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두언 의원이 갑작스럽게 당권 도전을 선언하자 청와대와 교감설이 나돌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월 당시 정두언 지방선거기획위원장과 악수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
더 나아가 이 대통령이 7·14 전당대회를 뒤에서 ‘컨트롤’하고 있다는 의혹마저 불거지고 있다. 친이 직계인 정두언 의원이 예정에 없이 갑작스럽게 당권 도전을 한 것을 두고 ‘청와대 개입설’ 내지는 양측 간의 ‘교감설’이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당의 체질 개선을 위해 이번 전당대회에서 사상 최초로 소장파 출신이 당권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을 두고 지방선거 패배 탈출 기로에 있는 청와대의 작품이란 이야기도 꼬리를 물고 있다. 청와대가 과연 한나라당 당권 경쟁의 리모트 컨트롤러를 쥐고 있는지, 그 막후를 따라가 봤다.
지난 6월 14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이 무거운 표정으로 대국민연설문을 읽어 내려갔다. 이날 연설은 평소 이 대통령이 즐겨 사용하는 자신감 있는 언어의 성찬이 아니었다. 이 대통령은 “지방선거 결과를 통해 표출된 민심에 대해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전제하면서 ‘협력 설득 성찰 감사 미안’ 등 반성문 단어들을 주로 사용하며 떠난 민심을 위무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이런 이 대통령의 진정성 표출(?)에도 불구하고 여야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야당에서는 “국민은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국정운영의 기조를 바꾸라고 요구하는데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마치 인적 쇄신이 최종 목표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함정”이라며 이 대통령의 연설을 깎아내렸다.
그런데 한나라당 초선 의원들 대부분은 이 대통령의 연설을 듣자마자 “6·2 지방선거에 나타난 민심을 바탕으로 향후 국정운영 기조에 큰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초선의원들의 고민이 상당 부분 반영된 매우 의미 있는 연설이었다”라며 극찬을 했다. 이런 초선 의원들의 ‘돌변’에 대해 한 당직자는 “권위주의적인 집단인 한나라당에서 초선이 연판장까지 돌린 그 ‘용기’와 ‘투지’는 이 대통령의 ‘세대교체’ 한마디에 증발해버렸다”며 실소를 금하지 못했다. 권영세 의원 또한 “‘60대 예스맨’에서 ‘40대 예스맨’으로 바뀌는 게 세대교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이 대통령이 ‘젊은 층 중용’을 언급하자마자 서열과 선수가 중요한 한나라당 분위기를 깨고 소장파가 대거 7·14 전당대회에서 당권 도전을 선언한 것을 두고 “국정운영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 등 쇄신요구의 핵심은 온데간데없고 ‘나이를 잊은’ 당권경쟁자들만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내에선 “쇄신의 목소리가 무색해졌다”는 자조 섞인 비판도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소장파들로서도 할 말이 많다. 한 초선 의원은 “대통령이 쇄신을 하겠다고 하는데 우리가 더 이상 ‘언제까지 하라’ ‘누구는 꼭 교체해야 한다’는 식으로 할 수는 없지 않느냐. 당분간 좀 지켜보자”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로 볼 때 이번 대국민연설은 상당히 진정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소장파를 비롯한 젊은 층의 중용은 이 대통령이 평소 생각해온 비장의 카드였다. 그런데 지방선거 패배로 그 시기가 앞당겨진 것일 뿐 갑작스런 국면 전환용은 아니다. 그런 대통령의 한 박자 빠른 결정을 우리(소장파)가 이끌어낸 것이다. 우리는 권력만 바라보는 해바라기가 아니다. 이제 1라운드는 성공했고 전당대회라는 2라운드를 통해 우리의 쇄신요구안을 관철시켜 나갈 것이다. 이 대통령의 ‘양보’는 소장파의 치열한 내부 경쟁을 통한 실질적인 결과물이고 우리는 그것을 수확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 대통령에게 이번 대국민연설은 정치적으로 상당히 중요하다. 집권 후반기의 국정 운영 틀을 새롭게 짠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은 자신의 수습안을 당에서 제대로 ‘소화’시켜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전언이다. 특히 청와대발 ‘세대교체론’이 여권의 쇄신바람을 막는 동시에 그 물줄기를 전당대회 쪽으로 돌릴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전당대회 흥행이 대통령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한 수 놓았는데 그게 잘못되면 자신도 큰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전당대회에 집착한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청와대의 전당대회 개입 의혹이 솔솔 퍼지고 있다. 그동안 보아온 ‘지리멸렬한’ 여당의 행태를 볼 때 청와대가 주문한 세대교체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 이 대통령이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당·청 간의 비선 라인을 가동해 전당대회 흥행을 위한 리모트 컨트롤에 나섰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바로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정두언 의원이다.
