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원희룡 사무총장 카드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사실 사무총장 자리는 포항 출신 친이 직계인 이병석 의원이 몇 달 전부터 ‘찜’해놓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인규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여권 주류 전체로 불길이 번지는 상황이 전개됐다. 이에 주류가 일단 소장파와의 확전을 피하기 위해 ‘원희룡 카드’를 뽑아들었다는 게 당 일각의 시각이다. 소장파 출신을 기용해 소장파의 공세를 막는, 일종의 ‘이이제이’였던 셈이다.
이런 시각의 뒤에는 원 총장이 이상득 의원의 ‘낙점’으로 기용됐다는 설이 자리 잡고 있다. ‘양아들’ 원 총장으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큰형님’ 이 의원의 원려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실제 여권 일부에서는 “임태희 실장은 (이상득 의원의) 아바타, 원희룡 총장은 양아들”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7월 22일 원 총장에게 이 부분부터 직접 물었다.
―언제 누구로부터 총장 내정을 통보받았나.
▲사무총장 자리 논란이 피크에 이르렀던 지난 7월 19일 낮에 안상수 대표로부터 직접 내정을 통보받았다.
―일각에서는 이상득 의원의 ‘양아들’이기 때문에 총장 자리에 중용됐다는 말도 나온다.
▲하하하(큰 웃음). 그건 다른 분에 대한 얘기인 것 같다. 그 정도 불리는 분은 노동부 장관이었다가 청와대로 들어간 임태희 대통령실장 정도 아니겠느냐. 난 (양아들이) 전혀 아니다.
―이상득 의원과의 친분이 꽤 오래됐고 깊은 편인데.
▲옛날 미래연대 고문 때부터(2000년경) 알게 됐다. 그 분 성품이 온화하지 않느냐. 적을 안 만드는 스타일이다. 그런 면에서 당의 어른으로서 예우하는 것이다. 이는 강재섭 전 대표나 김덕룡 전 의원처럼 당 원로를 예우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것이 정치적 주종관계는 전혀 아니다.
―2012년 총선 공천 때까지가 사무총장 임기인데.
▲(이 어려운 때에) 총장에 무슨 임기가 있나. 그때까지 가게 될지 어떻게 아나. 무사히 마치도록 잘 해야지.
사실 ‘원희룡’의 브랜드는 그동안 ‘모범생’에 머물러 왔다. 전국학력고사 1등에 서울법대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에게 붙어 다닌 ‘범생’ 꼬리표는 정치바닥에선 그리 경쟁력이 없었다. 그는 지난해 초 쇄신특위 위원장직을 맡았지만 ‘우유부단하고 성과 없는 일 처리’로 호평을 받지 못했다. 올해 서울시장 경선에서는 본선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복병’ 나경원 의원에게 예선탈락하며 스타일을 구겼다. 일부에서는 ‘원희룡, 끝난 것 아닌가’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2기 집권여당의 사무총장 자리로, 그는 화려하게 컴백했다. 실패를 거듭했던 그였던 만큼, 사무총장직에 대한 각오와 집념은 대단했다.
―지난해 4월 쇄신특위 위원장 맡았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그때의 쇄신특위는 계파 간의 요구를 모두 수용해야 하는 기구라, 사실상 완전한 의사 일치의 합의를 봐야 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사무총장 자리는 집행권한이 있기 때문에 소통과 합의를 통해서 동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이 있다. 또한 쇄신특위와 달리 반드시 만장일치가 안 되더라도 총장의 권한으로 일을 추진할 수 있다. 쇄신특위와 달리 도전을 감행할 수 있는 적극적인 환경이 마련된 것 같다.
―당내에서 극단적 대립이 있을 때 해결 방안으로 과감한 결정을 해야 할 때도 있는데, 평소 유약한 이미지 때문에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사무총장은 의견을 조정하는 자리가 아니다. 우리가 해야 될 일과 목표점이 분명히 있으면 집행권한과 당내 여러 기구나 전략가들을 최대한 활용, 결과를 만들어내는 자리이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 같은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확실하게 추진, 당내에서 현실로 받아들이게 하고 그런 과정에서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특히 사무처 직원들의 역량이 중요한데 그들이 얼마나 동기부여를 받고 일하느냐는 총장의 지휘역량에 달려 있다. 정치인으로서 돌파력이 부족하다는 부분은 언제나 부딪힐 정무적 문제다. 반면 총장은 조직을 지휘하고 총괄하는 면도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책임이 무겁다고 생각한다. 지금 총장이 제대로 일을 하려면 그런 강단과 일을 만드는 포스를 뿜어내야 한다. 그게 없으면 일이 안 된다.
―당내 최대 현안 가운데 친이-친박 갈등 해소가 있다. 구체적 해결 복안을 가지고 있나.
▲신뢰의 물꼬가 트고 믿음이 두텁게 쌓일 수 있도록 특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화합의 구체적 방안을 지금 찾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에게 ‘당 현안에 대해 적극 개입해 달라’는 주문을 할 생각인지.
▲지금 하기에는 섣부른 감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동이 준비되고 있으니까 그것을 계기로 해서 후속 과정에서 좀 더 구체적인 화합방안이 진전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자문을 많이 받겠다. 이때 주류들이 일방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박 전 대표를 따르는 분들에게 자문을 많이 구해서 신중하게 준비를 하겠다.
―이명박-박근혜 회동이 일정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나.
▲기대를 하는 부분은 많다. 대신 과거처럼 준비는 안 되어 있는 상황에서 기대만 키웠다가 결과가 신통치 않아 서로 불편해지는 전철을 다시 밟지 않게 할 것이다.
―사무총장으로서 각오를 밝힌다면.
▲책임 있는 자리에 올랐으니 ‘소통을 통해서 변화를 시킨다’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 특히 그 변화에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하려고 한다.
원희룡 사무총장은 원조 소장파 의원이다. 하지만 이번에 주류의 총장직 제의를 수용하고 그쪽 배를 탔다. 소장파에선 당연히 ‘배신자’ 소리도 나온다. “지금 주류와 싸우고 있는데 양아들로 들어가 봤자 나중에 빚만 지고 나올 것”이라며 그의 ‘영전’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엄존한다. 그렇지만 원 총장은 인터뷰 내내 ‘책임’을 강조하며 양측 갈등의 ‘중개자’가 될 것임을 밝혔다.
그리고 남경필 의원 사찰건과 관련, 안상수 대표는 “재보선을 며칠 앞두고 더 이상 논란이 커져선 안 된다”며 경고를 했지만, 그는 “만약 (사찰이) 있다면 문책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안 대표와 온도차를 보였다.
이를 두고 그의 지원군들은 “원희룡 사무총장이 소장파의 트로이 목마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동안의 그의 행보를 보면 조직 속에 묻혀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주류의 아바타 역할에 머물 것”이라는 주위의 부정적인 허들을 먼저 뛰어넘는 게 숙제로 남아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