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대표팀이 6월 23일 남아공 더반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 나이지리아전이 끝난 뒤 기뻐하는 모습. 연합뉴스 |
#월드컵 동안 베스트 11은 어떤 기준으로 선발했나
그동안 가장 궁금했던 게 허정무 감독이 베스트 11을 선발하는 기준이었다. 오른쪽 풀백을 제외하곤 거의 변동없이 처음 정해진 베스트 11이 투입되었다. 과연 허정무 감독은 어떤 기준을 토대로 월드컵에서 베스트 11을 선정했을까.
“선수들 중에서 현대 축구를 잘 읽는 선수를 우선적으로 선발했다. 그 다음이 몸 상태였다. 현대 축구를 잘 읽는다는 말은 흐름을 잘 파악한다는 뜻이다. 훈련을 하다보면 그런 부분이 눈에 보인다. 그리고 처음 베스트 11을 정한 다음에는 큰 실수를 하지 않는 한 다음 경기에 다른 베스트 11을 선택하지 않는다. 선수 한두 명을 교체하는 것 외엔 월드컵 첫 경기 때 처음 정했던 베스트 11이 계속 뛰기 마련이다.”
#아르헨티나전에 오범석을 기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허정무 감독은 아르헨티나전에서 그리스전 때 뛰었던 차두리 대신 오범석을 투입시켰다. 그러나 결과는 대실패. 아르헨티나전이 월드컵 데뷔 무대였던 오범석은 경기 초반부터 잦은 실수를 연발했고 결국엔 결정적 실수를 저지르며 첫 골을 내주고 말았다. 경기 후 오범석은 “무슨 정신으로 경기를 치렀는지 모르겠다. 너무 강팀을 만나 당황했던 게 사실이었다”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지만 여론으로부터 엄청난 뭇매를 맞아야 했다. 축구협회 임원으로 재직 중인 아버지를 연관시켜 ‘빽’으로 아르헨티나전에 선발 출장한 게 아니냐는 인신공격성 비난도 감수해야 했다. 그로 인해 오범석은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고 급기야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나이지리아전 이후 믹스트존에서도 인터뷰를 거부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허정무 감독은 아르헨티나전에 오범석을 투입시킬 수밖에 없었던 데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오범석은 영리한 수비수다. 그동안 수많은 국제대회를 치르며 좋은 평가를 받았고 김동진 차두리와 함께 경쟁력 있는 오른쪽 풀백 자원으로 꼽혔다. 어느 감독이라고 해도 아르헨티나전에서는 오범석을 선발했을 것이다. 반면에 차두리는 치고 나가는 공격 본능이 있다. 그리스전 나이지리아전에서 몇 차례 눈에 띄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상대 팀에 따라 선수를 달리 쓸 수밖에 없었다. 다시 아르헨티나와 맞붙는다고 해도 지금의 수비수 중에선 오범석이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 6월 21일 한국 대표팀이 훈련을 했던 더반 프린세스 마고고 스타디움에서 허정무 감독이 차두리의 어깨를 만지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허정무 감독은 아르헨티나전 이후 공식기자회견에서 왜 차두리를 선발 출장시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리스전 때 차두리의 플레이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후 몇 차례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해 설명을 했지만 속시원한 대답은 아니었다.
“당시 기자들이 오범석 카드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하는 상황에서 설명을 한다고 한 게 차두리 얘기였다. 그 자리에서 차두리를 언급한 건 내 실수였다. 오범석을 쓸 수밖에 없는 부분을 설명하다가 차두리 얘기를 꺼냈지만 결국 두리한테 상처를 주고 말았다. 그래도 두리가 잘 받아들인 것 같아 내심 고마웠다. 정해성 코치가 그 부분에 대해 잘 설명해준 것으로 안다.”
#김남일 이동국 등 교체카드를 선정하는 기준과 투입 시점은 어떻게 정하나
허정무 감독이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동안 꺼내 든 교체카드는 특별한 성과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 2, 3차전 모두 교체 투입된 김남일, 1차전 교체 카드인 이승렬, 2차전 이동국, 3차전 김재성 등 교체 카드로 얻어낸 결실은 없었다.
“대부분의 감독들이 선수가 다치지 않는 한 후반 7~8분 정도 지나면 선수 구성에 변화를 주려고 한다. 당시 상황이 지고 있는지, 비기고 있는지, 또는 이기고 있는지에 따라 교체 선수가 달라진다. 물론 결과적으론 교체 카드 자체가 성공적이지 못했다. 경기 흐름이 교체 선수로 인해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교체카드 부분은 항상 고민되는 부분이다.”
#조별리그 3차전 중 가장 기뻤던 순간, 가장 아쉽고 후회되는 순간을 꼽는다면?
허정무 감독은 ‘독이 든 성배’로 표현되었던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이번 월드컵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이탈리아월드컵 대표팀을 맡았던 이회택 축구협회 부회장은 아르헨티나전을 앞두고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경기장에서 기자와 만나 “이전과 달리 지금은 대표팀 감독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대단하다”면서 “경기 결과에 따라 감독을 흔들었던 축구협회였지만 허정무 감독한테는 그런 부담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허정무 감독 또한 협회의 믿음과 신뢰가 없었다면 16강 진출에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풀어낸다.