친이계 핵심인 정두언 의원은 지난 6월 15일 당에서 처음으로 대표 경선 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그는 목에 디스크 수술 자국을 선명하게 드러낼 정도로 ‘경황도 없이’ 바쁘게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소장파 사이에서는 애초 남경필 의원이 당권 도전에 나서고 정 의원은 ‘백업’을 해주기로 교통정리가 됐다는 말이 있었다. 지방선거에서 당이 패배해 ‘친이 책임론’이 흘러나오고 설상가상으로 정 의원이 갑자기 목 디스크 수술까지 받는 바람에 두 주자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갑자기 정 의원이 전격적으로 당권 도전 선언을 ‘질러버린’ 것이다. 이때 대부분의 정 의원 지인들은 “어제만 해도 안 한다고 했는데 누가 그 사람을 꼬드겼는지 모르겠다”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당 주변에서는 007작전처럼 갑자기 정 의원이 당권 경쟁을 처음 선언한 배경에 ‘청와대’가 있다는 말들이 급속하게 나돌았다. 그래서 정 의원이 청와대의 ‘밀명’을 받고 주변 참모들과 상의할 겨를도 없이 전격적으로 당권 도전 발표부터 했다는 말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정 의원의 ‘충성심’을 자극해 그가 더 적극적으로 신속하게 움직였다는 전언도 있다. 정 의원을 잘 아는 한 여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최근 정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하는 김에 나가서 확 한번 뒤집어 보라’는 얘기를 했단 말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정황 때문인지 친박계는 그의 전대 출마선언을 두고 “이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게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흘리고 있다. 그가 출마의 변으로 굳이 “‘이명박 정치’에서 나와 ‘정두언 정치’를 하겠다”고 밝힌 이유도 그런 배경 때문이다. 그럼에도 친박계는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다. 대구 지역의 한 친박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는 대통령의 ‘세대교체’ 발언이 자신을 포함해 대타가 될 친박을 겨누고 있다고 볼 텐데 그런 시점에서 정 의원이 출마를 발표했다. 청와대와 정 의원이 어느 정도 교감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심전심의 흐름은 있지 않았겠느냐”라고 말했다.
현재 당 주변에서는 계속 청와대의 전당대회 개입설 및 정 의원과의 교감설이 확산되고 있다. 이를 의식했던지 최근 정 의원은 이 문제에 대해 “전당대회 출마를 이명박 대통령에 사전에 알리기는 했지만, 상의는 하지 않았다”고 못 박았다. 그는 또한 “지금까지 내가 정부에 대해서 ‘워치독’(감시자) 역할을 해 힘든 생활도 해 왔는데 대표 출마 문제를 청와대와 상의하겠느냐”며 적극 부인했다.
그런데 당 일각에서는 여전히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에 서 있어야 할 사람이 전당대회까지 나서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부정적 분위기도 상존한다. 또한 정 의원으로서는 친박계와 척을 진 상태라 전당대회의 최대 난적을 극복해야만 한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한 친이계 보좌관은 이에 대해 “최소한 정 의원이 그동안 불편한 관계에 있던 청와대의 부정적 기류를 넘어선 것은 긍정적이라고 본다. 정 의원과 권력 갈등을 빚어온 세력들도 이 대통령의 ‘용인’에 따를 경우 그가 전당대회에서 방해를 받을 장애물 하나는 걷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 측은 이 대통령 전당대회 개입설에 대해 “이 대통령이 진정성을 가지고 국정 쇄신안의 큰 그림을 제시했다. 앞으로 그 구체적 방안을 좌고우면하지 않고 추진할 것이다. 그런 이 대통령이 특정인에게 전당대회 출마를 권유하는 등의 구시대적 정치를 하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선 이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여당의 전당대회에 ‘간여’(리모트 컨트롤)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방선거 패배 뒤 소장파들의 ‘집단 항명’은 여당에 권력과 자율권을 대폭 내놓으라는 일종의 권력분점 요구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여당의 일사불란한 지원을 받지 않고서는 집권 후반기 각종 개혁정책을 제대로 이끌어나갈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막후에서 여당을 조종하려는 유혹을 좀처럼 떨쳐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유혹이 한때 자신의 최측근이었던 정두언 의원 같은 ‘믿을맨’이 적임자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면서 전당대회 개입설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세대교체 카드로 쇄신요구 강공을 1차 방어한 이 대통령은 내친김에 당권마저도 소장파에 안겨 ‘이이제이’로써 당을 계속 ‘섭정’할 적극적인 전략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7·14 전당대회에서 당 최초로 젊은 당 대표 선출로 구체화되는 동시에 여당의 대대적인 권력 이동을 부르는 단초가 될 가능성이 있다. 지방선거 패배로 위기에 몰린 이명박 대통령. 과연 그는 자신에게 칼을 겨눈 소장파를 아군으로 만들어 그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