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경필 의원(왼쪽)과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왼쪽·연합뉴스)과 이상득 의원. |
정치권에선 현재 청와대가 검토 중인 당·정·청 쇄신 작업이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소장파와 이재오계가 본격 ‘행동’에 들어갈 것이란 말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당초 수립했던 것보다 더 큰 폭의 인사를 하기로 결정한 배경 역시 이러한 당 내 기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그러나 복수의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에 교체될 핵심 요직 중 상당 부분을 ‘형님 사람들’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돼 양측의 갈등이 겉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집권 후반기 여권 권력 재편의 향배를 좌우할 친이계 ‘집안싸움’ 내막을 들여다봤다.소장파와 이재오계는 사실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MB 대선 캠프와 인수위 시절 주요 보직을 놓고 경쟁하며 대척점에 있던 관계였다. 하지만 이들은 정권 출범 후 이상득 라인에 의해 밀려나면서 ‘동병상련’의 처지가 됐다. 개국공신임에도 불구하고 논공행상에서 소외된 원인을 이 의원 측 견제로 보고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것이다. 그 이후 ‘이재오계+소장파’는 권력의 정점에 있던 ‘만사형통’ 이 의원을 향해 여러 차례 칼을 빼들었다. 지난 2008년 3월 이 의원의 총선 불출마를 주장했던 ‘55인 반란’이 첫 번째였고, 석 달 뒤 ‘권력 사유화 논쟁’을 일으키며 박영준 당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과 류우익 전 비서실장 퇴진 등을 요구했던 것이 두 번째였다. 지난해 6월엔 국정 쇄신을 외치며 이른바 ‘7인 성명’을 발표해 이 의원의 ‘2선 후퇴’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반격’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55인 반란은 실패로 끝났고, 소장파가 타깃으로 삼았던 박영준 전 비서관과 류우익 전 비서실장은 청와대에서 물러났다가 각각 국무총리실 국무차장과 주중대사로 컴백했다. 이 의원의 최측근인 박영준 국무차장은 ‘왕 차관’으로 불리며 오히려 그 전보다 힘이 세진 듯한 모습을 보였다. 7인 성명 역시 청와대가 채택하지 않으면서 무위로 돌아갔다. 당시 이 의원이 일선에서 후퇴하긴 했지만 그 영향력만큼은 줄어들지 않았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이다. 국정원 총리실 청와대 등에 이 의원과 가까운 인맥들이 포진돼 있기 때문.
권력의 균형추가 한 쪽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일까. 친이계 내부의 분란은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올해 초엔 일시적으로 ‘화해 모드’도 조성됐다.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친박과 대립 중인 터라 계파 단결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되던 때였다. 당시 이 의원 측과 소장파의 핵심 관계자들이 경기도 모처 별장에서 회동을 갖고 오랜 ‘앙금’을 풀려는 시도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었다(<일요신문> 929호 참고).
이러한 분위기는 2월 4일 소장파 ‘수장’ 격인 정두언·남경필 의원이 지방선거 대책위원회의 컨트롤 타워에 오르면서 구체화됐다. 또한 이상득계와 소장파와의 ‘줄다리기’로 네 달가량 공석이던 국무총리실 정무실장 자리에 정두언 의원과 가까운 김유환 전 국가정보원 경기지부장이 오른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한나라당 안팎에서는 당시의 화해 무드를 두고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부정적인 견해가 우세했다.
지방선거 이후 이 의원과 ‘소장파+이재오계’의 불안한 ‘동거’는 끝이 났다. 선거 참패에 따른 책임 소재를 놓고 양측이 대립했다. 이 의원 측과 일부 청와대 참모들은 선거를 주도한 소장파 탓을 한 반면 ‘반 SD 연합군’은 청와대 때문이라며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내 범 친이계가 만든 ‘함께 내일로’ 소속 의원들은 선거 직후 여러 차례 만나 ‘전투’를 대비한 대책을 모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도권 지역의 한 초선 의원은 “6월 7일 소장파 및 이재오계 의원 여덟 명이 서울 서대문구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지방선거 패배가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큰 폭의 인사를 요구하기로 했는데 타깃은 이 의원 최측근인 박영준과 청와대 몇몇 참모들로 정했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6월 10일 청와대의 쇄신과 4대강 사업에 대한 여론 수렴 등이 담긴 ‘연판장’을 작성해 공개하는 등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동안 세 차례의 ‘전쟁’에서 패했던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형님’의 방어태세는 공고하기만 했다. 오히려 이 대통령과의 ‘핫라인’을 강화하며 청와대의 쇄신 작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이 의원 측은 당에서 요구하는 쇄신안에 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구색’을 갖추되 핵심 자리에 ‘SD 라인’을 기용해 ‘실속’을 챙기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소장파들이 쇄신 대상으로 삼았던 박영준 국무차장은 현재 청와대 입성 혹은 권태신 총리실장(장관급)의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이 의원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 보좌관은 “선거에 대한 책임을 청와대에 돌리며 연판장까지 돌렸던 친이계 의원들에 대해 이 대통령이 크게 실망했다. 안 될 줄 알면서도 세종시 수정안을 본회의에 부의한 것은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내부를 단속하기 위한 차원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반대로 집권 후반기 이 의원 역할은 더욱 부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재오 전 위원장의 은평을 출마에 이 의원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말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정무라인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위원장 출마는) 본인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VIP’ 의중이 담긴 것으로 봐야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승리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우리의 예측이었다. 친이계 의원 일부가 ‘이재오를 사지로 내모느냐’며 반발한 것도 사실”이라면서 “선거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그 파워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에 후반기 권력 구도에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의원 쪽으로서도 손해 볼 게 없는 구도이기 때문에 그런 소문이 도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 전 위원장이 재·보선을 통해 당에 들어올 경우 이 대통령이 이 전 위원장을 견제하기 위해 이 의원을 다시 전면에 내세울 것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리 ‘3연패’한 소장파와 이재오계도 이번엔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기세다. 이 전 위원장의 한 측근 인사는 “막다른 길 아니냐. 여기서 지면 끝이다. 2012년 총선 공천권을 위해서라도 양보할 수 없다”며 전의를 내비쳤다. 이와 관련, 최근 여의도를 중심으로 이 의원과 그의 측근이 관련된 구설들이 집중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어 관심을 끈다. 소장파와 이재오계의 반격이 거세질 것이란 전망과 맞물리면서 그 배경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것이다.
