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오 위원장, 손학규 전 대표. |
‘민심의 위력’을 실감한 정치권에서는 오는 7월 28일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가 향후 정국 구도에 또 하나의 중대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서울, 인천, 광주, 경기, 강원, 충청 등 수도권 두 곳을 비롯해 전국 8곳에서 실시돼 ‘미니 총선’으로도 불리는 이번 재보선에는 여야 잠룡들의 출마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어서 6·2 지방선거 못지않은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고 있다. 예상과 달랐던 지방선거 결과에 울고 웃었던 여야는 전열을 가다듬고 이제부터 7·28 재보선 준비에 매진해야 하는 상황. 7·28 재보선 주요 격전지와 물망에 오르내리는 ‘후보’들의 면면을 미리 짚어봤다.
오는 7·28 재보선에서 가장 큰 관심지역으로 일찌감치 급부상한 곳은 서울 은평 을 지역이다. 이곳은 2008년 4·9 총선에서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가 당시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과 맞붙어 승리했던 곳이지만 문 전 대표의 의원직 상실로 지역구가 공석으로 남아 있다. 은평 을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의 출마설이 꾸준히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 이재오 위원장은 그동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은평 을 재보선 출마 여부에 대해 “세상 일이 개인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출마 가능성’을 열어뒀었다.
하지만 6·2 지방선거의 성적표가 매우 저조하게 나타나자 7·28 재보선을 앞둔 한나라당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은평구청장의 경우 한나라당 김도백 후보와 민주당 김우영 후보가 접전 양상을 보이다 결국 민주당의 승리로 돌아갔다. 양 후보는 각각 이재오 위원장과 민주당 이미경 사무총장의 측근이어서 은평구청장 선거는 양측의 ‘대리전’으로 불리기도 했다.
한나라당 소속 한 보좌관은 “앞으로 전당대회, 재보선을 앞두고 있지만 현 분위기로는 사실 막막하다. 현재로선 재·보궐 선거에 대한 기대를 낮게 가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 위원장이 선뜻 은평 을 재보선에 출마하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6·2 지방선거 이후 패배에 대한 책임으로 정몽준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사퇴한 것이 결과적으로 이재오 위원장의 여권 내 ‘입지’를 만들어줄 가능성도 있다는 평가다.
반대로 야권은 지방선거의 상승세를 재보선까지 이어가겠다는 각오다. 민주당 장상 최고위원은 지난 3월 일찌감치 은평 을 지역 출마 선언을 했고 김근태 전 의장과 한광옥 전 대표, 정대철 상임고문도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이번 지방선거에서 헌신적으로 유세를 다닌 손학규 전 대표의 출마설도 거론돼온 터라 야권에서는 ‘후보 선정’에 고심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다. 그간 친노 진영 일각에서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재오 대항마’로 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한 바 있으나 이번 경기지사 선거에서 석패한 유 전 장관이 당장 재보선에 나오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인천 지역에서는 민주당 송영길 최고위원이 인천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공석이 된 계양 을에서 보궐 선거가 치러진다. 선거 직전까지도 박빙 양상을 보이다가 송영길 최고위원이 한나라당 현 안상수 시장을 누르고 극적으로 당선된 것은 향후 계양 을 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의 승산을 더욱 높여주었다는 평가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지역구 분위기도 더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인물만 된다면 이번 재보선에서도 승산이 높다고 본다”고 전했다. 6·2 지방선거에서도 계양구청장의 경우 민주당 박형우 후보(54%)가 한나라당 오성규 후보(32.2%)를 큰 표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민주당에서는 이번에도 이 지역에서 전략공천을 할 가능성이 높은데 한나라당 후보의 중량감에 따라 은평 을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는 김근태 전 의장이나 손학규 전 대표 등 거물을 내세울 수도 있다는 계획이다. 손 전 대표가 이번 재보선을 통해 정계에 복귀한다면, 서울 은평 을이나 인천 계양 을 중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까지 인물이 가시화되고 있진 않으나, 한나라당에서는 지난해 부평 을 재보선 당시 출마설이 거론됐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덕룡 대통령 국민통합특보 등을 후보군으로 예상할 수 있다.
강원도에서는 지사 선거에 출마했던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원주시)과 민주당 이광재 의원(태백시·영월·평창·정선군), 그리고 지난 1월 타계한 고 이용삼 민주당 의원(철원·화천·양구·인제)의 지역구에서 보궐 선거가 치러진다.
