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평 을 이재오 한나라당 후보가 15일 은평구 대조교회에서 지역주민들을 위해 식사봉사를 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
6·2 지방선거가 끝난 지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아 치러지는 선거이지만 여야 선거대책위 모두 ‘민심의 흐름을 감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힘 있는 지역 일꾼론’을 내세워 지방선거 패배를 만회하겠다는 각오지만 지방선거를 통해 드러난 여론과 실제 표심과의 차이가 이번에도 재연되진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6·2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에도 ‘정권심판론’을 주요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이 전략이 지방선거에서만큼 주효할지 우려하고 있다. 과연 이번 재보선을 통해 민심은 여야에게 어떤 심판을 내리게 될까.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7·28 재보선의 막판 판세 점검과 관전 포인트를 총점검해 보았다.
◇ 서울 은평 을
이번 7·28 재보선은 영남권을 제외한 전국 8곳에서 열려 ‘미니총선’으로 불린다. 그중에서도 서울 은평 을은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출마한 곳이어서 선거 결과에 가장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다. 유력인사를 영입하려던 민주당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이번 선거가 ‘다자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져 야권의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민주당에선 신경민 전 MBC 앵커의 영입이 불발된 후 장상 최고위원이 공천을 받았지만 장상 최고위원의 당선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부정적 전망이 높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정세균 대표 등 당 지도부와 정동영 의원, 손학규 전 대표 등 당 유력인사들이 총력 지원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싸움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야권의 후보단일화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일부 은평 을 주민들은 얼마 전 야권의 후보단일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야권의 후보단일화가 성사될 경우에도 이재오 전 위원장과의 대결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6일 폴리뉴스가 여론조사기관 한백리서치에 의뢰해 은평 을 거주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야권이 후보단일화를 이룬다고 해도 이 전 위원장이 승리를 거둘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가상 양자대결에서 이재오 전 위원장 대 장상 최고위원의 경우 55.6% 대 32.5%였고, 이재오 전 위원장 대 천호선 최고위원의 경우엔 56.3%vs28.2%였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민주당 장상 후보와 국민참여당 천호선 후보 모두 이재오 전 위원장에 비해 대중성과 인지도가 떨어지는 후보들이다. 또한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이재오 전 위원장에 대한 지지 결집력이 높은 반면,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장상 최고위원에 대한 지지도 결집력이 매우 낮다. 선거 막판 극적인 후보단일화가 성공된다고 하더라도 그 효과가 기대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 은평 을 장상 민주당 후보가 15일 오전 은평구 연신내 시장을 시작으로 거리유세를 나섰다. 박은숙 기자 |
인천 계양 을은 송영길 인천시장이 지난 6·2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했던 곳인 만큼 민주당의 우세가 예견되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의 후보 공천 과정에서 빚어진 잡음으로 지역민들의 비판을 받고 있어 이러한 민심이 선거 결과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가 관건이다.
민주당은 김희갑 전 국무총리실 정무수석이 공천을 받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세균 대표와 송영길 인천시장의 세 대결로 인해 마찰이 불거졌다. 애초 정 대표와 송 시장은 각자 다른 후보를 내세우며 공천권을 두고 경쟁하다가 결국 중립적인 후보인 김희갑 후보를 공천하는 것으로 타협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김 후보가 인천과는 인연이 별로 없는 인물이어서 양측의 공천권 다툼 끝에 결국 지역민을 고려하지 않은 공천이 이뤄진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는 것.
반면 한나라당은 지난 17대와 18대 총선에 출마하며 지역 기반을 튼실하게 다져온 이상권 전 인천지검 부장검사를 공천해 ‘인물대결’에서 김희갑 민주당 후보에게 한발 앞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씁쓸한 점은 민주당의 ‘공천권 다툼 끝의 후보 공천’이 지난해 4·29 재보선 당시 인천 부평 을에서 벌어졌던 한나라당의 후보 공천 과정과 흡사하다는 사실이다. 당시 한나라당은 내부에서 공천권을 두고 갈등을 벌이다가 인천과는 인연이 없는 이재훈 지식경제부 차관을 공천했고 결국 민주당 홍영표 후보에게 지고 말았다. 당시 홍 후보는 선거 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10%p 이상 뒤지고 있다가 선거 당일 ‘역전’하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안이한 태도로 지역 민심을 무시한 공천을 한 결과였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고 반면 민주당 홍 후보는 꾸준히 지역기반을 닦아온 끝에 값진 승리를 일궈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와 비슷한 양상이 이번 인천 계양 을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어 과연 이번 선거에서는 인천 민심이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고 있다.
◇ 충청권
충청권에서는 충북 충주와 충남 천안 을 두 지역에서 재보선이 치러지게 된다. 이중 충북 충주는 한나라당이 서울 은평 을 외에 이길 수 있는 두 번째 지역구로 꼽고 있는 곳.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윤진식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민주당 정기영 전 시당위원장이 치열한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여론조사로는 윤진식 후보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지난 13일 충주MBC, KBS충주, 청주방송 등 충북지역 방송 3사가 공동으로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진식 후보는 38.7%로 1위를 기록했고, 민주당 정기영 후보가 19.8%, 무소속 맹정섭 후보가 13.2%를 얻었다.
