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이명박 대통령이 강화도 해병 청룡부대를 방문,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초소에 오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그런데 여권 일각에선-‘우리 군의 초기 대응이 잘 됐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떠올리며-이 대통령이 천안함 사건 초기에 보여준 ‘헛다리 리더십’으로 과연 위기의 한반도 안보정국을 잘 헤쳐 나갈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이 천안함 침몰 정국에서 보여준 심각한 ‘정무적 판단의 부재’가 앞으로 취해질 대북 ‘군사·외교적’ 대응 방안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또한 현 정권이 그동안 국정 역량을 세종시 수정안 몰아치기 등과 같은 ‘박근혜 죽이기’에만 집중하고 안보에는 소홀히 한 것이 천안함 침몰을 초래했다고 진단하는 인사들도 나오고 있다.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반쯤 물에 잠겨 경고등이 켜져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안보 리더십 실체를 따라가 봤다.
3·26 천안함 침몰 사건은 우리 사회 지도층의 안보에 대한 ‘졸음운전’이 빚어낸 최대의 참극이다. “안보는 산소와 같다. 이번 일을 통해 우리가 배운 것은 우리 사회와 국가의 안보체계에 허점이 많다는 것”이라는 정몽준 한나라당의 대표의 만시지탄은 이명박 대통령과 경제맹신, 정적 죽이기에 골몰하는 수하의 ‘예스맨’들이 들어야 할 통절한 자기반성이어야 한다.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할 최대 서비스는 안보”(김장수 한나라당 의원·전 국방부 장관)라는 말은 이명박 정권의 존재 이유와 국정 방향의 최우선 과제가 어디에 있어야 함을 말해주는 분명한 메시지다.
사실 이번 침몰 사건이 심각한 까닭은 북한이 우리 영토에서 군함을 직접 타격했을 가능성이 높고 이는 곧 준전시 상황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1983년 아웅산 폭발사건이나 1988년 KAL 폭파사건은 외국 영토에서 일어난 북한의 테러였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면 국지전 성격의 직접적인 전쟁 도발이다. 한 안보전문가는 이에 대해 “(만약 이번 침몰 사건이 북한의 잠수정 어뢰에 의한 공격이라면) 우리는 세계 해전사에 가장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것이다. 영상탐지, 음향탐지 등을 갖고 잠수정 동향까지 파악하고 있었는데 당했다? 그런데도 증거도 못 찾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안보무능정권으로서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 들어 왜 이와 같은 최악의 안보사건이 발생한 것일까. 먼저 이 대통령의 안보의식에 심각한 ‘파공’이 있음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목표에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한 정치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국가 지도자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안보에 대한 의식이 투철하지 못하고 한눈을 팔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참모들을 들들 볶는 스타일인 이 대통령에게 거칠 것은 없다. 아랫사람들은 대통령의 눈치만 볼 뿐 목숨을 걸고 바른 소리를 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이 시키는 일을 군소리 없이 묵묵히 하는 사람들이 이명박 정권 들어 승승장구하고 있다. 현 정권에서 통일과 남북관계 중심의 안보 이슈가 뒷전으로 밀려난 것도 이 대통령의 편협한 통치철학 때문이다. 물론 경제 살리기에 집중한 후유증이라고 변명할 수 있겠지만 안보는 그것을 능가하는 최대의 국정 과제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상당수 통일 전문가들도 ‘큰 틀에서 우리가 정말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 남북관계가 크게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라는 지적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이런 안보 홀대 경향이 결국 북한의 강경 대남도발 유도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이 안보를 소홀히 한 것보다 오히려 국정 역량을 정적 제거에 ‘올인’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특히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죽이기’가 결국 천안함 침몰과 같은 대형 안보사건을 불러일으킨 ‘나비효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여권 소장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촛불정국에서 벗어나 2009년 초부터 중도 표방으로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국정 운영에 부쩍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 차기 대권주자 키우기와 박근혜 전 대표 죽이기 전략이었다. 지난해 5월부터 올해 3월 천안함이 침몰하기 전까지 온 나라가 세종시로 난리를 치지 않았느냐. 