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이상득 의원(앞)과 정두언 의원이 나란히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행사를 치렀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정치권에선 대통령 ‘형님’ 이상득 의원이 이번 파문을 막후에서 진화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청와대 및 여권 핵심 관계자들에 따르면 얼마 전 이 대통령이 비선 보고체계의 몸통으로 지목받고 있는 박영준 국무차장에게 ‘위로’를 건네면서 소장파들을 비난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여기에도 이 의원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말이 나온다. 정권 출범 후 끊임없이 충돌했던 소장파와 ‘SD라인’의 대결에서 이 대통령이 또 다시 ‘형님’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 의원의 ‘판정승’으로 결말이 날 가능성이 커진 여권 권력투쟁의 이면을 들춰봤다.
지난 2008년 6월 9일 밤. 박영준 국무차장(당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은 청와대 근처 한 음식점에서 지인들을 만나 대성통곡을 했다. 정두언 의원에 의해 ‘권력 사유화’의 장본인으로 거론돼 전격 경질된 직후였다. 당시 박 차장은 “대통령을 위해 일한 죄밖에 없는데 억울하다”면서 “정 의원 말을 인정해서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순순히 물러난다”고 말했다고 한다. ‘왕비서관’으로 불리며 청와대 내 최고 실세로 여겨지던 박 차장은 이렇게 해서 권력의 변방으로 잠시 비켜났다. 그러나 박 차장은 지난해 1월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차관급)으로 복귀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청와대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파워’가 업그레이드됐다는 평을 받으며 정부의 주요 현안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왔다.
인수위 시절부터 박 차장을 향해 ‘총구’를 들이댔던 소장파들은 2009년 6월 ‘타깃’을 바꿨다. 박 차장의 ‘주군’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통령 ‘형님’ 이상득 의원을 직접 겨냥했던 것이다. 정두언 의원 등이 포함된 소위 ‘7인의 사무라이’들은 이 의원을 비난하며 민심 이반에 대해 책임질 것을 종용했다. 결국 이 의원은 ‘2선 후퇴’를 선언했고 그 뒤 자원외교 및 지역구 관리에 집중하며 정중동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이 의원은 대선 승리에 큰 기여를 한 ‘원로그룹’의 일원으로서 이 대통령과 ‘핫라인’을 구축, 정국에 대해 수시로 조언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의원이 비록 전면에 나서진 않았지만 그 영향력만큼은 예전 못지않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가였다.
소장파들은 올 초 이상득계와 ‘일시 휴전’을 하기도 했다.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친박과 극한 대립 중이던 때라 친이계 단결이 요구되던 때였다. 그 대가였을까. 소장파 ‘수장’ 격인 정두언·남경필 의원은 지방선거의 컨트롤 타워를 맡으며 당의 중심에 섰다. 또한 양측의 ‘줄다리기’로 넉 달째 공석이던 국무총리실 정무실장 자리엔 정 의원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김유환 전 국가정보원 경기지부장이 임명됐다. 모처럼 소장파 내부에선 활기가 돌았다. 그러나 지방선거 참패로 분위기는 다시 바뀌었다. 선거를 지휘했던 소장파에 대한 ‘회의론’이 여권 핵심부 내에서 제기됐고 집권 후반기에 예정됐던 인적쇄신 작업은 이상득계 위주로 이뤄질 것이 유력하게 점쳐졌다. 소장파로선 간신히 잡은 ‘찬스’를 날릴 가능성이 커진 것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이 불거졌다. 영포회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이 대통령 대선 외곽조직이었던 선진국민연대 출신 일부 인물들의 인사 전횡 문제가 제기됐다(<일요신문> 948호 참고). 민주당은 비선라인의 ‘몸통’으로 박영준 차장과 이상득 의원을 거론하고 나섰다. 소장파도 ‘협공’에 나섰다. 정두언 의원은 박 차장 실명을 언급하며 국정농단의 당사자로 지목했다. 또한 박 차장 측근들을 향해서도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이에 대해 소장파의 한 재선 의원은 “박 차장이 청와대를 떠난 이후에도 힘을 잃지 않았던 것은 자신과 가까운 정인철 전 기획관리비서관을 후임에 앉혔기 때문이다. 또한 ‘비선 보고’에 가담한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 역시 박 차장 사람으로 분류되고 있다. 따라서 우선 박 차장 수족부터 잘라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 박영준 국무차장. |
