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KBS 다큐멘터리 3일
지하철 4호선 안산역에 내리면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외국어로 쓰인 간판과 각국의 국기가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 뒤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대화 소리 또한 생경한 언어다.
100여 개 국가, 8만여 명의 외국인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 경기 안산시. 특히 안산 단원구 원곡동에 위치한 다문화 특구는 휴일이면 전국에서 찾아오는 외국인들로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다.
베트남, 네팔,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등 다른 곳에선 접하기 힘든 국가의 음식들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다문화 음식 거리’라 부르기도 한다. 다문화 특구에는 다양한 맛만큼이나 다채로운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1990년대 시화·반월공단이 들어서며 많은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안산시에 정착했다. 이후 안산은 대표 다문화 도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삽시간에 한 지역에 모여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안산은 글로벌 도시라는 영예 뒤로 우범지대라는 불온한 시선을 받기도 했다.
과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안산은 어떤 모습일까. 거리 초입의 한 가게에서는 어색한 억양의 ‘누나’ 소리가 들린다. 신발을 사러 왔다는 방글라데시 청년이 신발가게 사장님을 부른 것이다. 능청스러운 청년의 부름에 사장님은 ‘신발 싸게 파는 예쁜 누나’가 되어 값을 에누리해주고 만다.
한 인도네시아 식료품점 안에는 기도실이 마련되어 있다. 3년간 인도네시아어를 배웠다는 사장님은 급기야 무슬림 손님들을 위해 가게 한쪽을 비워 기도실을 만들었다. 따뜻한 인도네시아 인사 한마디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기도실로 손님들을 응원하는 사장님. 가게는 전국 각지에서 온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진심이 최고의 영업비결인 셈이다.
서로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 급선무였던 지난날. 진부하지만 마음의 벽을 허물고 서로 배려하려는 노력이 가장 훌륭한 해결책이었다.
최근 이곳의 밤은 코로나19 전보다 훨씬 조용해졌다. 집단 감염을 우려한 공단 근로자들이 발길을 줄여서다. 그렇지만 밤의 불을 밝히는 이들이 있다. 경찰과 함께 밤거리를 순찰하는 원곡동 외국인 자율방범대다.
경찰과 방범대원들은 매일같이 하는 순찰에 즐겁게 임한다. 이들에게 원곡동은 살아가는 공간이자 지켜야 할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곳을 찾은 손님들이 편견을 조금이나마 씻어내고 기분 좋게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파키스탄 출신 알리 씨는 “원곡동에 오면 100% 고향이 생각나죠. 우리나라 음식 먹으면 우리나라 생각나요”라고 말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바다 건너온 외국인들이지만 불현듯 찾아오는 고향에 대한 향수는 어쩔 수 없다. 그럴 때면 한 그릇의 고향 음식으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한주의 고됨도 털어 낸다.
200여 개의 식당이 밀집된 안산 다문화특구. 무엇보다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오리지널 본토의 맛을 내는 현지 초청요리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다른 지역에 비해 현지 요리사를 쉽게 초청할 수 있어 각국에서 온 요리사들이 주방을 지킨다. 이들이 선보이는 음식은 굶주린 배는 물론이고 마음까지 채워준다.
누군가에겐 추억 그 자체지만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낯선 원곡동의 식탁, 익숙하기에 소중하고 생소하기에 귀한 한 끼. 모두 함께 나눠 먹는 순간 다문화 특구가 그 진가를 드러낸다.
추운 날씨와 코로나19의 여파에도 원곡동의 활기는 꺼지지 않는다. 바로 꿈과 사랑을 간직한 이들 덕이다.
할랄 식품을 취급하는 한 식료품점. 누르 아하마드(방글라데시 출신), 황성희(한국 출신) 부부가 외국인 기숙사로 배달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택배로 보낼 수도 있지만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근로자들의 민원을 해결할 겸 누르 씨가 직접 배달을 다닌다.
누르 씨에게도 혼자 이겨내야 했던 한국에서의 처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누르 씨의 곁을 지킨 건 아내 황성희 씨. 누르 씨가 쉽지만은 않은 타향살이를 후회하지 않는 것은 사랑하는 아내 덕이다.
20여 년 전 황성희 씨가 주변의 불편한 시선을 견딘 것도 오직 사랑 때문이다. 국경을 넘은 사랑은 지금도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편 전염병에 막힌 사랑에 애끓는 이도 있었다. 고향에 아내와 세 살배기 아이를 두고 온 라나 따히르 씨다. 코로나19로 오갈 수 없는 현실이 가장 안타까운 순간이다. 아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서도 보고 싶다고 말하는 그. 라나 따히르 씨는 가족들과 함께할 내일을 꿈꾸며 오늘을 힘차게 살아간다.
안산 다문화특구에서 때로는 맵고 쌉싸름한 하루 속에서도 달콤한 미래를 그려나가는 사람들을 만나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