그런데 지금은 ‘시국이 어느 때인데 세종시 운운하느냐’라는 게 현 여권의 분위기다. 천안함 침몰로 세종시 수정안은 좌표를 잃고 표류하는 난파선 처지가 됐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이 대통령이 국정 역량을 세종시 수정안 관철에 총집결했던 게 최대의 판단미스였던 셈이다. 국정 현안이 그곳에만 집중되다보니 남북관계 진전은 당연히 소홀해졌고, 결국 참다 못한 북한이 먼저 칼을 빼던 것 아니겠느냐. 이런 점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은 국정 우선 과제를 잘못 선택한 이 대통령의 최대 실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여권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천안함 정국에서 심각한 정무적 센스 부재를 노정하고 있다고도 지적한다. 먼저 침몰 사건 초기 이 대통령이 보여준 안보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있다. 한나라당의 한 친박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건 초기 청와대에서 보여준 첫 대응방식은 4회에 걸친 지하 벙커회의였다. 물론 즉각적이고도 당연한 조치였다. 하지만 벙커회의는 1회 정도로 그쳐도 됐다. 왜냐하면 그 후 몇 번 회의가 있었지만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결론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시중에서는 ‘지하에 들어가 회의만 하면 뭐 하느냐’는 불만이 나왔다. 여기에 병역면제자들이 다수 포함된 지하 벙커회의 멤버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아냥도 이 대통령의 초기대응을 불신하게 만드는 원인(遠因·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다”라고 전제하면서 “이론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이 대통령이 사건 초기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의견들도 많다. 사태 초기에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나와 위기에 정면으로 맞서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제대로 된 위기관리의 첫 단추라는 것이다(현재 청와대 정무라인에선 이번 사건의 원인이 규명되기 전이라도 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 형식을 통해 국가적인 위기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더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국민들은 이 대통령의 ‘육성’을 더 원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사건초기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만 보여줬다. 그의 말은 대변인의 목소리로 국민에게 전달됐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위기에서 믿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실패했다고 본다. 이는 위기에 대처하는 섬세한 정무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대통령이 천안함 정국을 너무 ‘정무적’으로만 대처했다는 비판도 있다. 사건 초기 그가 즉각적으로 “북한 연루 가능성은 아직 발견할 수 없다”라고 사전 위장막을 친 것은 이번 사건이 경제에 미칠 파급력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국회의 한 경제 전문가는 이에 대해 “사건 초기에 이 대통령이 북한의 ‘북’자만 언급했어도 전쟁 가능성의 예상이 쏟아지면서 주가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다행히 금값이 잠시 폭등하는 정도에 그쳤다. 최근 무디스가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 올린 것도 북한변수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것을 방증한다”라고 전제하면서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조기에 은폐 내지는 축소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경제논리 때문에 안보라는 국가존망의 최대변수를 ‘마사지’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경제에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 한반도 평화라는 안보측면에서 보면 이명박 정권의 불확실성과 불신만 더 키울 뿐이다. 과연 경제적으로 어떤 게 더 이익일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보수성향의 한 전략 관계자는 “이명박 정권에서 안보는 대통령이 태극기가 새겨진 점퍼를 가끔 입는 게 화제가 되는 정도의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정권 출범 3년이 돼도 제자리걸음인 남북관계를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하지만 천안함의 갑작스런 침몰로 대통령 패션 아이템쯤으로 여겨지던 안보가 순식간에 청와대의 회의 의제 1순위에 올랐다. 과연 이 대통령은 국가의 명운이 걸린 안보를 국민들에게 최대한 서비스할 수 있을까. 그것을 논하기에는 이명박 정권이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린 것 같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