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진은 마운드에서의 대담함과는 달리 실제로는 새가슴이라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는 낯을 가리는 편이라고 한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류현진을 만나러 청주야구장을 찾아간 날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습하고 무더운 날씨였다. 워낙 더운 날씨가 계속 되다보니 자연스레 날씨를 주제로 첫 질문을 시작했다.
―이렇게 더운 날, 게임을 한다는 게 정말 어려울 것 같아요.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마운드에 오르면 아무 생각도 안 들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전 추운 것보다 더운 날씨가 더 좋아요. 추우면 몸이 움츠러들어 부상 위험이 많잖아요. 제일 싫어하는 날씨가 바로 오늘 같은 날씨예요. 습도도 높아 질퍽거리는 이런 날씨, 무지 싫어해요(웃음). 차라리 습도 낮은 땡볕 아래서 공을 던지는 게 더 나아요. 작렬하는 태양 아래 서 있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니까요 하하.
―보통 등판 전날에는 어떻게 보내요?
▲내일 게임에 나간다고 하면 오늘 밤에는 방에서 거의 안 움직여요. 그러면서 휴식을 취하는 거죠. 다른 날에는 경기 끝나고 잠깐 사람도 만나고 그러는데 등판 전날에는 움직임이 없다고 보시는 게 맞아요.
―이전 류현진 선수 아버지께서 <일요신문>에 ‘부모가 쓰는 별들의 탄생 신화’를 연재하신 적이 있었어요. 그중에서 기억나는 게 인천 주안동 살 때 앞마당에 미니야구장을 만들어서 아버지와 아들이 ‘야구놀이’를 하고 지냈다는 건데요.
▲그뿐만 아니에요. 그물망에다 옥상에 라이트까지 설치하셨다니까요. 야구장 정도는 아니고요, 초등학생이 던질 수 있는 마운드 거리는 됐어요. 아버진 ‘야구놀이’라고 생각하셨겠지만 전 ‘야구게임’이었어요. 야구 시작하고 나서 그런 시설물들을 만들어주셨거든요. 아버지께서 아들이 좀 더 편한 환경에서 재미있게 마음껏 훈련하라고 배려하신 건데, 제가 보기엔 아들이 야구를 제대로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본격적으로’ 뒷바라지에 나선 것 같은데요(웃음).
재미있는 것은 좌완 류현진이 실제로는 오른손잡이라는 사실. 식사할 때나 글을 쓸 때, 모두 오른손을 사용한다. 야구할 때만 왼손으로 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묻자, 왼손을 쓰는 게 편해서라는 대답을 들려준다.
―작년 8월 19일 삼성전 이후 지금까지 28게임 연속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어요. 올 시즌은 당연히 22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를 이어가고 있고요. 이런 연속 기록을 갖고 있다 보면 경기 때마다 혹시나 하는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할 것 같은데 어떤 편이에요?
▲열심히 했는데 그 기록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면 거기까지가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편하게 마음먹으려고 해요. 기록을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은 없어요. 단 28게임 연속 퀄리티스타트를 만들어 가는 건 제 야구 인생에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싶어요. 당연히 아쉽긴 아쉽겠죠. 그래도 후회는 없을 것 같아요.
―현재 15승을 거뒀는데 올 시즌 목표가 20승이라고 공공연히 밝힌 바 있어요. 가능할까요?
▲쉽진 않겠죠(웃음)? 그런데 우리나라 투수들 중 20승을 올린 투수가 몇 명이나 돼요? (기록을 찾아 봤더니 박철순(’82) 장명부(’83) 최동원(’84) 김시진(’85) 김일융(’85) 선동열(’86) 김시진(’87) 선동열(’89) 선동열(’90) 이상훈(’95) 김현욱(’97) 정민태(’99) 리오스(’07) 등이다. 2000년대 들어 20승을 거둔 투수는 리오스가 유일하다. 선동열 감독이 3차례 20승을 거둔 걸로 따지면 모두 11명의 선수가 20승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투수들 중에서 11명밖에 올리지 못한 기록을, 만약 제가 이룬다면, 그래서 제 이름이 그 위대한 선배님들 사이에 끼어들어갈 수 있다면 너무 영광스럽고 자랑스런 일이 될 겁니다. 20승은 투수의 전성기 때나 가능한 기록이잖아요. 28게임 연속 퀄리티스타트와 함께 한 번 올까말까한 기회라 굉장히 소중한 기록이 될 것 같아요. 가능하냐고요? 가능하도록 노력해봐야죠 하하.
―신인 때 생각하는 ‘에이스’와 지금 느끼는 ‘에이스’란 개념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1구 1구 전력을 다해서 던졌어요. 그래서 18승을 올렸는데, 솔직히 그 당시에는 뭔지도 모르고 무조건 세게만 던졌던 것 같아요. 얼마 전 김민재 코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에이스란 팀이 연패에 빠져있을 때 끊어주거나 연승일 때 이어줄 수 있는 투수여야 한다’라고요. 지금은 ‘에이스’가 한 가지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팀 사정에 의해 다양한 역할을 해낼 수 있는 투수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 리터칭=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정말 재응 형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형, 고마워요!”(웃음) 많은 분들이 제 해외진출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는 것 같아요. 전에도 한 번 얘기했는데, 전 일본에서 경험을 더 쌓고 미국으로 가고 싶어요. 물론 구단의 허락이 있어야 되겠지만요. 일본 야구가 한국과 비슷한 면도 있고 한방에 확 (미국으로) 가는 것보다 단계를 밟아가는 게 순리라고 생각해요.
