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루크’라는 이름은 한때 할리우드에서 리처드 기어보다 섹슈얼한 고유명사였다. 기어의 섹시함이 ‘몸 좋은 남자의 백치미적 매력’이었다면, 미키 루크는 ‘음습한 마성의 매혹’이었다. 그는 옴므 파탈이었으며, 그가 가차 없이 던지는 올가미 속에서 살아남은 여성은 없는 듯 보였다. 사악한 미소 뒤에 숨겨진, 상처 받기 쉬운 영혼. 앞니 하나가 빠진 것을 숨기기 위해 고안(?)해낸 특유의 미소는 모방 불가능한 트레이드마크였다.
1952년생인 미키 루크는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지는 사실 별 볼 일 없는 배우였다. <보디 히트>(1981)에서 입가에 묘하게 주름이 지는 미소를 지닌 방화범으로 잠깐 등장하며 존재를 알렸지만 그가 주연급으로, 그것도 위험할 정도로 섹시한 영화의 주인공으로 성장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럼블 피쉬>(1983)에서 연기를 헤치며 오토바이를 몰고 등장했을 땐 차라리 조금 나이 든 청춘스타 정도였다. <이어 오브 드래곤>(1985)으로 각광을 받았을 땐 갱스터 범죄영화에 꽤 잘 어울린다는 정도의 평가를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나인 하프 위크>(1986)는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그는 이 영화에서 별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음울한 눈빛으로 킴 베이싱어를 바라보고 비가 내리는 지하도에서 격렬한 섹스를 나누며 상대방을 결국 섹스의 노예로 만든다. 그는 음지의 남자였고 여성의 내면에서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그 무엇을 자극했다.
이후 그는 영화 속에서 점점 더 대담해졌다. <엔젤 하트>(1987)에서 리자 보넷과 벌인 광란의 섹스 신에 이어 <와일드 오키드>에서 보여준 카레 오티스와의 베드 신도 ‘실제 정사’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와일드 오키드>는 예사롭지 않았다. 미키 루크가 손으로 슬쩍슬쩍 가리긴 하지만 부감 쇼트로 잡은 그들의 하반신이 만들어내는 각도와 그 숨 가쁜 열기는 섹스 이상의 격한 행동처럼 느껴졌다. 미키 루크는 카레 오티스와 1992년에 결혼했고 사람들은 그들이 영화 속에서 진짜로 사랑을 나누었다고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아마도 미키 루크는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아찔한 섹슈얼리티를 가장 빨리 망쳐 버린 배우일 것이다. 거의 5년 만에 미키 루크는 할리우드의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졌고 다신 부활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경제적인 곤란은 심각했다. 아파트 월세 500달러를 내기도 버거웠고 비행기 탈 돈이 없어서 동생의 장례식에도 가지 못할 정도였다. 현장에서 프로듀서를 구타하고 상대 배우에게 멋대로 굴었던 ‘잘나가던’ 시절의 악동 이미지 때문에 그는 조연을 전전하며 근근이 살아가야 했다. 만신창이가 된 어느덧 50대 중반을 넘긴 미키 루크. 하지만 신은 다행히 그를 버리지 않았고 <더 레슬러>(2008)에서 퇴락한 프로레슬러 역을 맡으며 그는 다시 섰다. 그리고 <아이언맨 2>는 그를 블록버스터 배우로 만들었다.
이젠 아무도 그에게서 섹슈얼한 이미지를 느끼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한때 젊은 시절의 말론 브란도와 비교되었고 캐릭터를 놓고 알 파치노나 잭 니컬슨과 경쟁해 이겼던 사나이. 그 시절 그 미소는 사라졌지만 그는 어느새 짙은 선글라스로 조용히 자신을 감춘 성격파 배우가 되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