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권위조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민종기 당진군수가 지난 28일 서울에서 검거돼 대전지검 서산지청으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
그 때부터 ‘추격전’이 벌어졌다. 민 군수는 시속 200㎞가 넘는 속도로 도주했고, 수사관이 탄 차량이 그 뒤를 쫓았다. 약 40분 동안 레이스를 펼친 끝에 민 군수는 서울 근교에서 체포됐고, 결국 5월 1일 구속됐다. 4월 24일 위조여권을 이용해 중국으로 달아나려다 발각돼 잠적한 지 일주일 만이었다.
검찰이 민 군수 비리 사건을 접수한 것은 지난 4월 22일. 감사원이 민 군수가 2005년부터 2008년 사이 100억 원대의 공사 일곱 건을 C 건설사에 몰아주고 3억 원 상당의 별장을 뇌물로 받은 혐의에 대해 조사를 의뢰했던 것이다. 또한 민 군수의 내연녀로 알려진 오 아무개 씨가 10억 원이 넘는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는 혐의도 여기에 포함됐다. 감사원은 당진군청 내부 제보를 받고 감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군청 내에서는 지난해부터 민 군수와 관련된 비리 내용이 파다하게 퍼진 상태였다고 한다. 민 군수는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자마자 자취를 감췄고, 결국 이날 체포됐다.
과거 민 군수는 지역에서 ‘CEO형 군수’로 통했다. 취임 후 황해경제자유구역 석문국가산업단지 등 굵직굵직한 사업들을 유치했고, 현대 동부 등 대기업들이 속속 입주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 과정에서 민 군수가 부정한 돈을 받은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몇몇 기업들이 당진군에 입주하는 과정에서 민 군수에게 뇌물을 줬다. 국책사업을 유치하면서도 정치권 인사들에게 로비를 한 흔적도 있다”며 수사 확대 가능성을 내비쳤다. 자칫 재계 및 정치권으로도 불똥이 튈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에 따르면 민 군수는 자신이 받은 돈을 내연녀인 오 씨뿐 아니라 친인척 중 한 명에게도 맡겼다고 한다. 오 씨가 10억 원, 그 친인척이 8억 원가량을 보관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검찰은 중국으로 도주한 오 씨뿐 아니라 잠적한 친인척에 대한 수사도 병행 중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민 군수를 조직적으로 비호해주고 있는 세력이 있는지도 의심하고 있다. 앞서의 검찰 관계자는 “민 군수 비리에 연루된 기업 혹은 지역 인사들이 여권 위조 등 도피 행각을 도와준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은 민 군수가 잠적했던 시기에 이들과 접촉해 대책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해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민 군수와 같은 비리 공무원에게 공천을 준 한나라당은 대오각성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민 군수는 올해 1월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그 전까지는 민주당 소속이었다”고 반박했다.
지방 고위공무원이었던 민 군수는 지난 2004년 6·5 재·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 공천으로 군수에 당선됐으며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도 열린우리당 간판으로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2008년 통합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지내오다 올 1월 감사원 감사가 시작될 무렵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지난달 20일엔 6·2 지방선거 당진군수 공천까지 받았으나 이번 사건으로 취소된 바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