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유로파리그 유벤투스전에서 아약스 석현준이 유벤투스 골키퍼와 골다툼을 벌이고 있다. 오른쪽은 함부르크 손흥민. 로이터/뉴시스 AP/연합뉴스 |
“한한국에서 190㎝ 큰 키에 기술력까지 갖춘 스트라이커는 최순호 감독님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아요.”
한양여대 김상진 코치는 대동초등학교에서 공을 차던 석현준의 잠재력을 한눈에 알아봤다. 당시 또래에 비해 키가 그리 큰 편은 아니었지만 신체 밸런스가 좋아 성장 가능성이 보였다고. 석현준을 백암중학교로 스카우트해 온 김 코치는 3년간 그의 성장을 지켜보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중학교 때 슈팅 능력이 이미 성인 수준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거리에서 주저 없이 슈팅을 때리니 상대팀이 어쩔 줄 몰라 하더라. 긴 다리와 큰 발에서 나오는 파워가 엄청났다.”
김 코치가 더욱 놀랐던 건 그의 성실함 때문이었다. 중학교 때 급속도로 키가 자라 몸에 힘이 떨어지자 본인 스스로 계획을 세워 악착같이 근력운동을 했단다. 그의 성실함은 중3 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큰 키에 파워까지 갖춘 멀티 플레이어로 급성장한 것. 석현준이 신갈고로 전학을 가기까지 백암고 서영석 감독이 그를 지도했다. 서 감독은 석현준을 ‘자기 관리가 철저한 선수’로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선수들과 식사하는 방식조차 달랐다. 몸을 만들기 위해 식판을 세 번씩 바꿔가며 먹곤 했다. 현준이가 190㎝까지 키가 클 수 있던 것도 성장기 때의 철저한 음식 관리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신갈고 3학년 때 발목 부상으로 8개월간 공을 찰 수 없게 된 것. 오랜 재활 기간을 거쳐 다시 일어나기까진 그의 정신적 지주인 아버지의 도움이 컸다. 석현준의 아버지 석종오 씨는 MBC 밴텀급 신인왕에 출전했던 복싱 선수 출신이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어 하는 아들을 위해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강한 정신력을 심어주기 위해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공동묘지로 데려가 담력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용인시축구센터 송영대 총감독은 “그의 포기를 모르는 강인한 의지는 아버지로부터 비롯됐다. 부상의 시련도 옆에서 아들을 끊임없이 응원하던 아버지를 위해 거뜬히 이겨내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약스 입단 전부터 석현준은 이미 해외 유명 구단의 관심대상이었다. 신갈고 유동관 감독은 “부상당했을 때에도 해외 유명 구단 매니저들이 찾아와 현준이를 확인하고 갔다. 재활 기간이 제법 길었음에도 아약스와 계약이 성사된 것만 봐도 현준이의 기량이 남달랐다는 걸 알 수 있다”고 전했다.
손흥민 역시 석현준 못지않게 축구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별 중의 별이다. 작년 10월 열린 U-17 월드컵에서 8강을 이끈 주역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한 대회 5경기에서 3골을 터뜨리며 한국을 이끌 차기 스트라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 U-17 대표팀에서 그를 지도한 이광종 감독은 “슈팅력이 굉장히 좋다. 언제 어디서든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다. 흥민이가 그라운드에 나가면 상대팀은 긴장을 늦춰선 안 될 것이다”며 제자를 칭찬했다.
U-17 월드컵 직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SV에 입단한 손흥민은 지난 6월 1군에 올라왔다. 프리시즌 9경기에서 9골을 터뜨리며 ‘손흥민’ 이름 석 자를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특히 5일 홈에서 열린 첼시전에서 세계적인 수비수 존 테리와 히카르두 카르발류를 제치고 넣은 결승골은 지금까지도 축구팬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손흥민이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다. 이는 축구 선수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춘천호반FC 감독은 고교시절 춘천고의 전성기를 이끌던 실력파 선수로, 명지대를 거쳐 현대(현 울산)에 입단했다. 입단 첫 해 16경기에서 5골을 넣으며 이름을 알렸고, 대표팀에 입성해 태극마크도 달았다. 그러나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부상을 입는 바람에 24세란 젊은 나이에 선수 생활을 접어야만 했다. 손 감독이 유소년 축구팀 감독을 맡던 시절 손흥민은 자연스럽게 축구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손 감독은 “흥민이가 항상 내 옆에 따라다니며 축구공을 몸에서 떼어놓질 않더라. 축구하고 싶단 얘길 듣고 처음엔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나 볼을 다루는 감각이나 잠재력이 남다른 것을 보고 본격적으로 지도해보자는 결심을 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함부르크와 정식 계약을 맺게 된 건 우수 선수 선발 과정에 비밀이 있었다. 선발 당시 함부르크 구단 관계자들이 직접 파주로 찾아와 120여 명의 유소년들 플레이를 직접 보고 발탁했기 때문. 그때의 인연이 손흥민의 함부르크 입단을 견인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손흥민은 결승골을 넣었던 첼시전 막판, 상대선수의 태클에 왼쪽 새끼발가락에 금이 갔다. 부상으로 일찍 현역 생활을 접었던 손 감독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원래 6주 정도 재활을 거치면 된다고 들었는데, 구단에서 보다 안정적이고 재활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수술을 권유했다. 흥민이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수술 잘됐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라. 더 좋은 선수로 거듭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석현준·손흥민, 두 유망주의 미래를 기대하며 지켜보자.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