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친박 좌장’으로 불렸던 김무성 의원이 교차하고 있다. 두 사람은 최근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입장 차이로 갈라선 후 서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연합뉴스 |
정치권에서는 김 의원의 원내대표 추대는 이명박 대통령 작품이라는 게 정설로 통한다. 고향후배(포항)인 친이 직계 이병석 의원을 주저앉히고 한때 친박 진영의 좌장이었던 김 의원을 끌어들일 만큼 그에게 절박한 사정은 무엇이었을까. 여기에는 천안함 사태로 국정운영의 엔진이 점점 꺼져가는 것을 되살리기 위한 친박의 협력 내지는 ‘용인’이 필수적이라는 점이 먼저 작용하고 있다. 또한 하반기 여권의 최대 과제인 개헌을 염두에 둔 원 포인트 인사라는 평가도 있다. 김무성 의원의 원내대표 무혈입성 뒤에 숨은 이명박 대통령의 노림수를 따라가 봤다.
김무성 의원과 박근혜 전 대표의 관계는 ‘주종’이라기보다 ‘협력’으로 보는 게 맞다. 이번 두 사람의 결별도 그런 측면에서 ‘서로 갈 길을 갔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사실 정치적 포부가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아온 김 의원은 지난해 5월 원내대표 추대 좌절을 겪으면서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불만을 사석에서 자주 토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김 의원 주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해) 김 의원이 원내대표직 좌절을 맛본 뒤 한 사석에서 ‘내가 한나라당에서 정치를 제일 오래한 사람이다(실제로 이성헌 의원은 4선 의원인 그를 두고 ‘정치 이력을 볼 때 현재 6선 정도는 해야 할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내가 내 목소리를 내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냐. 그런데 어쩌다보니 박 전 대표 부하처럼 되어버렸다.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려면 소통을 할 줄 알아야 한다’라며 비판했던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올해 2월 ‘드디어’ 김 의원은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찬성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면서 박 전 대표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그때를 전후해 김 의원은 기자들에게 ‘박근혜 전 대표와 나를 분리시킬 것’을 주문하는 등 결별에 준하는 언급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김 의원의 결별 결심에는 박 전 대표 주변 강경파들과의 갈등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정치권 관계자는 이에 대해 “김 의원은 당시 박 전 대표의 최측근 Y, L 의원 등을 언급하며 ‘박 대표가 측근이라고 하는 일부 사람들 얘기만 듣고 나를 평가하고 오해한다. 내가 웬만하면 오해를 풀고 잘 지내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더라’며 최측근들에 대해서도 불만을 나타냈던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김 의원이 올 들어 박 전 대표를 향해 불만을 노골적으로 흘리던 무렵은 친이그룹의 영입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사실 김 의원은 이번 원내대표 영입 과정에서 자신이 먼저 여권 핵심부에 ‘추대’를 제안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김 의원이 청와대 정무라인 등에 ‘이번에 합의 추대해 주는 모양새로 해주면 나가겠다’라고 제안을 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여권에서 ‘정치에 그런 게 어디 있느냐. 일단 출마선언 해놓고 합의를 해야지 처음부터 옹립해주는 것은 맞지 않다’라며 ‘거절’을 했던 것이다. 친이그룹으로서는 왕년 친박의 좌장을 ‘모신다’라고는 해줄 수 없는, 일종의 자존심 문제였기 때문이다. 결국 김 의원이 먼저 출마 선언을 했고 그 뒤에 일사천리로 추대가 확정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김 의원이 추대를 제안하기 전 여권의 이상득계와 소장파 등에서는 이미 ‘김무성 원내대표안’에 대해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소장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박형준 청와대 정무수석이 일부 친이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김 의원 영입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강하게 건의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소장파의 경우 이미 두어 달 전부터 내부적으로 공감대가 있었다. 남경필 의원도 한 사석에서 그의 영입에 대한 의견을 구했고 정두언, 정병국, 정태근 의원 등도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또한 이상득 의원을 지지하는 세력은 지난해부터 김무성 카드에 찬성이라 이번에는 의견 조율이 더 수월했다”라고 말했다.
