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클럽 등 개혁 성향의 전·현직 경관 모임들은 지난 2018년 1월 경찰청에 진정서를 내고 정식 수사를 의뢰했다. 당시 경찰청에 설립된 한시적 기구인 경찰개혁위원회는 이 사건을 검토한 후 지난해 4월 말 진정인들에게 각하 통지를 하며 수사를 종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18년 9월 5일 서대문구 경찰청앞에서 무궁화클럽 등 전직 경관들이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구속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무궁화클럽
경찰청 진상조사 실무지원팀이 지난해 4월 중순 김장석 무궁화클럽 회장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 따르면 경찰청은 조사에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경찰청은 문자 메시지에서 “진정조사를 요청한 사건으로 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정식 접수됐다. 사전 기초조사 및 예비조사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이 과정에서 진정인의 의견과 진술을 청취하는 과정을 밟게 될 것”이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이후 경찰청은 개혁위원회 논의 결과 사건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며 진정인들에게 각하 통지했다.
김장석 무궁화클럽 회장은 “영문도 모른채 경찰 개혁 게시물을 부르짖다 부당하게 파면·해임되거나 병사한 경관들이 확인된 것만 9명이나 된다”며 “확인된 것만 이러하니 이명박 정부 시절 그런 인사 조치를 당한 경관들이 부지기수에 달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김장석 회장은 댓글공작과 관련해서도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로 인한 위기감을 느낀 이명박 정권이 2009년에 들어서자 청와대 등을 통해 경찰조직 내부에서 ‘영포라인’으로 꼽혔던 강희락 경찰청장, 조현오 전 경기지방경찰청 등에게 지시했다”며 “지시내용은 경찰 수뇌부에 지시해 정체불명의 댓글 부대를 동원해 경찰내부의 비판적인 글에 대해 조직적인 댓글을 달아 게시판을 장악했다”고 꼬집었다.
무궁화클럽, 경찰민주화연대, 민주경우회 등 개혁 성향 경관 단체들이 내부사정과 드러난 관련 수사기록 등을 바탕으로 전하는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09년부터 2011년 사이에 벌어진 경찰관 블랙리스트와 댓글공작 전말은 이렇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이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국무회의 등에서 대책을 논의한 끝에 비판세력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지시했다. 청와대 지시로 군기무사 스파르타 부대, 국정원 국익정보국 산하 댓글부대, 경찰청 보안국 산하에 사이버보안수사대를 만들었고 국민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SNS에 대해 조사했다. 경찰조직도 경찰내부 게시판, 무궁화클럽 게시판 등 온라인 수색을 통해 정부비판 세력, 조직 비판세력들에 대해 가급, 나급, 다급으로 분류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급은 경찰조직내 종북좌파로 분류됐고 당시 가급 대상자들에 대해선 근무태도, 가족관계, 재산관계, 과거 행적 등에 대해 조사했다. 나와 다급 등에는 무궁화클럽 운영진 전원, 경찰 개혁 단체 폴네티앙 운영진, 다음 아고라, 내부게시판 등에 글을 자주 게재하면서 정부 정책에 쓴 소리 하는 경찰관들로 분류됐다.
2009년 4월 경기경찰청 소속 박 아무개 경사(무궁화클럽 운영진) 파면을 시작으로 2011년 8월까지 파면 6명, 해임 1명에 이어 고강도 감찰 후유증으로 2명이 병사했다. 파면자 중에는 2010년 당시 서울 강북경찰서장으로 강압적인 감찰문화를 보다 못해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에게 동반퇴진을 요구했던 채수창 총경도 있다.
당시 경찰 내부 게시판에 경찰개혁을 주창하는 경관들의 글에까지 댓글공작이 성행했다. 2009년 5월을 전후로 현직 경찰관들만 들어오는 경찰 내부게시판인 ‘가족사랑방’에 갑자기 출현해 조직적으로 파면은 정당하다는 내용의 댓글들이 올라왔다.
경찰청 진상조사 실무지원팀이 지난 2018년 4월 무궁화클럽 회장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사진=무궁화클럽
양동열 무궁화클럽 사무총장(전 서울경찰청 경위, 2009년 파면)은 “댓글부대들은 경찰개혁을 요구하는 글을 찾아내 이를 비난하는 댓글을 조직적으로 달기도 했다”며 “심지어 이들은 게시물을 쓴 경찰관의 인터넷 IP를 도용해 더 자극적인 글을 쓰고, 그 글을 썼다는 이유로 파면, 해임까지 시켰다”고 질타했다.
양 사무총장은 이어 “경찰청은 특별수사단을 꾸려 조현오 전 청장이 서울지방경찰청장과 경찰청장으로 재직하던 2010년 1월부터 2012년 4월까지 댓글공작팀을 운영하며 국민에 대한 댓글공작, 언론탄압을 한 혐의를 조사했다”며 “현재 조 전 청장은 보석상태로 알려졌지만 이 혐의로 지난해 10월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에 앞서 벌어진 경찰 내부게시판 댓글공작 사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어떠한 조사도 없었다”고 질타했다.
부당 파면·해임, 댓글공작 등과 관련해 조현오 전 청장 등에 대한 혐의는 직권남용이다. 그러나 직권남용에 대한 공소시표는 7년이라 현재 시효를 넘은 상태다. 개혁 성향 경관 단체들은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식 고소나 고발을 할 수 없던 상황이 이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면서 공소시효도 넘어갔다고 지적한다.
앞서 김장석 회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경찰조직은 개혁위원회라는 명칭으로 한시적 기구를 운영했다”며 “개혁위원회는 경관 파면·해임, 댓글공작 등은 수사건으로 선정하지 않았다. 반드시 수사를 진행해 관련자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찰청은 개혁위원회가 이미 해체됐으며 관련 수사는 검토 결과 각하 통보로 종결됐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진정인에게 문자 통보를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이었으며 검토결과 재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최종 판단했다”고 답변했다.
장익창 기자 sanbad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