“물론 가장 기뻤던 순간은 16강 진출을 확정짓는 순간이었다. 반면에 가장 아쉬운 부분은 아르헨티나전에서 2-1로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 들어서 3-1로 점수 차가 벌어진 상황이다. 이과인이 성공시킨 골은 오프사이드로 보였다. 그런데 부심이 깃발을 들지 않더라. 나중에서야 정해상 심판이 당시 경기를 봤던 그 심판으로부터 그 골이 오프사이드였다며 우리한테 미안하다는 뜻을 전했다고 하지만 이미 경기는 끝난 뒤다. 만약 그 골이 골로 인정받지 않았더라면 한국이 어떤 결과물을 얻어냈을지 모른다. 경기는 전력도 중요하지만 흐름을 타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16강 진출 확정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이지리아전에서 무승부를 거두고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뒤 경기 내용면에선 다소 아쉬움이 있었지만 허정무 감독은 마침내 목표를 이뤘다는 만족감이 얼굴 전체에 묻어났었다.
“정말 그랬다. ‘해냈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러나 내 목표는 16강이 아니었다. 우리 선수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 노력을 기울이면 8강, 아니 4강도 갈 수 있다고 본다. 설령 16강 진출의 성적표만 안고 남아공을 떠난다고 해도 크게 아쉽지는 않다. 모든 선수단이 최선을 다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조중연 축구협회 회장이 거론한 선수들의 병역 혜택 문제와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몽준 FIFA 부회장은 대표팀 선수들의 병역 면제와 관련해서 비난이 들끓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월드컵이 끝난 후 강도 높게 이 문제를 거론하겠다”면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과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하는 것과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하면서 조중연 축구협회 회장의 말에 힘을 실어줬다. 허정무 감독도 비슷한 의견을 갖고 있었다.
“한국에서 병역 문제를 거론하는 건 굉장히 힘들고 민감한 부분이다. 축구협회에선 지금 당장의 대표팀보다 2014, 2018월드컵을 대비해 그런 제안을 한 것으로 안다. 큰 숙제로 남아 있는 병역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지금의 젊은 선수들한테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반대하는 여론이 많고 이 문제가 성사되려면 해결해야 할 난관들이 많다. 하지만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대표팀 선수만 특혜를 받는다는 인식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앞으로 더 나은 월드컵,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월드컵을 치르려면 병역 문제가 잘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자성어를 즐겨 쓰는 이유는? 그리고 그 사자성어는 어떻게 찾는지 궁금하다
올해 초 허정무 감독은 월드컵의 해를 맞아 ‘호시탐탐(虎視耽耽), 호시우보(虎視牛步)’라는 사자성어를 꺼내들었다. “먹이를 노리는 호랑이(호시탐탐)처럼 월드컵을 준비할 것이고, 호랑이처럼 예리한 관찰력과 소처럼 신중한 행보(호시우보)로 갈 것이다”란 내용이었다. 사상 첫 월드컵 원정 16강의 운명이 걸린 나이지리아전을 앞두고는 ‘파부침주(破釜沈舟)’, 즉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살아 돌아오기를 기약하지 않고 결사적 각오로 싸우겠다는 의미를 내세웠다.
“기자들과 인터뷰할 때 어떻게 하면 의미 전달이 가장 잘 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사자성어였다. 내가 아는 사자성어는 분명 한계가 있다. 코칭스태프와 회의 때 ‘이런 내용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자성어가 뭘까’하고 물으면 인터넷을 통해 찾아주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문의해서 나한테 전달해 주기도 한다. 기자들이 ‘파부침주’가 강해서 우루과이전을 앞두고 꺼내 든 ‘결초보은’이 약하다고 말하던데 ‘결초보은’이란 말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포함돼 있는지 아는가. 진심으로 대표팀을 뜨겁게 성원해준 모든 국민들에게 좋은 경기를 통해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경기장에서 보여준 허정무 감독의 용병술이 무엇이었나
대표팀이 내세운 월드컵 16강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아르헨티나전 이후 허정무 감독의 지도력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던 건 사실이다. 더욱이 경기 중 꺼내든 교체카드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자, 도대체 허정무의 용병술이 있기는 하느냐는 비판도 뒤따랐다.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90분을 운용하는 건 선수들이다. 감독은 나가기 전에 전술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려고 노력할 뿐 그라운드 안에선 선수들이 서로 얘기를 주고받으며 경기를 풀어간다. 그래서 반복된 훈련이 중요하다. 훈련을 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전술을 전달하고 선수들이 자연스레 몸에 습득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간다. 수비위주로 풀어갈지, 공격하면서 압박수비를 펼칠지, 모든 것들은 경기 시작 전에 결정되고 선수들한테 전달된다.”
포트엘리자베스=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