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5월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3당 대표 회동에서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인사를 한 후 스쳐 지나가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이에 여당 내부에서는 3·26 천안함 사태 이후 청와대 정무라인의 ‘북풍 전략’이 들어맞고 있다며 반색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북풍 정국 조성’은 지방선거뿐 아니라 향후 세종시 수정안 관철과 개헌정국까지 겨냥한 다목적 포석”이라고 진단한다. 이 대통령이 11월 G20 개최 때까지 천안함 사태로 분 북풍 정국을 이어가면서 정국 운영을 ‘통일·북한’ 의제에 집중할 경우 세종시 수정안과 개헌론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이다. ‘북풍몰이로 정국 운영의 대도박에 나섰다’는 야권 반발을 무릅쓰고 이 대통령이 천안함 정국에서 강공 드라이브를 구사하는 배경을 따라가 봤다.
이명박 대통령의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대북 대응은 과연 적절한 것일까. 아니면 ‘북풍’을 의식한 다분히 정략적인 접근일까. 이에 대한 대답에 따라 천안함 정국을 보는 시각도 극명하게 엇갈린다. 먼저 전자의 물음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보자. 일단 이 대통령의 대북 대응이 ‘민심’을 얻는 데 일정부분 성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까지는 적절하다고 보는 게 맞다는 시각이다. 지난 5월 20일 <동아일보>가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이 대통령이 5월 20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 남북 간 교역 및 교류 중단, 향후 무력침범 시 즉각적인 자위권 발동 등의 대응 방향을 천명한 데 대해 응답자의 53.9%가 적절한 대응이라고 본다’라고 답했다.
이런 이 대통령의 대응조치에 대한 민심의 반응은 6·2 지방선거 판세에도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후보의 급부상으로 요동치던 수도권 판세가 이 대통령의 대응조치 발표 이후 여야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다시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향후 남북 간 무력대결이 발생하면 이 대통령의 강경책이 또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겠지만, 현재까지는 그의 대응전략에 민심이 지지를 보내는 형국이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는 이 대통령이 천안함 정국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기보다 10년 햇볕정책을 청산하고 이명박 정권의 대북한 상호주의 원칙을 관철해내려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점에서 지난 20일 발표한 대응원칙은 적절하고 유효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먼저 야권에서는 이 대통령의 강경대응에 정략적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비판한다. 6·2 지방선거에서 북풍을 견인해 승리하고 그 여세를 몰아 세종시 수정안 정국과 개헌 정국에도 영향을 줄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 천안함 정국 조성이라는 것이다.
먼저 5월 20일이라는 날짜가 도마에 오른다. 민군합동조사반이 하필 왜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개시일인 이날 천안함 침몰 진상을 발표했을까. 이에 대해 야권에서는 ‘정무적으로 정밀하게 기획된 작품’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는 이에 대해 “오비이락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정치적 계산의 냄새가 난다”고 지적한다. 야권은 “지난해 4·29 재·보궐 선거에서 5 대 0으로 참패한 정부여당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번 선거에서 냉전보수 세력을 규합할 필요성을 느꼈고, ‘마침’ 천안함 사건이 터지자 그것을 선거에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계속 제기하고 있다.
