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차원에서 지난 14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방한은 상당히 의미있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 전 대통령을 청와대 만찬에 초청, 껄끄러운 한미관계의 돌파구를 모색했는가 하면, 부시 전 대통령을 초청한 전경련 회장단 등 재계인사들은 그의 방한이 한국의 국가신인도 향상과 경제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와 관련해 부시 전 대통령의 방한을 실질적으로 추진하고 부시 정부의 인맥들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류진 풍산그룹 회장(45)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류 회장 일가는 선친인 류찬우 회장 때부터 부시가(家)와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뿌리는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1971년 12월 베트남 중부 다낭항.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기지로 쓰였던 이 항구에 청룡부대 장병들이 철수명령을 받고 귀국선을 기다리며 집결해 있었다.
짐을 싸는 장병들로 북적거리는 가운데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 2명이 상관인 A씨를 급히 찾았다. A씨는 한국계 CIA 요원으로 전쟁 상황을 체크하는 것은 물론, 한국군과 미군 사이의 문제 처리에도 관여하고 있었다.
미 CIA 요원이 전한 내용은 ‘철수하는 한국군 병사들이 더블백에다 포탄 껍데기를 가득 담아 철사로 그것을 자신의 몸에 동여매고 있다는 것.
A씨는 한국군 병사를 통해 황동(구리와 아연의 합금) 등으로 만들어진 포탄 껍데기 하나가 한국에서 쌀 한 가마에 해당할 정도의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베트남전쟁 후인 70년대 초 국내엔 파병 장병들이 귀국할 때 가져온 포탄 껍데기가 가득했다. 그러나 질 좋은 황동을 활용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포탄 껍데기가 조국의 발전에 유용하게 사용되기를 바랐던 A씨는 미국으로 향하기에 앞서 한국에 들러 풍산의 창업자인 류찬우 회장에게 이 일을 연결시켜주었다. 당시 류씨는 국내에서 최고의 동 제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후 풍산은 국내 소전(素錢:무늬를 새기지 않은 상태의 동전) 시장을 석권했고, 70년대 탄약 생산을 통해 방위산업을 개척,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A씨는 베트남 전쟁 이후에도 류 회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풍산이 한국의 독보적인 방위산업체가 되면서 류 회장을 자신의 상관인 조지 부시 CIA국장(1976∼1977)에게도 소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인연으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다섯 차례(1982·1989·1992·2001·2003년) 한국을 방문했으며 그럴 때마다 풍산 일가와 긴밀한 접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찬우 회장은 1991년 노태우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할 때 동행, 조지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는 후문이다.
이러한 선대의 인연은 후대에도 이어져 조지 W 부시 현 대통령과 류찬우 전 회장의 아들인 류진 회장과의 관계는 가족에 버금갈 정도로 돈독한 것으로 전해진다. 류진 회장은 부친을 통해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알게 된 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도 막역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2년 당시 부시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그레그 주한 미국대사는 미국에 투자한 5개 기업 대표를 신라호텔로 불러 기업설명회를 부탁한 적이 있다. 그때 류 회장은 부시 대통령을 만나 농담처럼 미국공장 준공식 때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부시 대통령은 미국 아이오와주 공장 준공식 때 ‘직접 가지 못하지만 부인을 대신 보내겠다’는 연락을 했고, 실제 바버라 부시 여사가 참석해 테이프 커팅을 했다.
그때부터 류 회장은 부시 가문과 1년에 몇 차례씩 왕복하면서 친분을 쌓았고, 부시 전 대통령이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B. 클린턴에게 패해 재선에 실패한 뒤 더 큰 관심을 보여줘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류 회장과 부시 일가를 잘 아는 재계의 한 관계자는 “부시 전 대통령은 류진 회장을 아들처럼 생각한다”며 “바버라 부시 여사와 류 회장의 아내인 노혜경씨(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딸)는 모녀처럼 지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류 회장과 부시 대통령과는 직접 전화를 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라며 “지난해 12월 부시 대통령이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과 전화를 했던 배경에는 이를 간곡하게 요청했던 류 회장의 역할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지난 4월 부시 전 대통령의 방한도 사실 류 회장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지난해 2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미국을 방문, 부시 정부의 고위급 인사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류 회장의 두터운 인맥 덕이 컸다고 전했다.
류 회장은 북핵 처리 문제와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방문(5월)을 앞두고 다시 주목받고 있다. 부시 정부쪽에 특별한 라인이 없는 노무현 정부 입장에선 류 회장 같은 인물이 필요한 상황. 정가 일각에선 청와대에서 이미 류 회장과 접촉, 방미와 관련해 협조를 구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산업보국을 경영이념으로 하는 풍산이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운 요즘 어떠한 역할을 하게 될지 류 회장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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