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확실한 대립구도를 보이고 있는 이들은 단연 KBS와 MBC 두 공중파 방송국들이다. 이미 두 방송사는 SBS에 소송을 제기했다. KBS가 먼저 SBS 윤세영 회장을 비롯해 임직원 8명에 대해 사기와 업무방해, 입찰방해 등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고, 뒤를 이어 MBC도 윤세영 회장과 안국정 전 SBS 대표이사 등 6명을 고소한 것.
중계권을 확보하지 못해 월드컵 특수에서 멀어졌지만 KBS는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의 인기 코너 ‘남자의 자격’을 통해 승부수를 던졌다. ‘이경규가 간다’ 코너를 통해 월드컵 ‘경험’을 쌓은 ‘남자의 자격’ 출연진 이경규를 앞세워 남아공 현지 촬영에 돌입한 것. 그리스전 다음 날인 13일 방영된 ‘남자의 자격’은 16.1%의 시청률(AGB닐슨 미디어리서치)을 기록하며 단독 중계하는 SBS가 야심차게 준비한 월드컵 예능 프로그램인 <태극기 휘말리며>(11%)를 압도했다. 월드컵 중계권을 단독 확보하고도 예능 대결에선 패배한 것.
이에 대해 SBS는 “뉴스 등 보도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월드컵 영상을 사용할 수 없다. FIFA 규정의 중계권 위반으로 강경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보였고 KBS는 15일 오전 ‘다시보기’ 서비스를 중단했다. 그렇지만 몇 시간 뒤 ‘다시보기’ 서비스를 재개한 KBS는 “본래 합의서엔 ‘뉴스 외 사용불가’라는 문구가 있었지만 우리가 문제 제기를 하자 SBS에서 ‘뉴스 외 사용불가’라는 문구가 빠져 있는 수정된 합의서를 보내와 합의가 이뤄졌다”며 SBS의 주장에 강력 반발했다.
‘SBS 온에어’ 유료 어플
스마트폰 열풍에 발맞춘 SBS 행보도 눈길을 끌고 있다.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SBS는 ‘SBS 온에어’라는 어플을 출시했다. SBS 방송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이 어플은 지상파 DMB 기능이 없는 아이폰 사용자들에게 SBS 방송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렇지만 지상파 DMB는 무료인데 반해 ‘SBS 온에어’ 어플은 4.99달러(6000원가량)를 주고 구입해야 한다. 따라서 초반엔 별다른 호응을 얻어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월드컵이 개막하면서 인기가 급증한 ‘SBS 온에어’는 유료 어플 순위 1, 2위를 다툴 정도로 구매가 급증했다. 지상파 DMB가 안되는 아이폰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어플이긴 하지만 가격이 4.99달러로 다소 비싼 편인 데다 이용기간도 1년으로 제한돼 이용자들은 불만이다. 유료 어플 순위 상위 20개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가격으로 상위 20개 평균가 2.99달러를 크게 상회한다(6월 17일 오후 3시 기준). 지상파 DMB를 무료로 이용하는 데 익숙한 국내 이용자들 입장에서 4.99달러가 고가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외주제작업체 개점휴업
SBS가 단독으로 월드컵을 중계하다 보니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등 정상 편성 프로그램들이 대거 결방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난 14일엔 SBS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집필하고 있는 김수현 작가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축구에만 올인하는 스브스(SBS) 정말 미워요”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방송가에선 월드컵으로 인해 지난 몇 년 동안 굳건해진 김수현 작가와 SBS의 특수 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의견까지 개진될 정도다. 심지어 이로 인해 KBS나 MBC가 김수현 작가의 차기작을 유치할 경우 그 영향력이 월드컵 중계권 확보에 버금갈 수 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올 정도다.
MBC 드라마 <동이>와 경쟁을 벌이며 한창 시청률 급상승을 이뤄내던 드라마 <자이언트> 역시 연이어 결방했다. <자이언트>가 결방되는 동안 <동이>는 월드컵 열풍에도 개의치 않고 14일, 15일 연이어 기존 자체 최고 시청률(29.1%)을 깨며 독주했다.
이처럼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들이 연이어 결방하면서 외주제작업체와 출연 연예인들은 ‘월드컵 백수’가 됐다. 일부 외주제작업체는 제작비가 이미 투입됐는데 계속 결방되면서 자금 흐름이 막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또한 스타급이 아닌 생계형 출연 연예인들 역시 연이은 결방으로 수입원이 끊겨 경제적인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월드컵 중계권을 확보하지 못한 KBS, MBC와 연계된 외주제작업체와 출연 연예인들은 부러움을 사고 있는 형국이다.
특수 노린 외식업체 혼란
한편 SBS의 월드컵 단독 중계로 가장 우왕좌왕한 곳들은 호프집을 비롯한 외식업체들이다. 월드컵 때마다 대형 스크린 등을 설치해 손님 몰이에 나섰던 외식업체들은 공공장소에서 월드컵경기를 방영하려면 공공시청권료(PV권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얘기에 크게 반발했다. 그렇지만 SBS가 상업적 목적이 아닐 경우 PV권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별 무리 없이 월드컵을 방영했다.
다만 상업적 목적이라는 기준을 두고도 혼란이 많다. 월드컵 관련 메뉴 신설이나 축구공 유니폼 등 월드컵을 연상케 하는 내부 인테리어도 상업적 목적에 해당된다는 얘기가 나돈 것. ‘월드컵 16강 기원 안주’ 등으로 특수를 노리던 외식업계에선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SBS 측은 “상업적 기준이란 별도의 입장료를 받거나 광고를 유치한 대기업의 행사로 한정지었다”면서 “월드컵 메뉴 등으로 평소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경우 이를 입장료로 볼 수 있어 해외에선 일체 금지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기준이 명확치 않고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어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한다.
결국 월드컵 관련 메뉴나 관련 인테리어 등이 PV권료와 관계가 없는데 이 부분이 잘 알려지지 않으면서 외식업계가 혼란에 빠진 것에 불과하다. 다만 이로 인해 손님들은 보다 저렴한 가격에 호프집 등에서의 단체 관람이 가능해졌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