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현동 안동네는 황령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남구에 속하지만, 마을 뒤편은 진구다. 승용차로 접근할 경우 안동네는 현대2차아파트를 이정표로 삼는 편이 찾기 쉽다. 아파트 뒤로 돌아가면 곧 벽화마을의 입구에 닿는다. 도보로는 지하철역에서 제법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2호선 문현역보다 문전역이 조금 가까운 편이다. 2번 출구로 나와 전포돌산공원길을 따라 가면 된다. 20분쯤 걸린다.
일단 오해하기 쉬운 부분을 털고 안동네를 찾아야 할 듯싶다. 본의 아니게도 공공디자인상을 받았다는 말 때문에 대단한 기대를 하고 간다면 그 ‘추레한’ 모습에 실망을 하기 십상이다. 이 마을이 상을 받은 것은 대단히 깔끔하고 쾌적하게 디자인이 되어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벽화에 의해 완벽히 새로운 마을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안동네는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는, 언제 헐려도 이상할 것 없는 달동네였다. 부산이라는 거대도시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던 이 불량노후주택단지는 벽화라는 옷을 입음으로써 비로소 양지로 나왔다. 벽화는 낡고 허름한 건물을 낭만적으로 보이게 했고,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서 시각적 즐거움을 주었다. 일부러 찾을 일 없던 안동네는 곧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특히 주말이면 사람들이 무리지어 찾아와 사진을 찍으며 골목을 누비기 시작했다.
묘지 사이 들어선 집들
사실 겉모습으로만 따지자면 안동네는 아주 오래 전 형성된 마을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안동네의 역사는 겨우 25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안동네가 있던 자리는 원래 공동묘지였다.
도시의 중심 구성원으로 진입하지 못 한 사람들이 86부산아시안게임 즈음부터 하나둘씩 찾아들어 판잣집을 짓고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생겨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을은 점점 부피를 키웠다. 그렇게 지어진 집들이 지금은 어느새 250여 채나 된다. 전포돌산의 공동묘지였던 한쪽 사면이 완전히 집들로 뒤덮인 것이다. 무덤과 무덤 사이 빈 터마다 집을 지은 탓에 모양도 크기도 모두 천차만별이다.
▲ 벽화마을로 거듭난 문현동 안동네 야경(위). 벽화를 뒤로한 할머니와 손자의 다정한 모습이 정감어리다. |
주민들 참여로 만들어진 벽화마을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던 안동네에 벽화가 그려진 것은 지난 2008년의 일이다. 동서대시각디자인과 대학원, 부산경남거리미술동호회, 가온누리자원봉사단, 부산예술대, 부산예술고 등이 3월부터 약 3개월 동안 벽화를 그렸다. 디자인 시안은 동서대 팀이 맡았다. 고치고 또 고쳐가면서 완성된 시안을 나머지 참여자들이 벽에 그려 넣었다.
그림은 대개가 화사한 것들이다. 아무래도 동네 자체가 슬럼화된 곳이다 보니 그림의 톤을 밝게 가져가는 게 필요했다. 새가 날고, 아이들이 달리고, 강아지가 따르고, 비누거품이 날아다니고, 고양이와 쥐가 서로 어울려 놀았다. 물론 동네 벽화 속에서다.
일부의 그림은 마을주민들이 참여해 그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뭐 하는 짓들인가 하던 주민들이 마을의 변화를 몸소 느끼고 기꺼이 작업에 동참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주민들의 참여는 벽화에 대한 애착을 낳았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골목길에서 헤매고 있노라면 먼저 말을 걸거나 “요리조리 가면 벽화들이 있다”며 자세히 설명을 해준다. 뿌듯한 표정 가득한 얼굴로.
안동네에는 50여 개의 그림들이 걸렸는데 하나하나 찾아다니는 재미가 꽤 있다. 골목이 복잡하다보니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먼저 입구에서부터 전포돌산공원 쪽을 향해 가면서 벽화들을 만나본다. 이 길은 안동네에서 가장 넓은 길이다. 이 길에서 위아래로 좁은 골목들이 마치 참빗처럼 양쪽으로 뻗는다. 벽화들은 아래쪽으로 몰려 있다. 옷닭집, 팔구경로당, 구멍가게도 벽화로 치장됐다. 벽화는 돌산공원 갈림길 너머에 가장 많이 몰려 있다. 골목은 아예 이리저리 엉킨다. ‘어디로 가면 어떤 그림이 있다’라는 설명도 무의미해지는 곳이다. 어차피 막상 골목에 들면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
▲ 문현동 안동네는 주말이면 이른바 출사객들이 많이 찾는다. 예쁜 벽화들을 카메라에 담기 위한 단체 출사가 많다. 문현동 안동네에는 집집마다 무덤을 하나쯤 끼고 있다. 예전에 공동묘지였던 탓이다(아래). |
안동네는 밤풍경도 볼 만하다. 해가 지고 어스름이 찾아오기 시작하면 골목골목 가로등이 일제히 켜지고, 집집마다 하나둘 불을 밝힌다. 벽화들도 낮과는 또 다른 분위기로 저녁 풍경을 만든다. 여러 벽화 중 저녁에 특히 볼 만한 것은 안동네의 맨 왼쪽 골목을 따라 내려가면 만나는 해바라기와 고양이 벽화다. 그림 자체도 재미가 있지만, 이곳이 안동네의 야경을 감상하기 좋기 때문이다. 벽화 뒤편으로 고즈넉한 안동네의 저녁이 펼쳐진다.
한편, 안동네는 부산의 명소로 이름을 알리면서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지난해 개봉해 호평을 받았던 김혜자와 원빈 주연의 <마더>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그런데 이처럼 새롭게 태어나면서 많은 관심을 받는 안동네지만, 그 행복이 오래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벽화마을로 이름이 났지만, 통영의 동피랑처럼 마을보존이라는 기적의 꽃이 피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벽화와는 별개로 이주협상작업이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다. 안동네 벽화에 깃든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재개발과 함께 얼마 안 있어 허물어지리라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여행안내>
▲길잡이: 부산지하철2호선 문전역 2번 출구→문현2동주민센터→전포돌산공원길→문현동 안동네 벽화마을
▲먹거리: 문현동에는 곱창골목이 유명하다. 지하철2호선 문현역 2번 출구로 나온 후 문현고가를 지하도를 통해 건너면 나온다. 돼지곱창이 주 종목. 연탄불 위에서 고추장과 생강, 참기름 간장 등으로 양념을 한 곱창을 구워먹는데, 맛도 맛이지만 재미가 쏠쏠하다. 그중 칠성식당(051-632-0749)은 영화 <친구> 촬영장소로 소문났다.
▲문의: 문현1동주민자치센터 051-645-3354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