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서울 연신내역 4거리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재보선 출정식을 가졌다. 왼쪽부터 박지원 원내대표, 김민석 최고위원, 정세균 대표, 장상 후보, 정동영 상임고문.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4선 의원에 최근까지 국회 부의장을 지낸 민주당 내 대표적인 중진의원인 문 의원이 왜 이런 ‘심통’을 부렸을까. 소탈하기로 유명한 그의 스타일상 자신에 대한 예우에 불만을 품었을 것 같지는 않다. ‘조조’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오랜 정치 경험과 경륜을 갖춘 그조차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이번 전대준비위원장 앞에 놓인 과제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그 과제는 바로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게임의 규칙(룰)’을 정하는 일이다.
게임의 룰을 정하는 일이 어려운 이유는 당권을 노리는 주자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룰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새 민주당 지도부의 면면이 달라질 수 있다. 이번 전대준비위원회가 정리해야 할 주요 쟁점으로는 △지도체제 및 대표-최고위원 선출 방식 △선거인단 구성 △당권-대권 분리 등이 있다. 정세균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권파와 정동영, 천정배 의원 등을 중심으로 한 비당권파 모임 ‘미래희망쇄신연대’가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는 문제들이다.
특히 ‘지도체제와 대표-최고위원 선출 방식’은 가장 첨예하게 이해가 엇갈리는 쟁점이다. 당권파는 대표 1명과 최고위원 5명을 분리해 뽑고 대표의 막강한 권한을 인정하는 현행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선호한다. ‘정부·여당 견제’라는 야당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수적이라는 논리다.
반면 쇄신연대와 박지원 원내대표 등은 대표의 강력한 권한은 유지하더라도 최소한 선출방식 면에선 대표와 최고위원을 동시에 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 원내대표는 이미 수차례에 걸쳐 “2등이 당 운영에서 배제되다 보니 당권을 쥔 주류는 독선에 빠지고 당권에서 소외된 비주류는 불만을 품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박 원내대표는 또 대표와 최고위원을 동시에 선출해야 비로소 이번 전대가 당내 주요 잠룡들이 총출전하는 ‘빅 매치’가 될 수 있다고도 말한다.
양측의 논리 싸움과 별개로 대표-최고위원 선출 방식 변경 여부는 당권주자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된다. 대표와 최고위원을 동시에 뽑게 될 경우 중진 그룹에겐 유리하겠지만 486(19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40대) 그룹에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정세균 대표와 손학규 전 대표뿐 아니라 정동영, 천정배, 박주선, 추미애 의원 등 당권 도전이 유력시되는 중진들이 상위 순위를 나눠먹게 되면서 최재성, 백원우 의원과 임종석, 김민석, 정봉주 전 의원 등 486 소장 그룹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사라지는 것이다.
대표-최고위원을 동시에 선출하게 된다면 1인2표제가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호남에서 강세를 보이는 박주선 의원, 친노(친노무현) 그룹의 백원우 의원, 영남의 거의 유일한 주자인 조경태 의원 등 ‘확실한 표’를 가진 주자들의 몸값이 올라갈 수도 있다.
이와 달리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해서 뽑는다면 최소한 ‘빅 3’로 불리는 정·정·손(정세균·정동영·손학규)과 천정배, 박주선 의원은 대표 경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 모두에겐 만약 떨어질 경우 지도부 입성이 불가능한 ‘올 오어 나싱’(all or nothing)의 살 떨리는 게임이 되는 셈이다. 반면 강자들이 대표 경선으로 몰리면서 486 그룹 등 군소후보들은 상대적으로 손쉽게 지도부에 입성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대표-최고위원을 분리해 뽑더라도 또 하나의 쟁점은 남는다. 대표 경선에서 결선투표를 실시할지다. 당권파인 정세균 대표와 비당권파 주자가 결선투표에서 만날 경우 당내 역학구도상 비당권파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지도부 선출 방식 못지않게 민감한 쟁점은 ‘선거인단 구성’ 방식이다. 쇄신연대는 “현재의 대의원은 정세균 대표 등 당권파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구성돼 있다”며 전당원투표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비당권파 일각에서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경선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면 최재성 의원 등 당권파는 “당 지도부를 ‘오픈 프라이머리’ 방식으로 뽑는 정당이 어디 있느냐“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전당원투표제에 그치든, 여론조사 경선을 추가로 도입하든 이는 모두 일반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손학규 전 대표와 정동영 의원에겐 유리한 반면 정세균 대표와 천정배, 박주선 의원 등에겐 결코 유리할 게 없는 방식이다.
‘당권-대권 분리’도 원칙적으로 당내에 반대 의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민감한 쟁점으로 부각돼 있다. 오는 2012년 12월 대통령선거에 도전할 사람이 그 해 4월 있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공천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는 데 당내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이를 담보할 방법론을 놓고는 이견이 있는 것이다. 현재로선 논란을 최소화하려면 새 지도부 임기를 현재의 2년에서 일정 정도 단축하거나, 대권 주자들의 조기 당직 사퇴 규정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첨예한 쟁점들이 워낙 많다 보니 민주당 내에선 ‘8월 전대 무산’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게임의 룰을 정하고 실무적인 준비를 하기엔 남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의원 선출에만 한 달이 걸린다는 얘기도 들린다.
설상가상으로 당권파와 비당권파는 위원장을 포함해 25명으로 돼 있는 전대준비위원회 인선에서부터 대립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표결을 해야 할 경우 자파 인사가 수적으로 밀리면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쇄신연대 측은 “공정한 경선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전대 보이콧’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본게임에 들어가기도 전에 민주당 당권파와 비당권파 간의 피 터지는 전투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