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지선에 인양된 천안함 천안함의 함수인양 작업이 진행된 지난 24일 백령도 사고해역에서 처참히 찢겨진 천안함의 함수와 뜯겨져 나온 연돌이 바지선에 안착되고 있다. 연합뉴스 |
하지만 지난 3월 26일 천안함이 침몰하면서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력의 힘도 크게 상실되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은 사실상 소멸 단계에 와 있고, 천안함 침몰과 ‘검풍’ 등으로 6·2 지방선거 전망도 비관적이다. 만약 여권이 지방선거에서 패배하게 된다면 ‘개헌정국 조성’도 물 건너가게 되는 최악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결국 천안함 침몰은 세종시 수정안 정국으로 수세에 몰렸던 박 전 대표를 살리는 꼴이 되고 있다.
동력을 잃은 배는 표류하게 된다. 지난 2008년 2월 25일 진보정권 10년을 딛고 야심차게 출발했던 ‘이명박호’는 오는 6월 2일 ‘지방선거’를 통해 중간 급유를 받고 남은 항해를 무사히 마칠 계획이었다. 하지만 천안함 침몰이라는 예상치 못한(북한이 올해 초 장사정포를 서해상 북방한계선(NLL) 주변에 때릴 때 이미 예견된 것이기도 했지만) 파도를 만난 이명박호는 엔진에 힘이 빠지면서 국정운영의 좌표를 잃어가고 있다. 이는 이명박 정권을 관통하던 국정 주요 과제가 표류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차기권력 관리 차원에서 행해졌던 ‘박근혜 죽이기’의 중단도 가져오는 연쇄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 정치권에서는 천안함 침몰 파동이 이명박 정권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예견해왔다. 하지만 그 징후가 예상보다 일찍, 그리고 심각하게 올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이 대통령이 국정 운영의 동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미래권력’ 박근혜 전 대표를 견제할 수단으로서 야심차게 추진하려고 했던 남북정상회담과 개헌정국 조성이 천안함 침몰로 인해 같이 수장될 위기에 직면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단 세종시 수정안은 현 시점에서는 ‘사멸’된 정책으로 봐야 한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초까지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가장 큰 동력이었던 세종시 수정안 문제는 박근혜 전 대표가 ‘차기권력 죽이기’라고 판단, 벼랑 끝 대응을 하는 바람에 중간에서 좌초되기 일보직전에 있다. 그런데 천안함 타격을 받기 전만 해도 이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개헌정국 조성이란 두 가지 탈출 카드를 통해 세종시 수정안 관철 실패의 후폭풍을 잠재우려고 했다. 하지만 천안함 침몰의 파고는 예상보다 훨씬 높고 깊을 전망이다.
먼저 이 대통령이 올해 초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남북정상회담은 현 정권에서 그 개최 여부를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이다. 북한은 최근 금강산의 정부 및 관광공사 소유 부동산을 몰수하고 민간 부동산을 동결키로 결정했다. 더욱이 북한은 “더 무서운 차후조치”를 예고하고 있어 개성공단 통행차단 등 강경 조치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이런 강경 기류는 천안함 사고 이후 조성된 남한의 대북 강경 대응론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런 남북관계의 급속한 기류 변화는 남북정상회담을 세종시 수정안 정국 출구전략의 한 축이자 박근혜 전 대표를 압박할 국정 운영의 중요 동력 기제로 활용하려던 이 대통령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올해 초 이 대통령은 세종시 수정안 관철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보고를 받았던 시점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난 1월 말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NL) 주변에서 포사격 훈련까지 하는 등 남북 간 긴장관계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라 그의 제의는 다소 의외였다. 이 대통령에게는 세종시 수정안 실패가 뼈아팠고 그만큼 또 다른 국정운영 동력의 확보가 절실했을 때였다. 그래서 남북정상회담은 8·15 개최가 가장 유력하다는 게 정설일 정도로 급물살을 탔던 것이다. 또한 정상회담설은 세종시 수정 논란 등을 잠시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하는 효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생뚱맞은’ 정상회담 제안을 두고 “여론의 주목도가 높은 남북정상회담을 정국의 이슈로 부각시켜 국면 전환에 활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 천안함 정국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왼쪽)와 지난 19일 이명박 대통령의 ‘천안함 희생장병 추모 라디오·인터넷 연설’ 모습. 청와대 사진기자단 |
3·26 천안함 침몰 사건은 바로 세종시 전쟁에서 남북정상회담으로 정국 이동이 시작되던 때에 터졌다. 이 대통령으로선 세종시 전쟁의 패배를 정상회담 개최로 만회하기 위해 준비를 하던 과정에서 의외의 복병에 일격을 당한 셈이 됐다. 이는 그렇지 않아도 세종시 정국으로 지방선거에 비관적이었던 이 대통령에게 결정타를 날린 셈이 됐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지방선거를 ‘검풍’(한명숙 전 총리 기소 실패와 검찰 스폰서 파문) ‘노풍’(5·23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에 따른 친노인사들의 약진 여부) ‘북풍’(천안함 침몰 사건)의 3풍에 의해 그 결과가 갈릴 것으로 전망한다.