윤진식 후보 선거 캠프 관계자는 “윤진식 후보는 정치적 이슈와는 거리를 두고 철저하게 정책·공약 선거를 펼치겠다는 계획이고 다른 지역에 비해 다소 낙후된 충주 지역을 발전시키겠다는 지역발전론을 내세우고 있다. 현지에서 느끼는 민심도 우리에게 유리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종시 원안사수 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한 민주당 정기영 후보 측에서는 이에 맞서 ‘세종시 이슈’를 재보선에서도 최대한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충청권에서의 세종시 이슈가 더 이상 ‘뜨거운 감자’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이미 국회 표결로 세종시법이 처리된 만큼 지난 지방선거 때처럼 세종시 문제에 충청민심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충남 천안 을의 경우 한나라당 김호연 전 빙그레 회장, 민주당 박완주 지역위원장, 자유선진당 박중현 비뇨기과 원장 등 3자 구도가 될 전망이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동생이기도 한 한나라당 김호연 후보는 천안이 한화와 빙그레의 연고지여서 표심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은 세종시 문제 등 ‘정권 심판론’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이곳은 자유선진당 박상돈 전 의원의 지역구였던 데다가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안희정 전 최고위원이 충남지사로 당선된 바 있어 야권의 두 당 모두 선전을 기대하고 있는 상황.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세종시 이슈가 민심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방선거 때보다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지역발전론을 내세우는 한나라당에 대해 민주당이 세종시 문제만 부각할 경우 민심의 호응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충청권 재보선을 통해 ‘세종시 민심’이 어떻게 귀결될지 선거 결과에 더 관심이 쏠리고 있다.
◇ 강원권
강원지역은 원주, 철원·화천·양구·인제, 태백·영월·평창·정선 등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3곳의 지역구에서 재보선이 치러진다. 강원지역의 이번 재보선 최대 화두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광재 강원지사에 대해 민심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다. 이광재 지사가 대표적 친노 인사인 만큼, 지난 지방선거에 이어 강원지역의 재보선에서는 ‘친노 대 반노’의 선거 구도가 재연될 가능성도 크다는 전망이다.
민주당의 한 선거 전략가는 “이광재 지사의 직무 정지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여론이 많다. 이번 재보선에서 강원권은 정권심판론 정서가 재연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우선 이광재 지사의 지역구였던 태백·영월·평창·정선 지역에서는 한나라당의 염동열 전 석탄공사 감사와 민주당 최종원 전 연극협회 이사장의 양자 구도가 벌어질 전망이다. 7월 중순 현재까지의 판세로는 최종원 후보의 우세가 점쳐지는 상황. 철원·화천·양구·인제의 경우 한나라당에서 한기호 전 육군 5군단장과 민주당에서는 친노계 인물인 정만호 전 청와대 비서관이 나서 이 지역에서도 이광재 지사의 직무정지에 대한 민심의 판단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강원 원주에서는 한나라당 이인섭 전 강원도의원과 민주당 박우순 변호사가 맞붙는다. 민주당은 지방선거 당시 원주시장 선거에서 승리했던 분위기를 이어가겠다는 계획이지만 한나라당은 재보선 지역 중 유일한 한나라당 지역구였던 원주를 뺏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나라당 소속으로 3선을 했던 함종한 전 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표가 분산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함종한 후보의 경우 인지도가 가장 높아 함 후보의 득표율이 원주 재보선의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보수성향 표의 분산으로 민주당 후보에게 유리한 구도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크다”고 설명했다.
◇ 광주 남구
광주 남구는 민주당의 전통적 텃밭 지역이라는 점에서 이번 재보선에서 큰 관심 지역이 아니었다. 민주당 내에서의 공천권 다툼이 이번에도 ‘지루한’ 관심을 끌어왔던 상황. 하지만 민주당이 야4당과 시민사회의 야권단일화 제안을 거부하면서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 야4당이 오병윤 민주노동당 후보를 단일 후보로 선출한 뒤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후보를 내지 않으면서 광주 남구는 민주당 후보인 장병완 전 기획예산처 장관과 야4당 단일후보의 대결로 압축된 상황. 오병윤 민주노동당 후보 측은 이명박 정부 심판론과 함께 민주당의 각성을 요구하며 선거전을 펼치고 있다.
광주 지역에서 민주당을 제외한 기타 야권의 단일 후보가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가 애초의 관전 포인트.
일각에서는 지난 지방선거 때 이명박 정부를 향해 보였던 민심의 반란처럼 이번 광주 선거에서 민심 이반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의 선거전문가는 “민주당은 더 이상 호남을 민주당의 텃밭으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역색은 옅어져 가고 있는데 정치권에서만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완주 한다더니…누가 발 걸었나?
은평 을 선거의 ‘막판 변수’로 거론됐던 미래연합의 정인봉 후보가 돌연 출마를 포기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친박계인 정 전 후보는 “이재오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나섰다”면서 끝까지 선거 완주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던 터다. 그런데 후보 등록을 앞두고 갑작스레 출마를 포기해 미래연합 내에서도 그 배경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상황.
미래연합 측 관계자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당에서도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출마를 포기해 당황스럽다. 당에도 출마 포기 의사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 전 후보가 돌연 출마를 포기하자 일각에서는 한나라당과 이재오 후보 측으로부터 ‘모종의 압력’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재오 후보 측은 정 전 후보의 출마로 한나라당 지지층과 보수 지지층이 분산될 것을 우려해왔던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정 전 후보 측은 “어차피 이재오 후보는 당선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재오 후보가 낙선하면 나 때문에 안됐다고 뒤집어씌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런 누명을 쓰기 싫어 사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이유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아 한나라당과의 ‘물밑 접촉’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퇴한 정인봉 전 후보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 5~6%의 지지도를 기록했던 상황이어서 이 지지층이 어느 후보에게로 쏠릴 것인지가 은평 을 선거의 또 하나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