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3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위원 위촉장 수여식에 위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정치권에선 이번 감찰을 ‘공직사회 기강잡기’ 그 이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비리 사건을 미리 차단하고 강력한 사정 드라이브를 걸어 집권 3년차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권력 누수현상을 막겠다는 이 대통령 의지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번 공직 감찰에 대해 이재오 위원장의 ‘역할론’을 거론하며 여권의 ‘파워 게임’과 맞물려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이 때문에 정권 초부터 구설이 끊이지 않았던 몇몇 친이 인사들이 낙마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친박 및 야권에선 이 대통령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사전 정지작업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난 뒤 몰아칠 이명박 정권의 공직 감찰, 그 의미와 파장을 짚어봤다.
경찰은 최근 내부 직원을 대상으로 특별감찰에 돌입했다. 지난 5월 12일 본청 감찰팀을 중심으로 특별 점검단을 만들어 근무기강 및 복무실태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5월 9일 이명박 대통령이 검찰과 경찰의 고강도 개혁을 주문한 직후의 일이다.
부산경찰청의 한 고위 간부는 “이번에 걸리면 바로 퇴출될 것이란 소문이 나오고 있다. 분위기가 이러니 일선 경찰들이 몸조심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폰서 파문’으로 이미지를 구긴 검찰의 경우도 김준규 총장이 직접 “검찰만큼 깨끗한 데가 없다”면서 ‘자체 개혁’을 청와대 측에 요구한 바 있다. 김 총장의 발언은 비록 거센 여론의 역풍을 맞기는 했지만 검찰 또한 내부 단속에 나섰음을 시사하고 있다.
검·경의 이러한 움직임은 청와대가 사정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감찰을 준비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외부에서 메스를 들이대기 전에 미리 점검해 조직이 받을 타격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검·경뿐 아니라 국세청 국정원 등 사정기관과 각 정부부처 및 그 소속기관들의 문제에 대해서 들여다보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5월 초 이 대통령이 정정길 실장에게 직접 고강도 감찰을 지시한 이후 비서실이 구체적인 채비에 들어갔다고 한다. 청와대 민정팀의 한 관계자는 “내용을 자세하게 알지는 못한다. 청와대 내부도 대상이 될 것이라고 들었다. 그동안 문제가 있었던 일부 직원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면서 “지방선거가 끝나면 시작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공직감찰은 빠르면 6월 중순부터 시작될 계획이다. 청와대의 또 다른 관계자는 “8월에 개각이 이뤄질 가능성이 큰데 그 전에 공직사회 분위기를 쇄신하고 기강을 잡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지금쯤 사정-정보 라인의 컨트롤타워 격인 청와대 민정팀과 총리실은 감찰을 위한 준비에 한창일 때다. 특히 ‘VIP 의중’이 담긴 것이라면 소속 직원들은 24시간 ‘비상 모드’이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민정팀과 총리실 인사들에 따르면 이번 감찰과 관련해 어떠한 사항도 전달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보통의 경우 감찰 몇 주 전부터 첩보 입수 등에 나서는데 상부로부터 아직 아무런 말을 듣지 못했다. 공직감찰이 실시될 것이란 내용도 다른 정보기관에 종사하는 직원으로부터 전해 들었을 정도”라고 털어놨다.
▲ 이재오 위원장 |
여권 내에선 이재오 위원장 거취와 이번 공직감찰을 연관 지으며 비상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 대통령의 대선 승리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도 그동안 총선 패배, 미국 외유 등으로 인해 권력 주변을 맴돌아야 했던 이 위원장은 현재 7월 재·보선, 청와대 입성, 당 대표 도전 등을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는 상태다. 한때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은평을 출마에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최근엔 다소 회의적이라는 게 측근들의 전언. 대신 전당대회에 나가거나 차기 청와대 비서실장 혹은 국무총리 등을 맡을 것이란 소문이 여권 내부에 파다하다.
이 위원장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은평을 승리 가능성이 희박할 것이란 결과가 있었다. (이 위원장이) 이번에 지면 사실상 정치일선에서 물러나야 하는데 그런 모험을 하겠느냐. 대신 당으로 돌아오거나 정권의 핵심 보직을 맡아 다시 한 번 ‘킹 메이커’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고 귀띔했다.
청와대에서도 이 위원장에 대한 호의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일부 인사들 사이에선 “역시 믿을 건 이재오”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한 번 권력에서 멀어지면 되찾기 어렵다’는 정치권 속설도 있듯이 이 위원장 파워가 예전만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 위원장을 ‘히든카드’로 활용하려는 청와대의 고민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청와대가 이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권익위를 공직감찰 전면에 내세웠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 정무라인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이 위원장은) 로열티와 추진력만큼은 이미 검증된 인물 아니냐. 집권 후반기엔 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믿을 만한 최측근이 필요하다. 상황이 변하면 아군이 언제 적으로 돌변할지 모른다”면서 “정권 출범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이 위원장이 책임감을 가지고 이 대통령을 도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위원장으로서도 다시 중앙 무대를 밟기 위해서는 눈에 띄는 실적이 필요한데 이번 공직감찰이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청와대와 이 위원장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청와대발 감찰 소식에 대해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여권 주류 측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는 반면 친박과 야권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친이계로 분류되는 한 수도권 의원은 “대통령과 우리는 어차피 함께 갈 수밖에 없다. 개헌, 4대강 사업, 세종시 수정안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아젠다(의제)를 만들고 국정 주도권을 가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우리가 국회에서 법안과 정책을 추진하기가 훨씬 수월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사정 칼날이 현 정권의 몇몇 실세들을 겨냥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경우 정권 초부터 여러 비리 의혹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렸던 정부 관료 A 씨와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 B 씨가 집중 타깃이 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A 씨는 한 대기업 및 중견 건설사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받은 사실이 이미 사정기관에 의해 포착된 상태로 청와대까지 보고가 올라간 것으로 전해진다.
B 씨 역시 자신의 친인척 중 한 명이 최근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던 한 중견업체 횡령 사건에 깊숙이 연루돼 있다는 정황이 나와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야권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A 씨와 B 씨의 문제점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의 민정팀 관계자는 “우리도 A 씨와 B 씨 문제를 잘 알고 있다. 정권 막바지에 터지면 걷잡을 수 없다. 그나마 지금 힘이 있을 때 조치를 취하는 게 낫다. 감찰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몇몇 사안들은 짚고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A 씨의 한 측근은 “정권 초부터 우리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이재오 위원장이 감찰을 이끈다면 우리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며 우려하기도 했다.
친박과 야권에서는 이번 감찰의 진짜 의도에 대해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결국은 자신들에게로 화살이 날아올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야당 정치인들만 수사하면 여론이 악화될 것이 분명하니 미리 자신들부터 털고 가자는 것 아니겠느냐. 하나를 내주고 열을 얻겠다는 속셈”이라면서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절대 공정하게 될 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전 대표 최측근으로 꼽히는 한 의원 보좌관 역시 “친박 의원을 후원한 몇몇 단체들이 최근에 계좌를 추적당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공직감찰로 포장한 ‘정적 죽이기’가 자행될 것 같다. 특히 지난 총선에서 공천학살을 주도했던 이재오 위원장이 감찰에 앞장설 경우 또 다시 친박 탄압이 이뤄질 수도 있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한 친이계 수도권 의원은 “피해의식일 뿐이다. 정부가 공직감찰을 하는 것을 칭찬은 못해줄 망정 삐딱하게 봐서야 되겠느냐. 국민들은 진정성을 받아들여줄 것”이라고 반박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