정가에선 얼마 전 우제창 민주당 의원이 정준양 포스코 회장에 대한 수사를 서울중앙지검에 의뢰한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 있다(<일요신문> 946호). 청와대 사정라인 및 소장파 의원들의 전언을 종합해보면 상황은 대략 이렇다. 이재오계와 가까운 청와대 민정팀의 한 인사가 ‘정준양 파일’을 소장파에 흘려줬고, 소장파 일각에서 그것을 다시 우 의원 측에게 건넸다는 것이다. 여기엔 지난해 1월 우 의원이 제기했던 “이 의원과 박영준 차장 등이 정 회장 선임에 개입했다”는 의혹과 함께, 이 의원 측근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포스코의 하청업체 특혜 등에 대한 내용도 담겨 있었다고 한다.
정가에서 소장파와 이재오계가 이 의원 측을 견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파일을 퍼트린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정가에는 이재오계와 소장파 등이 또 다른 ‘히든카드’들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우선 이 전 위원장이 권익위 시절 확보한 이른바 ‘권익위 리스트’가 이 의원 측을 향해 조준돼 있는 상태라는 것. 이 전 위원장 라인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이 리스트에 대해 “권익위가 고위 공직자들의 비위 사실을 기록한 문건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SD계’가 요직에 많이 배치돼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들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면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면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소장파가 여권 쇄신책을 명분으로 집중적으로 SD계 중 한 인물만 물고 늘어질 가능성도 크다는 게 여권 일각의 시각이다. 대선 캠프 시절부터 소장파와 ‘앙숙’이던 박영준 국무차장이 그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서울 지역의 한 소장파 의원 보좌관은 “율사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박 차장과 관련된) 자료들을 꾸준히 모아왔다. 어차피 함께 갈 수 없는 사람이다. 잡히는 게 있으면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권에서는 이재오계와 소장파가 지방선거 이후 이처럼 단일 대오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우선 선거를 이끌었던 소장파로서는 그나마 이 의원과 맞설 수 있는 ‘전투력’을 보유한 이 전 위원장을 내세워 ‘책임론’에서 벗어나고, 보다 강하게 쇄신을 요구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향후 당권 경쟁에서 든든한 조력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계산에 넣었을 듯하다. 이 전 위원장 역시 한동안 여의도에서 멀어져 있던 터라 컴백무대에서 제자리를 잡기 위해선 소장파 세력이 필요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나라당 일각에선 이 전 위원장이 자신의 측근 인사인 진수희·이군현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를 만류하며 소장파 지지를 부탁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윤정치연구소’의 윤호석 소장은 “이재오계나 소장파 모두 이 의원한테 밀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심정적으로도 통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 전 위원장은 재·보선, 소장파는 전당대회와 쇄신에 전력을 쏟고 있는데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 ‘윈-윈’이 될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왜 ‘확인 사살’ 하는 거야
이상득 의원은 친이계 중에서도 친박과 ‘말이 통하는’ 몇 안 되는 인사 중 한 명으로 꼽혀왔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과 2008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 이재오 전 위원장과 친박이 극한의 대립양상을 보였을 때 여러 차례 중재에 나선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의원이 박근혜 전 대표의 세종시 반대토론을 놓고 거친 불만을 쏟아낸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6월 29일 세종시 수정안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직접 연단에 나가 반대토론을 한 바 있다.
세종시 수정안에 ‘찬성’ 표를 던졌던 이 의원은 본회의 이후 의원회관으로 돌아와 박 전 대표를 강하게 성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좀처럼 화를 잘 내지 않는 이 의원이었기에 이를 지켜본 의원들은 다소 놀랐다는 후문이다. 이 의원의 한 측근은 “이 의원이 어차피 부결될 상황이었는데 박 전 대표가 무슨 염장 지르는 것도 아니고 연단에 나와 공개적으로 발언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취지로 말씀하셨다”면서 “이번 세종시 수정안 부결로 이 대통령이 곤경에 빠지게 됐다는 안타까움이 표출된 것 아니겠느냐”고 귀띔했다.
반면, 소장파와 이재오계는 조금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아쉽지만 부결된 마당에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정두언 의원은 본회의 다음날인 30일 “새로운 국가적 과제를 가지고 논쟁을 벌여야 한다. 세종시 수정안 추진 논란은 그만 접었으면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선 소장파와 이재오계가 전당대회 및 7·28 재보선을 앞두고 박 전 대표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대사를 앞두고 한나라당 최대주주 중 한 명이자 자타공인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박 전 대표와의 불필요한 마찰은 피하겠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