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인사들을 타깃으로 하는 검찰 수사가 이처럼 급물살을 타자 야권에도 비상이 걸린 상태다. 자칫 한명숙 이광재 안희정 김두관 후보 등 6·2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친노 인사들에게 불똥이 튈 수도 있기 때문. 야권에선 선거 막판 ‘노풍’이 거세게 불 경우 여권이 검찰 수사를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여권 역시 ‘검찰 수사에 대한 역풍이 불 경우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긴 하지만 야권에 비해 한결 느긋한 입장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선거에 이긴다 하더라도 재선거가 치러질 수 있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스폰서 파문’으로 체면을 구긴 검찰이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지금, 참여정부 의혹 사건 수사에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내막을 따라가 봤다.
“이번엔 A 씨가 빠져나가기 힘들 것이다.”
지난 4월 30일 국내 1위 대부업체인 러시앤캐시가 압수수색을 당한 직후 접촉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A 씨 관련 내용은 지난 2008년 다른 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밝혀낸 것이다. 당시의 자료들과 이번 압수수색을 통해 A 씨가 러시앤캐시 측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은 것을 확인했다”고 귀띔했다. 러시앤캐시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3부(부장 유상범) 소속의 한 수사관도 “A 씨가 차명계좌를 이용해 2006년부터 2007년 사이 약 다섯 차례에 걸쳐 28억 원가량의 금품을 받은 사실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이 돈을 왜 받았는지, 또 A 씨가 받은 돈이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를 쫓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검찰 수사가 당초 러시앤캐시 경영진 개인 비리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는 전망과는 달리 ‘정치권 게이트’로 번질 수도 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은 러시앤캐시가 참여정부 시절 급성장한 배경에 A 씨와 몇몇 386 전·현직 의원들이 관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앤캐시는 지난 2003년 430억 원에 불과하던 영업수익이 2005년 하반기 700억 원으로 급증했고 2006년과 2007년 각각 1850억 원과 3800억 원을 기록하며 눈부신 성장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 역시 2003년 70억 원 적자에서 2005년 320억 원의 흑자를 거뒀고, 2006년엔 대부업계 최초로 1000억 원을 돌파하며 화제를 모았다.
대부업체의 한 CEO(최고경영자)는 “당시 외국계인 러시앤캐시가 갑작스럽게 시장을 장악해 특혜설이 파다했다. 정권이 봐주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질 않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A 씨를 비롯한 참여정부 일부 실세 인사들이 특혜를 줬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검찰은 지난해 초 한 386 의원이 2004년부터 2006년 사이 러시앤캐시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았다는 내용(<일요신문> 886호 보도)에 대해서도 확인에 나선 바 있는데 이를 재수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대검 중수부 고위 관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덮어야만 했던 파일들을 다시 꺼내든 것도 있고, 새롭게 알아낸 사실들도 있다. 어찌 됐건, A 씨 및 일부 386 인사들에 대한 수사는 최대한 신중하고 치밀하게 진행해 성과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한명숙 전 총리 사건 수사에도 조용히 가속도를 내고 있다. 1심에서 패한 이후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검찰은 지방선거 이후 본격적인 수사를 펼친다는 방침을 세우고 물밑에서 그 준비 작업이 한창이라는 전언이다. 한 전 총리 사건 수사를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관계자는 “지방선거 때문에 수사엔 한계가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수사를 안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 이 때문에 김준규 총장 등 간부들이 많은 고민을 했고, 그 절충안이 다음 재판을 대비해 최대한 조용히 증거확보에 전념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공직선거법 11조 2항에 따르면 징역 5년 이상인 범죄를 저지르거나 현행범이 아니라면 선거법 위반 외의 이유로 후보자를 체포 또는 구속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검찰이 선거 이후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이 지난 5월 12일 한 전 총리 측에 불법정치자금 9억 원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는 H 사에 대출을 해준 H 은행 한남동지점을 압수수색한 것 역시 이러한 보강 수사의 일환인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은 한 전 총리 측근이 H 사 법인카드를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확인에 나선 상태다. 특수2부와 함께 한 전 총리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특수1부의 한 수사관은 “H 은행 압수수색 등을 통해 한 전 총리 혐의를 입증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미 구체적이고 신뢰할 만한 것들을 확보했기 때문에 다음 재판에서는 검찰이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는 수사는 절대 아니다. 사실 지금 이렇게 수사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한 전 총리에게 예우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한 전 총리를 포함해 관련자들을 불러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전 총리의 무죄 선고와 스폰서 검사 파문 등으로 벼랑 끝에 몰렸던 검찰이 이처럼 친노 인사들에 대한 수사에 다시 고삐를 죄고 있는 것을 놓고 정치권과 법조계 등에서는 검찰의 위기감이 반영됐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야권은 물론 여권 내에서조차 검찰 개혁의 필요성이 공감대를 형성하자 검찰이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을 통해 탈출구를 찾고자 한다는 시각이다. 검찰 내에서는 “이번에 뭔가 성과를 내지 못하면 조직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기도 하다.
