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로서기 성공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박지원 의원이 신임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지난 5월 7일 국회 246호실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장. 박지원 신임 원내대표는 첫 일성부터 ‘뼈있는 말’로 시작했다. 지난 1년간 미디어법·4대강 예산 저지를 위해 장외투쟁을 주도했던 정세균 대표와 이강래 전 원내대표가 면전에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박 원내대표는 심지어 “당무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며 지방선거 공천과정에서 불거진 주류·비주류 간 충돌을 겨냥한 발언도 잊지 않았다. ‘의원들이 선출한 대표’로서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박지원의 시대’가 개막됐다. 지난 7일 원내대표 경선을 통해 그는 ‘(DJ의) 영원한 비서실장’이란 꼬리표를 떼고 ‘정치인 박지원’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그는 지난해 후발주자로 원내대표 선거전에 뛰어들어 “졌지만 이겼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뒷심으로 재도전한 끝에 선수(選數)의 한계를 깨고 원내 지휘봉을 거머쥔 것이다. 때문에 “원내대표와 수석부대표(박기춘 의원)가 같은 선수(2선)인 것도 역대 최초가 아니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화젯거리도 적잖았다.
하지만 그의 승리 자체가 파격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김부겸 의원과 ‘양강 구도’라는 평가를 받았고, 선거에서도 1차 투표에서만 과반에 가까운 34표를 얻어 일찌감치 승부는 판가름 났다. 무엇보다 그가 승리를 낙관할 수 있었던 것은 특유의 ‘저인망식 선거운동’ 때문이었다.
상당수 동료의원들은 “박지원의 전화로 아침을 시작해 박지원의 전화로 하루를 마감한다”는 상징적 얘기로 그의 집념어린 선거운동을 증언했다. 또 다른 의원들은 “1만 8400보의 정성이 통했다”며 그의 발품을 높이 쳐주기도 했다. ‘ㄷ자형’으로 된 의원회관 한 층을 돌려면 성인남자 걸음으로 230보 정도이고, 8층인 회관 모두를 돌면 1840보가 필요한데, 박 원내대표가 의원들과의 맨투맨 접촉을 위해 회관을 족히 10바퀴나 돌았다는 것이다.
또 당 안팎에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경선을 치르면, 무조건 박지원”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언론에서 갖는 기대감도 남달랐다. ‘최장수 야당 대변인’의 내공을 통해 민주당 지도부의 약점으로 지적받던 ‘미디어 대응력’을 다져줄 수 있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그 역시 “언론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짧은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재야에 계시다 평화민주당을 창당하고 언론과 굉장히 껄끄러운 사이였지요. 기독교 신자인 제가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면 가장 먼저 무슨 말씀을 하겠습니까?’라고. 김 전 대통령이 고개를 갸우뚱하시면서 ‘뭐라고 하시겠느냐’고 반문하기에 ‘여기 기자 왔는가?’ 하고 말씀하실 거라 했지요.” 대언론 소통의 중요성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일화였다.
▲ 정세균 대표, 정동영 의원 |
박 원내대표는 일단 ‘존재감 있는 야당’을 내세우면서도 투쟁과 협상을 병행하는 유연한 전술로 대여전략의 수정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적 한계가 분명한 상황에서 개헌과 천안함 사건 후속 대응, 세종시와 4대강, 검찰개혁 등 무거운 현안들을 순탄하게 헤쳐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 원내대표의 정치력에 대한 동료의원들의 기대는 작지 않다. 그간 ‘맏형’ 노릇을 할 사람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지방선거 공천 등을 둘러싸고 고조된 계파 간 갈등의 생채기가 컸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또 선거 직후 닥칠 전당대회가 차기 대권경쟁의 전초전이 될 것을 감안하면, 박 원내대표 말고는 세력 간 균형추 역할을 할 사람이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 역시 이 같은 분위기를 읽고 당선 ‘일성’으로 ‘소통문제 해결’을 다짐했다. ‘당헌·당규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당선사례를 통해 “소통과 당내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당헌당규 개정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대표께 건의하고 싶다”며 “당의 역동성을 위해 대선후보들이 모두 지도부에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 경선하는, 현재 당헌 규정을 바꿔 전당대회 1위 득표자를 대표로, 나머지를 최고위원으로 삼자는 것이다. “비주류의 목소리가 당에 반영되고, 민주당이 대안세력으로 재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박 원내대표는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 대표와 사전 상의가 없었다”며 ‘조율되지 않은’ 발언임을 분명히 했다.
실제 당내에서는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 이후 야권의 리더십 공백을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채울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팽배했다. 정동영, 추미애 의원 등 비주류 중진들도 “허약한 단일지도체제보다 집단지도체제가 낫다”며 이 같은 경선 방식에 방점을 찍어왔다.
그러나 당 안팎에선 당장 미묘한 파장이 감지됐다. 주류 측 한 핵심 의원은 “(집단지도체제는) 이미 열린우리당 시절 실패한 제도”라며 “앞으로 개헌, 총선 등을 치러야 하는 지도부인데 2등이 흔들고, 3등이 흔들면 당에 큰 해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원내대표가 당연직 최고위원으로서 지도부에 들긴 하지만 당헌 개정 문제 등을 거론할 자린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박 원내대표가 혹시 딴 마음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며 “이번 전대에 ‘빅4’들을 모두 지도부에 들게 하고 그들과 함께 지도부를 구성해 ‘같은 반열’에 오르려는 생각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오는 7월 정 대표의 임기가 종료되면, 8월 말쯤으로 예상되는 새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때까지 비상대책위 수장을 맡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져 이 같은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양원보 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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