코오롱생명과학 주가는 2만 원 대로 떨어졌다. 현재 이 전 교수는 미국에서 벤처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근 인보사 수사 인력을 2배 가량 늘리고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회사 핵심 인물과 이 전 회장에 대한 소환 조사도 검토 중이다. 인보사 주주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이관희 전 교수 등 일부 임원들이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며 “환자와 소액주주 등의 대규모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