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선거 투표일인 2일 오후 정세균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가 민주당 당사에서 밝은표정으로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주간사진공동취재단 |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민주당 자력의 승리라기보다 견제민심이 벌인 ‘MB심판’의 반사이익이라는 점에서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와 함께 차세대 주자들의 등장으로 민주당 내 대권 잠룡들의 역학관계에도 일정한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민주당은 외견상 지역당과 불임정당이라는 한계를 벗어난 듯 보인다. 호남 광역단체장 3석을 석권한 데 이어 충남·북과 강원, 그리고 인천시에서 광역단체장 당선자를 배출했다. 경남에서 승리한 무소속 김두관 후보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영남으로 영향력을 확대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집권 기간에도 이뤄보지 못한 전국정당의 꿈이 현실화된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들을 더욱 흥분시키는 것은 승리의 내용이다. 당 외연확장의 기본이 되는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화려한 전과를 올렸다. 2년 뒤로 다가온 총선과 직결되는 선거구다. 서울 25명의 구청장 중 21명의 당선자를 냈다. 경기도 31명 기초단체장 중 19명이 민주당 소속이고, 불모지나 다름없던 인천에선 6명을 당선시켰다. 수도권 61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46개를 민주당 소속 단체장이 운영하게 됐다.
이번 지방선거는 무엇보다도 무기력증에 빠졌던 민주당의 한계를 털어낸 중대 전환점이 됐다. 대여 견제력을 갖춘 제1야당의 ‘존재감’ 확보는 물론, 2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 승리도 내다볼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 됐다.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은 “집권여당이 앞으로 야당을 무시, 배제한 채 독단적으로 국정을 이끌어갈 수 없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민주당은 40~50대 차세대 주자를 한꺼번에 등장시켜 야권 내 인물난으로부터 벗어날 계기를 마련했다. 송영길(48) 이광재(45) 안희정(45) 김두관(51) 등이 일거에 입지를 확보하며 차세대 주자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특히 낮은 당선가능성에서 드라마틱한 승리를 연출하면서 차세대 이미지를 더욱 높이는 효과까지 거뒀다. 이들이 튼튼한 자기 지역을 기반으로 향후 4년 임기 동안 능력을 인정받는다면 대권도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선 이들의 등장으로 그간 ‘인물부재론’으로 인해 저평가됐던 민주당의 정당지지도 상승효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들 차세대 주자들의 등장은 한편으론 정세균 대표, 정동영 의원, 손학규 전 대표 등 기존 유력 주자군과의 경쟁관계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들 차세대그룹이 차기가 아닌 차차기용 인물로 평가된다하더라도 당내 질서에 일정한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장강의 앞 물결은 뒷물결에 밀려갈 수밖에 없다”며 “송영길 이광재 안희정 김두관 등이 새 물결로 확실히 들어서면서 현재 야권 거물들은 밀려나갈 처지에 놓였다”고 전망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게 마련이다. 원인이 뭐가 됐든 민주당의 승리라는 자평을 내리면서도 민주당은 복잡한 과제를 함께 떠안게 됐다. 당장 7월로 끝나는 정세균 대표체제 이후 당권구도가 복잡해졌다.
당권의 구도는 이번 선거의 승패에 따라 정세균 체제 연장 혹은 당권투쟁으로 갈릴 운명이었다. 패배했다면 정 대표 체제가 물러나고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결과에 대한 당내 평가가 애매하다. 수도권 광역 3곳 중 1석을 얻는데 불과하지만 기초지자체를 독식하다시피 챙겼다. 충청과 강원은 물론 크게 기대치 않았던 부산·경남에서도 성과를 거뒀다. 승리라고 해도 무방한 성적이다.
반론도 있다. 수도권 기초지자체를 석권하면서도 정작 경기도지사와 서울시장 선거에선 패했다. 후보자 요인을 따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다.
서강대 정치학과 이현우 교수는 “압도적으로 야당 후보를 밀어주는데도 광역단체장 당선자를 내지 못한 이유는 결국 인물 요인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당내 사정에 의해 경선다운 경선을 치르지 못한 서울시장 선거 패배가 아쉬움으로 남게 되고 정 대표체제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형국이다. 선거 공천과정에서 정 대표체제는 당내 비주류 인사들로부터 ‘소통부재’를 지탄받았고, 일부 비주류 인사들은 당권경쟁을 공공연히 밝혀왔던 터다.
몇몇 인사들의 움직임은 벌써부터 주목을 산다. 박주선, 천정배 의원 등이 당 대표 출마를 위해 움직이고 있고, 원내대표 당선과 함께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주장했던 박지원 원내대표는 원내사령탑의 권한을 최대한 살린 상임위 배정을 선언하고 나섰다.
특유의 지론인 ‘국회중심’의 정당운영에 시동을 걸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도부급 인사들 간 파열음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국선거 참패의 사슬을 끊은 민주당 입장에선 이번 선거가 재기의 기회가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민심이 부여한 ‘견제권한을 갖춘 제1야당’의 위치가 그 시발점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민주당에게 양날의 칼과 같은 것은 유권자 눈에 민주당이 더 이상 ‘힘없는 야당’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당장 이번 선거에서 진행된 야권연대의 실질적 성과를 이어가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후보단일화, 정책연합 등을 지방정부에서 실제로 보여줘야 하는 검증대가 남아 있다. 차세대 분권형 리더로 화려하게 등장한 40대 광역단체장 당선자들의 지방행정 운영능력 또한 민주당에 대한 새로운 평가지표로 남을 전망이다. 자칫 선거결과에 따른 논공행상 나눠먹기로 비칠 경우 민심은 견제의 방향을 가차 없이 바꿀 수 있다.
일단 7월 28일 치러질 재·보궐선거가 1차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서울, 강원, 충청, 인천에서 펼쳐질 재·보선에서 민심의 파동이 나타날 수 있다. 리더십과 정치적 상상력 부족을 끊임없이 지적 받아온 민주당이 모처럼 찾아온 부활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김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