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날’ 생각하니 발 빼기도 난감
사실 세종시 입주 계획을 밝혔던 국내 4개 대기업들은 수정안 부결을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고 한다. 정보 수집 능력이 뛰어난 삼성그룹 내부에서는 “국회에서 통과되기 힘들 것”이란 내용의 보고서가 경영진으로 올라갔다는 후문이다. 롯데가 ‘현금 부자’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1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한 것을 두고서도 ‘생색내기용’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파격적인 혜택을 입주 이유로 내세웠지만 아무래도 정부의 눈치를 본 것 아니겠느냐. 또 수정안이 부결될 것도 염두에 뒀을 것으로 본다. 어차피 안 될 거 점수나 따자고 판단했을 것이란 얘기”라고 말했다.
지난 6월 22월 국토해양위원회에서 수정안이 부결되자 몇몇 대기업은 입주 계획을 폐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린에너지 헬스케어 등 신사업을 담당하는 5개 계열사를 입주시킬 예정이었던 삼성은 “경제적 인센티브가 없는 마당에 굳이 세종시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며 대체 부지 모색에 들어갔던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와 한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종시에 강한 애착을 보였던 웅진은 상황을 지켜보자는 의견이 우세했지만 ‘백지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점점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웅진의 한 임원은 “몇몇 지자체들이 더 좋은 조건을 내걸며 접촉해오고 있다. 또한 청와대가 원안에 ‘플러스알파’가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세종시 입주가 오히려 현 정권 뜻과 배치되는 것인데 무리해서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기류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플러스알파를 놓고 정치권 공방이 거세지면서 대기업들이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내부적으로 ‘입주불가’ 방침을 정하고도 쉬쉬하고 있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되고 있다. 특히 ‘차기’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평가받는 박근혜 전 대표와 그의 측근들이 청와대와 대기업들의 투자 철회를 놓고 쓴소리를 가하고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비례대표 출신의 한 친박 의원은 “원안을 보완하면 대기업들이 수정안 못지않게 좋은 조건으로 들어올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이 취소 운운하는 것은 애초부터 입주할 의사가 없었다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일요신문>이 세종시에 입주하기로 했던 4개 기업 내부 인사들과 다각도로 접촉해본 결과 수정안 부결에 따른 향후 대응책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 정황이 역력했다.
롯데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우리가 현 정권에서 잘나간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박 전 대표가 집권할 것에 대비해 세종시 입주를 강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한화그룹 계열사의 한 임원 역시 “다음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한 박 전 대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정권이 바뀌어도 기업은 계속돼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적 이득을 떠나 쉽게 결론을 내리긴 힘들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앞서 언급한 전경련 관계자는 “투자는 첫째도 이윤, 둘째도 이윤을 따져야 한다. 특히 세종시와 같은 대규모 투자는 더욱 그렇다. 장기 포트폴리오를 세우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따라 대기업이 눈치를 보며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현실이다. 기업들의 독립을 더욱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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