―혹시 돈 때문에 일본 진출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에요? 재정적인 안정권을 확보한 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려는 계획인 건지 궁금하네요.
▲(손사래를 치며) 전혀요. 돈은 제가 잘하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거 아닐까요? 일본야구는 한국선수들한테 한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자극을 줘요. ‘살짝’ 특별한 감정 같은 게 있거든요. 일본에서도 인정을 받는다면 메이저리그 무대가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고 봐요. 국제대회에서 일본을 상대해 본 경험이 있다 보니 그 나라의 야구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서재응도 류현진의 진로에 대해 “아직 현진이 나이가 젊으니까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가는 게 맞는 방법일 수 있다”면서 “단 지금과 같은 스피드가 계속 유지돼야 일본이나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 테지만 앞으로 한두 번은 슬럼프가 찾아 올 것이고, 그 위기를 잘 극복해내면 진정한 최고의 투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질문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최근 야구계의 가장 큰 관심사는 과연 올 시즌 MVP는 누가 되느냐 하는 부분이에요. 2006년 당시 롯데 이대호 선수가 류현진 선수와 치열한 경쟁 끝에 탈락한 후 상심이 꽤 컸었거든요. 과연 올 시즌 MVP는 누가 타게 될까요?
▲대호 형이 많이 속상해 했어요? 그렇다면 양보해야죠(웃음). 진심으로 대호 형이 타길 바라요. 올 시즌 성적을 놓고 보면 대호 형이 월등히 높다고 생각해요. 전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요. 전 그저 방어율(1.63)만 지금 이대로 쭉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다른 건 떨어져도 되는데 이 방어율은 제가 가장 집착하는 기록이거든요. 이건 노 터치!^^
―만약 류현진 선수가 상대팀 감독이라면, 그래서 ‘투수 류현진’을 상대해야 할 때, 어떤 전략을 짜면 좋을까요?
▲그 전략을 말씀드리면 제 비밀을 다 공개하는 거나 마찬가지게요. 글쎄요, 어떻게 해서든 이기려고 하겠죠. 그런데 (상대팀 감독님이) 그냥 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투수 류현진이 나오면 그냥 포기해주셨으면 고맙겠어요 하하.
―불펜피칭을 안 하는 선수로 유명한데 혹시 코칭스태프나 동료들로부터 이상한 오해를 받지는 않았어요?
▲그렇진 않았어요. 신인 때 200이닝을 던졌잖아요. 너무 많이 던졌기 때문에 팔을 아끼자는 생각을 하게 됐고 굉장히 조심스럽게 생활했어요. 만약 불펜피칭을 안 해서 컨트롤이 안 좋았다거나 문제가 있었다면 당장 코치님들이 뭐라고 하셨겠죠. 다행히 다 이해해주셨어요.
―마운드에서의 배짱 투구로 인해 ‘강심장’ ‘능구렁이’ ‘포커페이스’ 등등 다양한 별명들이 있어요. 실제 성격은 어때요?
▲새가슴이에요. 숫기도 없고 낯도 많이 가리고요. 모르는 사람이 앞에 있으면 한마디도 못해요.
―그렇다면 주위에서 여자친구를 소개해줄 때 어떻게 만나요?
▲소개해준 분이랑 같이 만나죠. 친해지기 전까지는 단 둘이 만나지 못해요. 말을 못하니까요.
―나중에 맞선을 본다든가, 그런 건 하지 못하겠네요.
▲절대, 전혀 안 돼요. 상상도 못할 일이에요(웃음).
―만약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다면, 그래서 고민을 의뢰해야 한다면, 무슨 고민을 말하고 싶어요?
▲야구에 대해선 별로 고민할 게 없는데…, 하하 이런 것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결혼은 언제 하는 게 좋을까요?’ 제가 언제쯤 결혼할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하거든요. (김)태균이 형 때문에 그런가? 전 스물여덟 살 정도에 결혼하고 싶은데…, 아직 사람은 없고…. 그때가 좋은 것 같아요. 스물여덟 살이요.
―저를 포함해서 많은 야구팬과 기자들이 김광현 선수와의 맞대결을 할 경우, 과연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을 갖고 있어요. 혹시 생각해 본 적 있어요?
▲그럼요. 워낙 많은 얘기들을 들어서(웃음). 같은 왼손잡이다 보니 더더욱 관심들을 많이 가져주시는 것 같아요. 진짜 시원하게, 제대로 붙어보고 싶어요. 실력 대 실력으로요. 전 크게 신경 안 쓰고 퀄리티스타트 할 생각으로 게임에 임할 것 같아요. 누가 이길지는 해봐야 알겠죠. 전 그저 퀄리티스타트만 한다니까요.
올 시즌 KIA에서 한화로 옷을 갈아 입은 장성호는 “KIA 있을 때 본 공보다 지금의 현진이 공이 두 배는 더 좋아진 것 같다”면서 “이대호와 MVP 경쟁을 하고 있는데 한화 선수들은 현진이가 MVP를 탈 수 있도록 한마음이 돼 똘똘 뭉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장성호가 한마디 더 덧붙인다.
“제가 지금 현진이와 같은 팀에서 뛰고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하는지 아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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