이 가운데 파괴력이 가장 큰 것으로 꼽히는 것이 ‘북풍’이다.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 북한의 무력도발로 밝혀질 경우 보수층의 결집을 예상할 수 있지만, 이명박 정권의 안보 리더십에 대한 총체적인 책임을 묻는다는 점에서 북풍을 국내문제로 인식하는 국민들의 중간평가 성격의 표심이 더 크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명박 정권은 지난해 10·28 재보선에서 큰 이슈가 없었는데도 ‘중부권’(수도권 2곳과 충청 1곳) 3개 선거구에서 전패한 바 있다. 하물며 정치적 의미가 훨씬 중한 지방선거는 핵심 이슈에 좌우될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런 점에서 이번 지방선거도 이 대통령에게 절대 유리한 선거가 아니다. 서울시장을 내주면 곧바로 레임덕에 빠질 것이란 여권 일각의 우려는 절박해 보인다.
그런데 정치 전문가들은 천안함 사태가 불러온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력에 대한 연쇄적인 약화 현상을 불러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특히 이명박 정권이 박근혜 전 대표와의 오랜 대결에서 비장하게 감추고 있는 마지막 칼인 개헌정국 조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다. 만약 여권이 지방선거에서 패배한다면 지도부 개편 등 쇄신작업에 따른 자숙모드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와중에서 어떻게 ‘감히’ 개헌론을 꺼낼 수 있느냐는 지적이 많다.
사실 개헌정국 조성은 안상수 원내대표를 비롯한 여권 지도부가 여러 차례 ‘지방선거 이후 추진할 것’을 천명하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또 다른 국정운영 핵심 동력이다. 차기 대권 쟁취가 난망한 민주당도 어떻게 해서든 판을 흔들 필요가 있기 때문에 개헌에 대해 긍정적이다. 개헌론에 관한 한 한나라당-민주당 공세에 박근혜 전 대표가 포위된 형국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박 전 대표는 4년 중임제를 선호하고 있다. 반면 대통령-총리의 이원 집정부제는 ‘불임’에 처해 있는 친이세력이 계속 살아갈 공간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에겐 매력적인 카드다. 하지만 천안함 침몰 사태는 친이세력 정권 재창출 최후의 보루인 개헌정국 조성마저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도미노’식의 국정운영 동력 상실은 결국 박근혜 전 대표에게 반사이익을 가져다줄 전망이다.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력 확보 전략은 정국의 주도권을 잡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는 차기주자 관리에 무게를 더 두었던 게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를 압박하기 위해 벼렸던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개헌정국 조성의 쌍칼은 점차 무뎌지고 있다. 그리고 지방선거에서마저 패배한다면 이 대통령은 칼을 쓰기는커녕 권력구도가 박 전 대표 중심으로 급격하게 재편되는 과정을 무방비로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친박 내부에서는 “박 전 대표가 지방선거에서 발을 빼길 잘 했다. 그렇지 않고 이번 선거에서 친이 후보들과 대대적인 사투를 벌였다면 천안함 정국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동시에 덤터기를 쓸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이번 천안함 정국에 침묵으로 일관해 ‘무책임하다’는 비판도 받고 있지만, 이번 사태만큼은 ‘부자 몸조심’ 행보가 적절하다는 게 친박 내부의 대체적 기류다.
천안함 침몰로 국정 운영의 추동력을 점차 상실해가는 이명박 대통령. 외국에까지 SOS를 외치는 그를 멀찍이서 지켜보고만 있는 박근혜 전 대표. 동력을 잃은 대한민국호는 아직도 표류하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