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선진국민정책연구원 주최 세미나에서 유선기 이사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
정치권에선 선진국민연대에 몸담았던 인사들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비선라인의 몸통을 이루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선진국민연대 ‘산파’ 역할을 했던 박영준 국무차장이 그 정점에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민간인 사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이인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과 그로부터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역시 선진국민연대 출신은 아니지만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어왔다고 한다. 이 대통령의 ‘노사모’로 불리며 대선 승리에 혁혁한 공을 세운 선진국민연대를 둘러싼 논란을 따라가 봤다.
“적어도 인사에서만큼은 난 장관이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 1기 내각에서 전직 장관을 지냈던 한 정치인은 ‘선진국민연대’ 얘기를 꺼내자 울분을 토했다. 철저한 ‘신분 보장’을 요구한 그는 “공무원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4·5급은 물론 국장급 인사까지 사사건건 간섭을 해왔다. 고위직일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인사는 거의 없었다. 그들이 청와대 쪽 사람들인 줄로만 알았는데 지금 언론 등에 나오는 것을 보니 모두 선진국민연대 출신이었다. 솔직히 지금도 이런 말을 하면 나중에 불이익이 올까 걱정 된다”고 털어놨다.
이 대통령이 졸업한 동지상고 출신 최원병 회장이 이끄는 농협중앙회에서도 얼마 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농협중앙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계열사 임원을 뽑아야 하는데 자꾸 위에서 거절됐다. 이미 내정자가 따로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선진국민연대의 아무개 인사가 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그 자리는 공석인 상태”라고 전했다. 지난해 초엔 한 금융지주사 인사에서도 구설이 있었다. 당초 명예퇴직을 하기로 돼있던 TK(대구·경북) 출신 임원을 계열사 사장으로 보내기 위해 선진국민연대가 집단적으로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해당 금융지주사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인사를 담당하는 행정관이 우리 사장을 만나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자 또 다른 실세가 직접 지주사 회장과 담판을 지었고, 결국 그 임원은 사장에 임명됐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선진국민연대가 현 정권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10월 박영준 국무차장과 김대식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이 주도해 만든 선진국민연대는 ‘1인당 3명씩, 500만 표 승리’라는 소위 ‘135 운동’을 전개하며 460만 명의 회원을 모았다.
박영준 국무차장과 김대식 전 사무처장은 ‘투캅스’로 불리며 선진국민연대를 이끌었다. 이 대통령은 사석에서 여러 차례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500만 표 차이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선진국민연대 때문”이라며 그 공로를 높게 평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통령은 대선 직후 당선 축하연에서도 “덕분에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됐다”며 고마움을 표시한 바 있다.
선진국민연대가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구성에서부터였다. 박영준(비서실 총괄팀장) 김대식(사회교육문화분과 인수위원) 구인호(정무분과 실무위원) 정인철(기획조정과 전문위원) 등 선진국민연대 출신들이 대거 인수위에 참여했던 것이다. 수도권 지역의 한 친이 의원은 “논공행상을 위한 고과 평가에서 그들이 가장 앞서 있었던 게 사실이다. 선진국민연대가 대선 승리에 큰 기여를 한 것은 맞지만 야당 시절부터 이 대통령을 도운 이들은 허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그나마 경선 캠프에서는 힘의 균형이 어느 정도 유지됐었는데 인수위에서는 완전히 선진국민연대 쪽으로 넘어갔다고 보면 된다. 견제가 전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수위 시절에도 일부 친이계 인사들이 이 대통령에게 선진국민연대 출신의 ‘월권행위’를 보고하기도 했지만 번번이 묵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 선진국민연대 핵심멤버였던 박영준 차장(왼쪽)과 정인철 비서관. 민주당은 이들이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공직 등 각종 인사에서 입김을 행사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선진국민연대의 정종환 충남대표는 국토해양부 장관을 맡아 4대강 사업이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았고 이영희 상임의장은 노동부 장관에 기용됐다. 김성이 전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선진국민연대 소속(중앙위원)이다. 박인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권영건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등도 대표적인 선진국민연대 출신으로 꼽힌다. 선진국민연대 장제원 교육문화위원장과 조진래 경남대표는 2008년 총선에 출마해 ‘금배지’를 달았고 권성동 전 법무비서관은 지난해 10월 강릉 재·보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선진국민연대의 약진은 공기업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지난해 2월 이 대통령은 선진국민연대 인사 250명을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행사 사회자가 “공기업 감사들은 너무 많기 때문에 사장급만 소개하겠다”라고 했을 정도다. 이를 두고 당시 한나라당 내에선 선진국민연대의 ‘오만’에 분통을 터뜨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엄홍우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김영수 안산도시개발공사 사장, 임동오 사학진흥재단 이사장, 표호길 전기안전공사 감사, 조영래 지역난방공사 감사 등이 공기업으로 진출했다. 이밖에 선진국민연대에서 시·도 본부 대표를 지냈거나 임원을 맡았던 이들 대부분이 ‘한 자리’씩 꿰찬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우리가 (공기업에 들어간 선진국민연대 출신) 전체 명단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조만간 공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통령 비호 아래 선진국민연대가 자행한 인사 독점을 낱낱이 파헤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듯 선진국민연대로의 권력 쏠림 현상이 심화되자 여권 내부에서도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결국 2008년 6월 박영준 비서관은 ‘권력 사유화’의 장본인으로 지목받으며 물러났고 이와 함께 상당수 선진국민연대 출신들이 옷을 벗어야만 했다.