결국 여권의 광범위한 공감대를 읽은 이명박 대통령은 고향후배(포항)에다 고려대 후배인 이병석 의원에게 ‘양보’를 ‘주문’했고, 김무성 의원은 집권여당 원내대표의 오랜 숙원을 풀게 됐다. 하지만 일각에선 과연 김 의원이 친이그룹의 두 번에 걸친 영입 시도를 받을 만큼 ‘정치적 가치’가 있을 것인지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그는 지난 2006년 1월과 7월 원내대표 경선에 나섰다가 당시 이재오, 김형오 의원에게 각각 패배하며 이미 의원들의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번에 그가 낙점을 받은 것은 그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상황’ 때문이라는 냉혹한 평가도 나온다. 이런 부정적 평가는 그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느릿한 팔자걸음으로 의원들에게 위압감과 이질감을 준다”는 인상비평도 그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친이 직계는 그가 결국은 일정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먼저 그는 관직과 대권 조직을 총괄한 경험이 있다. 김영삼 정권 때 청와대 민정·사정 비서관, 내무부 차관을 거쳤고 박근혜 전 대표가 당 대표이던 2005년 당 사무총장을 역임해 당무에도 밝다. 그리고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에는 조직을 총괄하는 동시에 ‘박근혜 캠프’를 아우르는 좌장 역할을 자임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다양한 경험이 일단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감은 된다는 게 친이 측의 일차적 견해다.
두 번째로 그의 등장으로 인해 이명박 대통령에게로만 쏠리는 국정 운영의 책임을 박근혜 전 대표에게도 지워주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친이그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김 의원은 다양한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 특히 향후 국정 운영에서 박 전 대표가 험악하게 반대를 할 수 없을 것이다. 6년 동안 박 전 대표가 데리고 있었던 사람인데 무조건 반대만 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되면 협량하고 옹졸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박 전 대표로서도 운신의 폭이 좁을 것이다. 친이-친박 간 계파 갈등이 나올 때 김 의원에게 맡기면 오히려 수월해지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사실 천안함 사태로 국정 동력을 상실해 가는 이 대통령에게 친박의 협조 필요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친박계 내부의 일정한 지분을 갖춘 김 의원이 향후 이 대통령에게 쏠릴 국정 책임론의 ‘독박’을 박 전 대표와 나누도록 하는 매개 역할을 할 것으로 친이계는 기대하고 있다. 친이계의 이런 ‘기대’를 간파하고 있는 친박계에서는 “(김 의원이) 친박 대표성만 자임하지 않으면 원내대표가 되는 것도 괘념치 않겠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김 의원이 계속 친박의 색깔을 내는 이상 박 전 대표도 ‘국정 공동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김 의원 카드가 개헌을 위한 원 포인트 인사라는 주장도 한다. 한나라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어차피 김 의원이 친이라는 호랑이 소굴로 들어와 혼자 모든 사안을 처리할 수는 없다. 청와대에서 그에게 일정한 역할을 주는 것이 당내 권력구도 교통정리라는 측면에서 효율적이다. 이런 점에서 그가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후반기 최대 난제인 개헌에만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 친박과 일정한 관계가 있는 김 의원이야말로 그 적임자다. 친이가 정권 연장을 위해 이원집정부제 추진을 한다는 직접적인 비판을 피할 수 있고 친박과 협상을 할 여지가 그에게 더 많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김 의원은 친이의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에 대해 그동안 “권력을 나눠서야 나라가 제대로 되겠느냐”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하지만 그는 원내대표 추대 뒤부터 “개헌 등의 문제는 개개인의 입장을 떠나 공적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라고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 품을 떠나 드디어 홀로서기를 선언하고 나선 김무성 의원. 그의 정치적 성공 여부는 개헌론 관철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