특히 정치권에서 공직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논의가 활발하게 오가는 점에 대해 검찰은 그 어느 때보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공수처가 들어설 경우 검찰 파워가 지금보다 현저하게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참여정부 의혹 사건에 대해) 섣불리 수사했다가는 오히려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점을 검찰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그 어느 때보다 수사에 공을 들인다는 얘기다. 현 정권 들어 계속되는 사정 정국에서 이미지를 구겼던 검찰이 이번엔 바싹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검찰 개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라도 가시적인 결과를 도출해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검찰 움직임에 대해 여야는 저마다의 셈법에 분주한 모습이다. 특히 야권은 ‘경계경보’가 발동된 상태다. 율사 출신인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검찰이 지방선거 전에는 후보자들에 대한 수사를 하진 않겠지만 만에 하나 선거 막바지에 피의 사실을 일부러 언론에 흘리는 식으로 선거에 개입할 수도 있어 걱정스럽다”면서 “한명숙 전 총리 등 몇몇 후보들이 검찰의 사정권 안에 들어가 있어 당선되더라도 재선거를 할 것이란 말이 벌써부터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데 이를 국민들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나 검찰 역시 그처럼 무모한 짓은 안 하리라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가 야권 표를 결집시켜 오히려 선거에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을 상기하며 연이은 검찰 수사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국민참여당 관계자는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친노 후보들 지지도가 오르면 한나라당이 검찰을 동원할 것이란 시나리오는 얼마든지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국민으로부터 이미 신뢰를 잃은 검찰을 누가 믿겠느냐. 검찰이 싸움을 걸어오면 공수처 설치를 포함한 과감한 개혁 방안으로 응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에서도 검찰 수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한 전 총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후 여권 인사들이 검찰을 ‘한명숙 선대위’라고 비아냥거렸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자칫 역풍이 불 경우 오히려 선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것이다. 한나라당 수도권 공동선대위원장인 홍준표 의원은 지난 5월 13일 검찰 수사에 대해 “후보자에게 공개적으로 창피주려는 수사,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수사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울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한 친이계 의원 역시 “지방선거가 어렵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여당이 고전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의 스코어는 나쁘지 않다. 수도권 빅3(서울 경기 인천) 역시 잘하면 전승도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검찰이 나설 필요가 있겠느냐. 그냥 잠자코 있는 게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여권 내에선 검찰 수사를 지켜볼 필요도 있다는 ‘신중파’와 적극 밀어줘야 한다는 ‘지지파’들도 적지 않다. 검찰이 참여정부 인사들의 비리 의혹 사건을 집중적으로 수사하고 있는 만큼 손해 볼 것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여론이 악화될 수도 있지만 혐의가 확실히 드러나면 상황은 반전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친노 인사들이 대거 당선되면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은데 강력한 사정 드라이브가 그 ‘바람막이’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도 청와대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청와대 정무라인의 한 관계자는 “검찰 수사에 청와대 뜻이 반영됐을 것이란 소문이 비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번엔 검찰이 워낙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어 우리도 한번 지켜보자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전적으로 검찰의 의지”라고 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