또한 한 전 부총리는 “사고 뒤 7주간 정부는 계속 뜸 들이는 척했다. 이것은 7주 뒤에 있을 정부 발표의 사실성을 돋보이게 하려는 계산이 있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미 결론은 내려놓고 뜸을 들였다는 얘기다. 5·20 발표의 진실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계산된 퍼포먼스라는 것.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정황도 있다. 지난 3월 26일 밤 천안함이 침몰할 당시의 간부 대화록 일부가 최근 공개됐는데 이에 따르면 작전관 박연수 대위가 “함장님, 어뢰 같은 데요”라고 보고하자 최원일 함장은 “응, 나도 그렇게 느꼈어. 봐라, 함미가 아예 안 보이잖아”라고 대답했고 부함장 김덕원 소령도 “어뢰 맞는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는 사건 초기에 이미 군 지도부와 청와대가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판단을 내렸을 개연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청와대는 국제적 공조와 차분한 대응을 강조하며 충분한 시간을 벌었는데 ‘공교롭게도’ 진상 발표일이 지방선거 공식운동 개시일과 겹쳐지면서 ‘뭔가 짜 맞춘 징후가 난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물론 “과학적인 검증을 거쳐 정확한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섣불리 예단하는 게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킨다고 보고 신중하게 대처하다 보니 그동안 이런 사실을 공개하지 못했다”라는 합조단의 해명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명운을 가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절묘하게’ 시기 조절을 한 대목은 그 정략적 배경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 이명박 대통령이 5월 26일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5월 20일 발표한 강경대응책은 그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국내 정무용’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는 정부가 서해안의 아군 전투기가 준전시 상황에 돌입하고 확성기 방송을 통한 대북 심리전을 재개하는 등 강경 일변도로 치닫고 있지만 이는 다분히 한시적인 ‘쇼’일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다. 왜냐하면 여권 핵심부는 이미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관련자(북한) 처벌도 쉽지 않고 안보리 회부 등도 어려울 것이라는 결론을 이미 내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최근 언론인들과의 만남에서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원인 규명은 솔직히 말해 어려움이 있으며 충분한 물증을 확보해도 피의자가 자백을 안하면 처벌이 어려운 것과 같다. (북한의 뒤를 받치고 있는) 중국을 감안할 때 (안보리 회부 등) 사후 대처도 어려움이 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 핵심부가 천안함 사태에 대한 우리 정부의 강경대응에 한계가 있음을 이미 인식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계속 ‘북풍몰이’를 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국내 정치용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방선거가 끝난 이후 6월 말로 예정된 전당대회 뒤 대대적인 여권 쇄신 작업을 단행할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그 전에 지방선거 승리의 여세를 몰아 ‘골칫거리’인 세종시 수정안 관철에 다시 나설 것이라고 한다. 앞서의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세종시 처리방안과 여야 간 국회 공조와 관련해 6월에 한판 붙을 것이며 김무성 의원이 원내대표가 됐으니까 (세종시 수정안 관철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크다’라는 말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친이계의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올해 11월 열리는 G20 개최 때까지 국정 운영의 총역량을 ‘통일·북한’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항간에는 북한과의 국지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G20 개최지 반납설까지 나오고 있고, 천안함 리스크에 따른 경제 불안정 요소가 커지면서 더욱 안보 정국에 집중할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대통령이 보여준 안보 리더십이 지방선거 승기를 잡으면서 더욱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천안함 사태로 끌어올린 이 같은 국정 주도력을 바탕으로 바닥으로 떨어진 세종시 수정안 동력을 다시 살리려고 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다만 여기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한 친박세력의 저항이 또 다시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친이계는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당의 한 소장파 의원은 이에 대해 “박 전 대표 없이 친이 주도로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향후 당과 대권주자의 구도를 재편하는 지렛대로 작동할 것이다. 선거에 공헌하지 않은 박 전 대표가 과연 ‘묻지마 반대’를 계속 외칠 수 있겠느냐. 또한 수도권에서 친이 주자들이 압승을 거둔다면 비록 충청권 일부가 반대를 하더라도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할 명분이 더 커진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분석이 너무 낙관적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먼저 이 대통령이 대북 강경책으로만 치닫다가 자칫 북한과의 무력충돌이 발발할 경우 그 임팩트는 경제뿐 아니라 국정 전반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북 강경도로 일관하는 정책은 결국 ‘한반도 영구 긴장화’와 그에 따른 군사대결 구도 증대로 인해 경제가 정체기를 겪는 전형적인 ‘소탐대실’로 끝날 것이란 지적도 적지 않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천안함 정국 강경대응은 일정 시점에서 북한과의 대타협으로 급선회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세종시 수정안과 개헌 정국이 ‘물타기’될 가능성을 이 대통령과 친이 핵심부가 염두에 두고 있을 공산도 크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