이처럼 연일 계속되는 민주당과 소장파의 공격에 박 차장의 거취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한때 여권 내에선 해임될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지만 박 차장이 “사실무근”이라고 반발하면서 수그러들었다.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던 박 차장은 자신과 관련된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 전병헌 정책위의장을 고소하는 등 적극적인 방어에 나섰다. 지난 2008년 6월 조용하게 물러나던 때와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이를 놓고 정치권에선 박 차장의 ‘위기감’이 반영됐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MB 대선캠프 출신의 한 고위관료는 “지금 나가면 재기가 힘들 수 있다. 더군다나 그를 도와준 측근들이 줄줄이 그만두지 않았느냐.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급박함에서 버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권 핵심 인사들의 얘기는 조금 다르다. 박 차장이 뭔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강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차장과 평소 가깝게 지내는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얼마 전 (박 차장이) 이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 대통령이 박 차장에게 힘을 내라고 하면서 일부 소장파 의원들을 비난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끝까지 함께 가자는 말을 했다면서 밝은 표정을 지었다”고 전했다.
앞서의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 역시 “이 대통령은 이번 문제를 여권 내 주도권 싸움의 일환이라고 본다. 권력 암투에서 진 소장파가 박 차장을 내치기 위해 일으킨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제가 된 비선라인은 어쩔 수 없이 교체할 수밖에 없겠지만 박 차장에 대한 신뢰는 줄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특히 여권 인사가 민주당에 자료를 넘긴 것에 대해선 대로했던 것으로 안다. 이번에도 소장파를 향해 ‘정치를 잘못 배웠다’는 지적을 했다”고 털어놨다.
이 대통령은 참모들에게도 박 차장 편으로 기운 듯한 뉘앙스를 여러 차례 내비쳤다고 한다. 정권에 부담을 줄 수 있어 지금은 박 차장을 자진사퇴시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긴 했지만 그의 능력을 아끼고 있어 임기 막바지에 다시 청와대로 부를 것이란 취지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설사 박 차장이 이번 사태의 수습을 위해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더라도 이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상득 의원 역시 박 차장에게 힘을 실어줬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의원은 영포게이트와 선진국민연대 논란이 한창 뜨겁던 지난 7월 6일부터 13일까지 리비아를 방문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과 몇몇 언론은 이 의원이 ‘피신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해외에 체류하는 동안에도 몇몇 친이 인사들과 연락을 취하며 사태를 계속 주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박 차장이 수세에 몰리자 ‘구명’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한다. 지난 7월 13일 귀국한 뒤엔 기자들과 만나 “(영포게이트 배후에 이 의원이 있다는) 말을 한 사람들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면서 “영포회가 무슨 범죄 집단처럼 취급받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선에서 물러난 후 정치적 발언을 자제해온 이 의원이었기에 이날의 발언은 많은 화제를 모았다.
한나라당 내에선 이 의원이 이례적으로 강경한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여권 핵심부의 뜻이 담겨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치권에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대응’을 고수할 경우 논란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이 의원 측이 판단했다는 것이다. 친이계의 한 수도권 초선 의원은 “이 의원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최근에 이인규 전 지원관이 검찰 수사를, 정인철 전 비서관은 청와대 감찰을 받고 있는데 아무래도 조사를 맡은 직원들이 이 의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 정권에서 검찰이나 청와대 인사가 아직 몇 번 더 남아 있지 않느냐”면서 “이 의원의 ‘정치적 양아들’로 불리는 임태희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비서실장에 내정된 것도 이 의원 힘을 재확인시켜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