또한 선진국민연대는 일부 인사들의 이권개입과 주가조작 등으로도 도마에 올랐다. 선진국민연대 공동대표를 맡았던 이강욱 씨는 2008년 11월 실버타운 인허가를 받아주겠다며 사업자로부터 20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같은 시기에 터진 노드시스템 주식 사기사건(<일요신문> 862호 참조)에도 몇몇 선진국민연대 인사들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3월 ‘청와대 성접대 파문’으로 물러난 행정관 역시 선진국민연대 소속이었다.
구설이 끊이지 않자 선진국민연대는 2008년 10월 ‘해체’를 선언했다. 그 뒤 소수의 전문 정책그룹으로 구성된 ‘선진국민정책연구원’과 대중조직인 ‘동행대한민국’으로 조직을 이등분 하는 한편, 인원도 대폭 줄였다. 물론 이러한 ‘리모델링’엔 박영준 국무차장이 깊숙이 관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여전하다는 평을 받아왔다. 박영준 국무차장이 지난해 1월 총리실로 화려하게 ‘컴백’했고, 핵심 멤버들이 청와대 국정원 총리실을 비롯한 국가기관과 금융권·공기업 등에 대거 포진해 있었기 때문. 최근 불거진 인사개입 논란 역시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박영준 국무차장, 정인철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 유선기 선진국민정책연구원 이사장 등이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공기업과 금융권 인사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 자리엔 선진국민연대 출신은 아니지만 박영준 국무차장과 가까운 이영호 비서관도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강남의 특급호텔과 여의도의 한 빌딩에서 열렸다는 이 모임에 대해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선진국민연대 출신들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만난 것으로 안다. 포스코 KT 대우조선해양 등 주요 공기업 CEO 인사는 물론 대기업과 금융권의 사외이사도 논의했던 것으로 파악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인철 비서관은 최근까지 공기업과 금융권 CEO들을 소집해 권력을 남용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고, 유선기 이사장에 대해서는 KB금융지주사 회장 인선에 압력을 행사한 의혹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선진국민연대 측은 사태를 주시하면서도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선진국민연대 출신 장제원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누군가 민주당을 통해 권력싸움을 하는 것 같다”며 분개했고, 권성동 의원도 “박영준 차장과 김대식 전당대회 후보가 잘 되는 것을 시기하는 여권 일부에서 확인도 안 된 소문들을 민주당에 흘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행대한민국의 한 관계자도 “일각에서 우리를 해체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미 2008년에 하지 않았나. 그리고 460만 회원 중 공직이나 금융권에 간 사람들은 극히 일부다. 박영준 차장을 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러다가 다 망한다. 민주당만 어부지리를 챙기고 있지 않느냐. 이 대통령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자중해야 할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다들 한자리씩 ‘떠억’
국민성공실천연합(국실연)은 선진국민연대와 함께 MB 정부 탄생에 가장 크게 일조한 외곽 조직으로 꼽힌다. 회원 수는 35만 명으로 선진국민연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3000여 명의 한나라당 대의원이 속해 있어 이 대통령의 당내 기반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선 캠프에서 유세총괄 부단장을 맡았던 박창달 전 의원(이명박 대통령의 포항중학교 4년 후배)이 국실연을 이끌었다.
‘MB 복심’으로 불리는 박 전 의원은 선거법 위반으로 지난 2005년 의원직을 상실했지만 현 정권에서 광복절특사로 사면됐다. 지난해 2월엔 보수 단체인 자유총연맹 회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신뢰가 워낙 두터워 개각이 있을 때마다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인물이다.
뉴라이트 계열 단체들도 이 대통령의 든든한 외곽 조직이었다. 2007년 8월 이 대통령 공개 지지를 선언했던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제성호 중앙대 교수는 현재 외교통상부 인권대사를 맡고 있다. 이석연 법제처장은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상임대표를 지냈다. 신지호 조전혁 박영아 한나라당 의원들 역시 뉴라이트 단체에서 이 대통령을 지원했고, 그 후 공천을 받았다. 뉴라이트 ‘대부’ 격인 김진홍 목사는 지금도 이 대통령과 허물없이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대통령의 외곽 자문그룹으로 알려진 서울경제포럼은 기업인들이 주축이 돼 만든 단체다. 강경호 전 코레일 사장이 공동대표를 맡았는데, 강 전 사장은 2009년 7월 이 대통령 친형인 이상은 씨와 처남 고 김재정 씨 등이 주요 주주로 있는 ‘다스’ 사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일요신문> 922호 참조). 이밖에 이 대통령 모교인 고대 교우회도 대선 승리에 일조를 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이 대통령은 당선 직후 열린 고대 교우회 행사에서 “여러분 덕”이라며 박수를 보낸 바 있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이 이 대통령과 가까운 고대 교우회의 주요 인사들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