▲ 왼쪽부터 이완구 전 지사, 윤진식 전 실장, 김근태 전 의장, 엄기영 전 사장. |
최근 선거에서도 강원 지역은 무소속이나 야당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이 연출된 적이 적지 않았다. 지난 2008년 총선에서도 특히 강원 영동 지역에선 무소속 후보 3명이 당선되며 ‘무소속 돌풍’이 불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강원은 전통적으로 보수 정당의 강세 지역으로 분류되지만 강원 지역 민심은 변화에 대한 바람도 적지 않다. 강원이 지역개발정책에 다소 밀려 있다는 불만도 적지 않아 이를 정권에 대한 견제심리로 표출하는 흐름도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강원 지역의 투표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았다는 점도 이를 반영하는 결과”라며 “한나라당이 강원도를 계속해서 여당 우세지역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원 지역에서는 엄기영 전 MBC 사장이 7·28 재보선에 출마할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다. 이광재 당선자가 강원지사 출마 이전 엄기영 전 사장의 강원지사 출마를 위해 적극 나섰던 터라 향후 자신의 지역구에 엄 전 사장을 영입하기 위해 더 매진할 가능성도 크다. 엄기영 전 사장이 강원 지역 재·보궐 선거에 출마해 승리한다면 인물난을 겪어오던 민주당으로선 대중성 높은 새 인물을 얻게 되는 부수적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강원 평창 출신인 엄 전 사장은 평창과 춘천 등지에서 살았기 때문에 강원 영서·영동 지역을 모두 통합할 수 있다는 장점도 높게 평가받는다. 그간 민주당의 끈질긴 구애를 고사해왔던 엄 전 사장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춘천시장 무소속 후보 유세에 동참하는 등 ‘정치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지방선거를 통해 민주당의 상승 분위기가 더해진다면 엄 전 사장이 ‘움직일’ 가능성도 보다 높아질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충청권에서는 충북 충주시와 충남 천안시 을 지역에서 보궐 선거가 치러진다. 충주시가 지역구인 민주당 이시종 전 의원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충북지사에 당선됐고 천안시 을 지역의 자유선진당 박상돈 전 의원은 충남지사 선거에 출마해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에게 고배를 마셨다.
충주의 경우 여권에선 윤진식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5월 재보선 출마를 선언했다. 지난 18대 총선에 이어 두 번째 도전이다. 윤 전 실장은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충북도당 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아 이미 표밭다지기에 나선 상태. 하지만 일찌감치 한나라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맹정섭 충주녹색패션산업단지 대표가 지난 총선 당시 ‘윤 전 실장이 다음 총선 때는 자신을 돕겠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민주당은 윤 전 실장에 대해 ‘세종시 수정안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라고 공격하면서 이번 충주 지역 재보선에서 ‘세종시 이슈’를 되살리겠다는 계획. 민주당에서는 세종시 원안사수위원회 정기영 부위원장이 출마 선언을 한 상태이며 충주 출신인 이인영 전 의원, 김영호 전 행정안전부 제1차관, 이종배 전 충북도 행정부지사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천안 을의 경우 충청권에 뿌리를 둔 자유선진당의 민감한 움직임이 주목된다. 자유선진당은 이번 지방선거 광역단체장에 서울, 충남, 대전에서만 후보를 내고 충북은 후보조차 내지 못했었다. 충남지사 역시 민주당 안희정 후보가 당선되면서 자유선진당의 기반이 출렁거리게 됐다. 더구나 충남지사 선거에 나갔던 박상돈 후보의 지역구(천안 을)마저 잃은 상황이어서 자유선진당은 ‘천안 을 사수’에 매진해야 하는 입장이다. 의석수가 18석에서 17석으로 줄어든 자유선진당은 교섭단체 구성 가능 의석수(20석)에 3석이나 모자라게 됐다. 천안 을의 경우 꼭 탈환해야 하는 지역구인 만큼 자유선진당은 후보 선정에 고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로선 재정분야 전문가로 알려진 강태혁 한국은행 감사가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한나라당에선 지방선거 불출마 선언으로 주목을 끌었던 이완구 전 충남지사의 천안 을 출마 여부가 관심사다. 이외에 18대 총선에 출마했던 한나라당 김호연 당협위원장과 엄금자 전 도의원, 역시 18대 총선에 나섰던 민주당의 박완주 지역위원장이 예비후보로 등록한 상황이다.
민주당 강운태 의원이 광주시장으로 출마해 광주 남구도 보궐 선거가 치러지게 된다. 아직까지 거론되는 후보군은 없으나 민주당은 ‘전략적 후보’를 내세워 텃밭인 호남권 사수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한편 민주당 김진표 최고위원이 경기지사 출마를 위해 냈던 의원직 사퇴서가 철회되면서 수원 영통 지역의 재보선은 열리지 않게 됐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후보로 야권 후보 단일화가 성사되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던 김진표 최고위원은 선거법상 의원직 사퇴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된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